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귀신 소리 들리는 가게 2부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그 친구가 다니는 대학원이 있는 대학 주위를 서성인 적이 있었다. 대학원이 있는 곳이 아니라 학교 초입의 운동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학교를 나오는 그 친구를 우연하게라도 만나고 싶었다. 또 너무 직접적으로 그 친구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상냥하게, 너무 드러내 놓지 않고!
물론 직접 통화를 하거나 텍스트 문자를 보내거나 해서 바로 만나도 되지만 오늘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 어스름 해가 져 가는 가운데 학교 운동장을 낀 스탠드에 앉아 소위 1대 1로 캐치볼을 하는 대학생들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어 살짝 추운 느낌이 들어서 코트 깃을 올렸다. 요즘 프로 야구는 별로 재미가 없는데 아직도 저렇게 캐치볼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다.
남편은 재작년 우승팀의 사이보그 선수 출전 논란이 불거져 급격히 인기가 식어가는 포스트 시즌 프로야구 중계에 아직도 미련을 뒀다. 실직 후, 희곡을 쓰겠다는 명목 하에 자료 조사를 핑계 삼아 시간이 남아도니 하루 종일 이런저런 방송에 빠진 남편에게 미련을 끊은 지 오래였다.
마음 편히 주말 오후에 집에 쉬고 있다가 가게 한쪽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바봇의 연락을 받고 급히 가게에 불러나갔다. 자기 방에서 야구 중계에 빠져 “와! 역전 쓰리런 홈런! 와!”를 외치는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급히 일을 처리한 후 마음이 허했다. 평소 자기 방에 틀어박혀 초대형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컵라면을 끓여먹는 남편이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나도 모르게 그 친구가 다닌다는 대학교로 무인택시의 목적지를 입력했다.
대학 입학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팅 시대에 대학 교육 무용론이 불었다. 실제로 대학교 입학보다 집에서 VR 인터랙티브 자동 통역 방송을 통해 세계 유수의 명문 대학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생 수가 늘었다. 기본적으로 출생률 저하로 학생 수가 줄어들었던 대다가 그런 대안 대학 교육의 여파로 기존의 대학교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에 느꼈던 활기를 찾기 어려웠다.
계속 시간 강사를 했으면 아마 2학기 중간고사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였다. 그래 봐야 <기초수학의 이해> 같은 교양 강의였을 테지만 말이다. 결국 저녁이 다 되어 스산한 대학의 풍경이 더 부각이 되자 운동장을 바라보던 걸 그만두고 일어섰다. 날씨가 점점 더 차가워졌다. 뜨끈한 어묵 국물이 생각이 났다.
남편보다 든든한 바봇이었지만 가게에 갔을 때 바봇은 마치 자신의 책임인양 다소 풀이 죽어있었다. TIMOs형 로봇 중에서 그래도 상위 기종에 속한다고 늘 자신을 소개하던 바봇이었다. 그날따라 레즈비언 바에서 봤던 쿨한 모습과는 아주 달라 보여 이 인공지능 로봇에게 괜한 일을 맡긴 게 아닌가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어쨌든 과거 수학자로서 대학 수학 교양 강의까지 했던 내가 가게에서 이상한 소리, 즉 귀신 소리가 난다는 이 중차대한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바봇이 자신의 메모리에 기록한 동영상 파일을 토스해 주었다. 인공 망막 컴퓨팅 모니터에 화면이 떴다. 귀에 장착된 이어 텔레폰으로도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달리 사이보그겠는가? 어쨌든 바봇의 시각으로 소리를 찾기 위해 움직이며 마구 흔들리는 동영상에서는 어디선가 귀곡성이 흘렀다. 애완동물 로봇들은 그 소리에 일제히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애완동물 로봇의 인공 털이 쭈뼛하는 것을 보다니 신기했다. ‘흑흨 우히히힠!’ 마치 누군가 우는 듯 한 쥐어짜는 소리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는 간헐적으로 반복되었다. ‘흑흨 우히히힠!’하는 소리가 나도 섬뜩하긴 했지만, 무섭기보다는 가게가 망하는 게 더 두려웠다. 이 가게가 뭐라고 남편 퇴직금 대부분이 투자됐다. 그나마 대학 강단계도 떠났다. 이게 망하면 나나 나에게 생계를 맡기고 야구를 보며 희곡을 쓰는 남편이나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소리는 가게 입구 맞은편 벽에서 났다. 그런데 그 벽 밖은 허공이었다. 내부 순환 공중로 정릉 출구 근처에 있는 2층 건물이라 이 건물 옆에는 바로 붙은 건물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니 귀신이 곡을 했다. 내가 동영상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는 동안 바봇 역시 서성이며 불안한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아직 손님이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바봇이 내게 보고했다. 항상 생각하지만 남편보다 더 믿음직한 로봇이다. 남성형 인공지능 로봇을 인간 남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니 아이러니했다. 사실 나는 공포영화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 돈 빌리고 돈을 잘 갚지 않는 고교 동창 지현이는 유난히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아니 그런 초자연적 현상을 좋아했다. 심지어 공포 체험을 하기 위해 폐가나 폐 정신병원을 찾아다니는 고스트 헌터들을 따라다니기까지 했다. 그리고 보니 지현에게 고스트 헌터 중에 우리 나이 또래에 잘 아는 용한 무당 친구가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걘 그 무당에게 자신의 복잡한 남자관계를 문의하러 자주 갔다고 했다. 도대체 왜 자기에게는 돈 빌려달라는 남자 밖에 없냐는 것이 그녀의 화두였다.
