버티는 삶에 대하여

<오마주>

by CINEKOON

이제 겨우 세번째 영화를 만들었는데, 우리들의 주인공이자 영화 감독인 지완은 수세에 몰린다. 만든 영화는 재미없는 독립 영화로 소문이 나 극장에서의 흥행은 볼품 없고, 제작자로서 함께 버텨준 동료 역시도 이제는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게다가 각방 생활에 들어간 남편과의 관계와, <어벤져스> 시리즈는 개봉할 때마다 챙겨보면서도 정작 엄마 영화는 재미없다며 혹평하는 아들 때문에 지완의 자신감은 더 골골골. 그러던 그녀에게 찾아온 특명. 한국 제 1세대 여성 영화 감독의 고전 작품을 복원 하라. 고작 세 편의 영화만을 남긴채 영화판을 떠나야만 했던 까마득한 선배 여성 감독의 발자취에서 자신의 처지를 발견한 지완. 그렇게 그녀는 60여년 전의 영화를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하게 된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강조되는 것은 여성성이다. 때문에 페미니즘 영화로 인식하는 관객들도 분명 있을 것. 하지만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는 내친채 각종 과격한 표현들만을 일삼으며 일종의 프로파간다 아닌 프로파간다 영화들로 빠졌던 최근 몇몇의 페미니즘 주제 작품들과는 다르게, <오마주>는 그 자체의 영화적 재미에 충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적이지 않아 좋다. 물론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 지완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또 그로인해 업계에서 소외 아닌 소외를 받는 그녀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녀는 영화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남편의 밥 달라는 채근에 일일이 응답해야 하는 아내이고, 또 더불어 아들의 각종 투정까지 받아줘야만 하는 엄마로서 묘사된다. 여기에 작업을 하며 겪게 된 자궁 적출 수술은, 영화적으로 그녀에게서 신체적 성적 여성성을 적출한다는 상징으로 느껴져 더욱 더 강조되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오마주>는 직접적인 대사를 통해 서툰 웅변 따위 하지 않는 영화다. 영화는 그냥 이미지로써 보여주고 있을 뿐인 것. 그게 페미니즘이든 기후 변화에 관한 것이든 간에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주제의식을 설파하는 데에 있어 당연히 취해야할 태도 아닌가 라는 생각은 들지만, 요즘 들어 그런 당연한 태도 조차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영화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오마주>의 이런 뉘앙스는 오히려 칭찬할 만하다 느껴진다. 그리고 그걸 수식하는 이정은의 멋진 연기 역시 존재하고 있고.


60여년 전 과거의 고전 영화를 복원하며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내용이기 때문에 영화는 재밌게도 수사극 또는 미스테리 추적극의 형태를 띈다. 게다가 그 들르는 곳들과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장르적. 천공이 뚫린 철거 직전의 영화관과 시골 마을 한켠에 살고 있는 고령의 여인까지 이것저것 다 장르다워서 영화적 재미가 크다.


좋았던 것은, 결국 영화가 버티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단 점이었다. 버티는 삶. 승리의 팡파레도, 목적 달성의 파티도 필요 없다. 우리는 그저 버티면 된다. 잘 되어가고 있든 아니든, 인생이 우리에게 더럽게 굴든 말든 우리는 그저 끝까지 버텨내면 된다. 주인공 지완 역시도 그걸 알게 된다. 비록 자신의 오랜 영화적 동료는 영화판을 떠나 갔지만. 끝내 철거될 오래된 영화관은 그렇게 사라질 테지만. 그럼에도 지완은 60여년 전의 선배를 통해 끝까지 버텨내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택한 줄 알았던 이웃집 여성이 알고보니 살아있던 것을 보고, 나직하게 "고마워요"라고 말한 지완의 속내는 아마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버텨내줘서 고마워요.'


세상은 남성 중심적이던 직업이나 지위 앞에 '여성' 또는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그들을 격리해 왔다. 여교사, 여의사, 여전사, 여류작가, 여류감독 등. 이같은 표현들을 두고 일각에서는 여성들을 얕잡아 보는 성 차별적 단어라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물론 나도 그에 동의한다. 하지만 때때로, 여전사나 여류감독 같은 말들은 내게 큰 울림을 준다. 그런 단어들에 붙은 '여' 또는 '여류'라는 말은 여성을 깎아내린다기 보다는 오히려 '버텨준 것에 감사해 절로 구분짓게 해주고 싶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땐 점차 사라져야할 표현인 거 맞지. 하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어쩌면 그게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


19f68a844dd3172b05f754513332330bf4901845.jpeg <오마주> / 신수원


keyword
이전 05화바로 '그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