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
서로 다른 종교로 치고박고 싸우던 시절의 벨파스트 이야기. 케네스 브레너는 그렇게 고향에서의 소년 시절을 추억 해낸다. 남의 돈 투자 받아다가 자기 추억을 물상화 시켜낼 수 있다니, 이게 영화 매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는 액자 구조 아닌 액자 구조 형식을 취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일반적인 액자 구조 형식이었다면, 현재 시점의 극중 인물이 먼저 등장해 옛날 일을 회상하며 과거 시점으로 그 바통을 넘겨주는 것이 왕도일 것이다. 하지만 <벨파스트>의 액자 구조 형식은 특이하다. 우선, 21세기의 현재 시점으로 영화가 그 포문을 연다는 것은 다른 액자 구조 형식의 영화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벨파스트>의 현재 시점 오프닝에는 극중 인물이 등장 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주인공 버디가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겨있는 액자 속 사진을 보며 과거 회상을 시작한다든가 하는 일이 없다. 아니, 어쩌면 극중 인물이라기 보다는 인물이 아예 등장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정말로 <벨파스트> 오프닝에는 사람이 없다. 다만 본편의 흑백 화면과는 대비되는 컬러 화면이 존재할 뿐.
때문에 영화는 더욱 더 케네스 브레너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드론 촬영 등을 통해 다소 과시적으로 담겨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벨파스트>의 오프닝 속 현재 시점은 결국 케네스 브레너라는 감독의 관점인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와, 그동안 많이 바뀐 그곳을 천천히 관조하는 감독의 시선이 <벨파스트>의 오프닝에는 담겨있다. 더불어 그 오프닝 속 벨파스트는 평화롭다 못해 한적하고 고요한 곳 쯤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한적하고 고요한 평화를 얻기 위해 터전을 일구고 또 버텨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이기에 그 의미가 더 강화된다.
또, 영화는 시종일관 인물들을 가르고 나눈다. 어떤 인물들은 철조망 울타리 너머로 비춰지고, 또 어떤 인물들은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사이의 선에 서 있다. 창문의 틀에서 튀어나오거나, 가게의 쇼윈도틀을 깨부수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와중에, 순수한 소년 버디만이 담벼락에 생긴 좁은 구멍으로 양쪽을 오간다. 이미 성장해버려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이 굳어진 상태라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거나 또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된 어른들. 그런 그들 사이를 버디만이 뛰어다니며 가로지른다. 케네스 브레너가 이토록 세심하다.
영화적으로 아쉬움이 없진 않다. 영화 후반부의 리듬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고, 복선을 깔아놓은 것에 비해 클라이막스 속 위기는 허접하다. 때때로 너무 감상주의에 빠져있지 않나 싶은 부분들도 많고. 하지만 어린 시절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살다보면 그 정도가 가장 큰 위기일 수도 있는 것이고, 살다보면 또 그 정도로 심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케네스 브레너의 애향심. <벨파스트>는 그걸로 됐다 말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