일단 가게 문에 해외여행을 이유로 잠시 휴업을 한다고 1층 가게 출입구에 안내문을 붙였다. 귀신 소리 들리는 가게라고 소문이 나면 바로 그 순간 망한다. 지금처럼 버추얼 SNS가 발달한 시대에 정말 1초면 망한다. 아니 정확하게 누군가 <귀신 소리 나는 가게>라는 여덟 글자를 SNS에 올리는 그 순간 끝난다. 순간 공황발작이 오려고 했다. ‘약을 먹고 나았다고 생각했는데…!’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한숨을 길게 내셨다. 바봇이 나를 우려스럽게 바라봤다. 문득 전 가게 주인이 왜 이 가게를 헐값에 나에게 넘겼는지 이해가 됐다. 아!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으며 겨우 공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바봇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지현에게 연락을 했다. 신호가 아주 길었다.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 졌다.
지현과는 여고동창이다. 수줍음이 많았고 약간 응큼했으며 공부를 좀 했던 나보다 성적은 조금 낮았지만 나름 유쾌하고 외향적인 지현이랑은 여고 1학년 때부터 잘 지냈다. 지현이는 동네에서 꽤 고급 아파트에 살았고 나는 할머니와 엄마와 같이 빌라에 살았다. 여자 3대가 살아서 좀 특이하다 싶었지만 아빠가 없다고 특별히 아쉽다거나 친구들에게 꿇리거나 하진 않았다. 가끔 방학이 되면 우리 집에 지현이가 와서 자고 가곤 했었다. 집에 여자만 있다는 사실에 지현이 엄마도 안심을 했다. 지현이랑은 밤새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고 귀염성이 있는 지현이를 외할머니도 무척 좋아하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지현이가 가족보다 더 크게 울었다. 다들 나보다 지현이가 더 외할머니의 손녀딸인 줄 알았다. 엄마도 걔를 아꼈다. 그런데 그런 지현이가 저런 빚쟁이로 살아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현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봇이 더 불안한 듯 서성였다. 정말 바보 같았다. 문득 이름 하나는 누가 정말 잘 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만 하라고 손을 까닥이며 자제시켰다. ‘이년이!’라는 말이 전직 수학자의 입에서 나직이 흘러나오려는데 통화가 연결이 되었다.
“어머! 은실아! 호호호! 내가 사정이 있어서 담주에는 꼭 입금….”
“지현아! 됐고! 너 아는 무당 있지? 니 친구 있잖아! 고스트 헌터! 좀 소개해 줘! 최대한 빨리! 어서!”
전화 후 급하게 지현이가 용하다며 연화라는 무당을 소개해 주었다. 그 무당에게 귀신 쫓는 굿을 하기로 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결국 이날 밤은 그렇게 혼자 놀란 마음을 달랬다.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그 친구를 부를 수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회사에 다닐 때는 그나마 캐주얼한 옷을 입고 부잣집 도련님처럼 입고 다니던 남편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하나둘 조금씩 망가졌다. 늦은 밤, 집에 돌아가 남편 방문을 열어 보니 뭔가를 보는지 남편이 초박형 라운드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헤드폰을 낀 채 늘어진 흰 티를 입고는 여전히 라면을 먹고 있었다. 콧수염에 라면 국물이 묻어 있었다. 꼴도 보기 싫었다. 남편 방문을 쾅 닺고 돌아섰다. 거실에서 긴 귀와 꼬리를 앙증맞게 흔드는 아리를 한 번 안아주고 문을 닫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희곡을 쓰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토끼 같은 남편은 그 후로부터 콧수염을 길렀다. 몸에 털도 별로 없는데 코 밑 수염이라니?라는 생각도 했지만 늘어진 하얀 면 라운드 티셔츠를 입었어도 애써 기른 콧수염만큼은 그럴듯해 보였다. 단지 그날 코털에 라면 국물이 뭍은 걸 보기 전까지 말이다. 거기까지였다.
