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맘마 미아!> 1, 2편
여름, 그리스의 작은 섬, 뜨거운 태양, 에메랄드빛 바다, 유쾌한 친구들, 춤과 노래,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행복할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들이 다 갖춰진 상황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맘마 미아!>를 볼 때마다 '영화 속 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낀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모두와 함께 아름다운 그리스 섬을 뛰어다니며 '댄싱 퀸'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그 여름은 인생에 둘도 없는 추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다.
<맘마 미아!>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내게 비타민 같은 영화다. 1편과 2편 모두 그렇다.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 중 8할은 신명 나는 ABBA의 노래와 청량한 여름 풍경 때문이니까.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취준생때였다. 우리나라 취업 시장이란 사람을 지치게 하는 데 일등이지 않은가. 끝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데, 명확한 정답도 없는 레이스.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두 시간 만에 사람을 신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작품이었다. 따분하고 지친 하루, 자신감을 잃고 있던 내게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며 용기와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귀를 때리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댄싱 퀸' 노래가 나올 때, 축 처진 채 영화를 보던 나는 당장 뛰어 나가 춤을 추고 싶어졌다. 나의 내면에 그런 욕구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나조차도 놀라며 "그래, 나도 에너지 넘친다구!"라고 외칠 만큼 힘이 불끈 솟아올랐던 기억. 그 한 줌의 기억 덕분에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항상 <맘마 미아!> OST 앨범이 있다. 용기가 필요할 때 들으며 긍정적인 기운을 끌어올리는 나만의 노래 비상약이다. 음악의 힘이란 그런 것이니까.
1편에선 배우 메릴 스트립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극 중 '도나'인 메릴은 멜빵바지 하나 입고 섬 전체를 호령하고 다니는 씩씩함 그 자체다. 하지만 과거의 연인들이 찾아와 딸 출생의 비밀(?)이 드러날 위기에 빠지면서 그토록 용감했던 도나도 풀이 죽는다. 그때 친구들이 불러주는 노래가 바로 '댄싱 퀸'이다. 난 더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도나에게 두 친구는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그럼 다시 철부지 시절로 돌아가!"라고. 지쳐있는 중년의 여인을 한 번에 17살 소녀로 만들어주는 것이 '댄싱 퀸'의 마법인 게 분명하다.
2편의 '댄싱 퀸' 장면도 압권이다. 푸른 바다 위, 배를 타고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 그들이 부르는 여전히 흥겨운 춤과 노래. 이 시퀀스에서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 딱 하나 있다. 깔끔한 비즈니스맨으로 나오는 배우 콜린 퍼스가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고 양손을 하늘 위로 찌르며 춤추는 모습이다. 마치 '여기선 누구나 아이처럼 춤을 춰도 돼'라고 허락해 주는 것 같았다. 직업도, 상황도,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이 모두에게 허락된 축제. 그 장면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며 또 한 번 '저 무리에 합류하고 싶다'는 열정이 샘솟는다.
이 섬에선 모든 게 갑자기 이뤄져요
도나를 보며 배운 건 '행복은 내가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맘마미아2>에서 어린 도나는 세상은 넓다며 무작정 가방을 들고 떠난다. 이런 도나를 보며 나는 좀 토라졌다. 영화니까 가능하지. 한국의 현실에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왜 그랬을까. 오히려 지금은 대범하게 떠나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세계여행을 떠난 도나를 부러워하던 내 심술이 무안해질 만큼, 그녀는 곧장 정착한다. "세상이 넓은데 이 섬에만 눌러 살 거냐"고 걱정하는 친구를 향해 "여기면 충분해"라고 말한다. 엄청난 모험을 떠난 것 같았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곳을 찾았다며, 소박하고 작은 섬에서 누구보다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거창한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세계 여행을 떠났으면 무조건 으리으리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 말이다. 아마도 그 당시엔 취업준비처럼 남들과 비교하는 게 습관이 된 탓일테다. 적어도 여행이란 것을 떠났으면 무언가 얻어야만 하고, 많은 배낭여행객들과 같이 세계를 떠돌며 인생에 대해 공부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무조건 남들보다 값진 시간이어야만 하는 여행. '도나' 같은 호쾌한 여성도 작은 섬에서 충분함을 느끼는데 왜 우리는 무얼 하든 멋드러지게 보여주려고만 하는 걸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의 여행도 모두 행복이었다. 가족과 함께한 오키나와의 여름은 숨 못 쉬게 더웠지만 유리알처럼 맑은 태양빛을 볼 수 있었고, 돌고래를 보며 돌고래보다 더 시끄럽게 소리치던 괌에서의 패러세일링. 그리고 친구들과 떠난 프랑스, 도쿄, 싱가포르.. 모두 둘도 없는 청춘과 추억을 새긴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그밖에 내가 수년간 세계 지도에 찍어온 발자국들을 생각해 보면 나는 도나처럼 영화의 주인공이 아닐 뿐, 나의 추억도 꽤나 대단하다. 오히려 도나보다 더 큰 세상을 경험했고 더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나쁘지 않아. 영화가 만든 드라마틱함에 속지 말자. 내 인생도 '맘마미아'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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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이 지나 벌써 바람 공기에 선선함이 묻어 나온다. 여름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아쉽기만 한 계절이다. 또 춥디 추운 겨울이 찾아올 것을 알지만 그 끝에 봄이 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 괜찮다. 이 여름이 완전히 가 버리기 전에 <맘마 미아!> 한 번 더 보면서 여름을 조금이나마 연장시켜야겠다.
+) 그리고 이건 하나의 TMI. <맘마 미아!>의 OST를 크게 틀어놓고 공원을 달리며 러닝을 해 보라. 아니면 혼자 막춤이라도 추든 몸을 움직여보길. 우울해진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 빠른 방법 중 하나다. 때로는 미친 사람이 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맘마 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