이 일은 남편도 모르게 주도면밀하게 처리했다. 소심한 성격이라 무슨 난리를 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주 목요일 저녁에야 겨우 원격으로 무당이 굿을 하게 되었다. 한 달 중 일주일을 쉬게 되면 타격이 크다. 그러나 아주 망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었다. 탁 트인 공간에 고풍스러운 가구와 소파를 놓고 아늑한 거실로 꾸민 삼십여 평의 가게는 음악이 흐르지 않자 굉장히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가게를 할 거라는 후회가 몰려왔다. 굿을 했는데도 이 귀곡성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싶었다. 모든 애완동물 로봇들의 전원을 리모컨으로 끈 채 홀로그램 입체 영상을 투사했다. 시간이 되자 VR 기어 헤드셋을 쓴 무당이 굿을 했다. 홀로그램 굿을 제안한 것은 지현이가 소개한 우리랑 나이가 비슷한 연화라는 여자 무당이었다. 신내림을 받기 전에는 공대를 다녔다는데 자신을 무당계의 어얼리 어답터라고 했다.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서 마음에 들었다. 소문이 나면 안 되니 홀로그램 굿 역시 좋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결국 나는 수학자 체면을 거두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빌면서도 생각이 많았다. 바봇에게는 이번 주말에 나오라고 할지 고민이 되었다. 주말에 일을 했던 아르바이트 비용은 바봇의 가상 은행 계좌에 입금을 해주었다. 이번 주말까지는 안 와도 된다고 바봇에게 연락을 했다.
인공망막 스크린 밑으로 흐르는 실시간 인터넷 뉴스에서는 북한의 불가사리를 대적할 한국형 초거대 로봇 시제품이 나왔다는 기사가 흘렀다.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하는 무기 개발은 무언가 돈 먹는 하마면서도 매우 엉터리라는 오명을 듣고 있었다. 물이 세는 탱크나 만들자마자 고물이 된 헬리콥터, 발사가 잘 안 되는 대포 등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입찰해서 이렇게 빨리 시제품이 나왔다면 과연 제대로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웠다. 한편 미국과 중국, 일본 역시 숨이 가쁘게 초거대 로봇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여기저기 초거대 로봇의 파워를 과시하는 시연장면들이 보여줬다. 심지어 일본은 초거대 로봇 파일롯 키우기라는 리얼리티 방송을 했다. 결국 초거대 로봇 초호기 파일롯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실시간 방송 인기투표로 뽑았다. 초거대 로봇 초호기 파일롯의 이름은 신지가 아닌 신따로였다. 특히 일본은 북한을 두고 우경화가 심해지고 있어서 심히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개발된 공격형 초거대 로봇의 파일롯은 오토 모션 캡쳐링 슈트를 입었는데 거대 로봇 표피의 센서로 로봇의 감각을 느끼도록 설계된 옷이었다. 또한 헬멧은 파일롯의 뇌와 연동이 되어 초거대 로봇의 AI와 결합해 강력한 조정능력을 선보인다.
어쨌든 나라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가게 망하면 수학 과외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21세기 들어서 가뭄에 콩 나듯 여성의 출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출산율이 제로로 수렴해 가는 동안, 학교에 입학할 아이들 자체가 줄어 망하는 국영수 학원이 줄을 이었다. 부동산 가격 역시 대도시 핫플레이스라 불히는 지역 외에는 폭락했다. 지치고 우울한 주인을 위로하는 말까지 하는 인공지능 애완동물 로봇들이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아이까지 대신하고 있었다. 인공지능 애완동물 로봇 사업은 초노령화 무출산 사회로 향해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전 가능성이 큰 사업이었다. 우아한 단발에 힐 없는 검은색 벨벳 플랫 슈즈를 신고 흰 블라우스와 검은색 스커트로 가게 사장님 룩을 한 나는 ‘이 귀신 소리만 잡으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굿을 하는 홀로그램 무당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그때 VR 기어를 쓴 연화라는 무당이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억울해! 나는 억울해! 나는 억울해!”
아! 이 무슨 소린가? 마마라는 극단의 초인공지능 컴퓨터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음모론이 도는 21세기에 무당 연화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