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끝없이 증명해내야 하는가?
<서브스턴스> 한 줄 평
나를 미워하고 나이기를 부정하는 일 그보다 잔혹한 건 그게 맞다고 부추기는 사람과 사회와 문화 그 모든 것
<서브스턴스>는 무엇을 짚어내고 있는가? 이 영화를 본 모든 개개인에게 물어 보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시사점을 안고 있는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휘두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으며 사회 내에서 남녀의 대상화가 어떤 차이점을 두고 이루어지는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나 자신, 내 내면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해석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이 영화는 모든 요소가 매우 자극적이다. 시각과 청각을 극도로 자극한다. 스크린을 꽉 채우는 타이포그래피, 고막에 내리꽂히는 날카로운 소리, 묘하게 거슬리는 작게 반복되는 효과음. 영화의 스타일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관객을 절대 한눈팔지 못하도록 한다. 집중해라, 지금부터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똑똑히 봐라. 그리고 생각해라. 내가 주는 모든 감각에 대해 날카롭게 느껴라.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데니스 퀘이드가 연기한 하비라는 캐릭터는 과장된 몸짓, 말투, 표정으로 영화의 의도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보다 보면 과장된 게 아니라고 느껴지는 점이 포인트다. 우리를 스쳐간 수많은 하비가 떠오르지 않는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심지어는 길에서도 만난다. 거리낌없이 무례한 태도, 처음 만났음에도 우위에 있는 듯한 말투, 멋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시선. 엘리자베스를 앞에 앉혀두고 게걸스럽게 새우를 먹던 그의 입은 계속해서 스크린을 채운다. 테이블 위를 나뒹구는 새우 껍질들, 보울을 벗어나 뚝뚝 흐른 질척한 소스, 입안에서 씹히던 새우살의 잔해까지. 하비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여자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일. 엘리자베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고 자리를 뜬 그는 곧바로 다른 권위자의 손을 잡고 장소를 이동한다. 본인의 할 일이 끝났으니, 본인이 할 말을 다 했으니 그의 볼일은 끝났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에 대항할 기회도, 시간도 없었다. 하비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녀에게 그럴 '자격'은 없었다.
엘리자베스에게서 수라는 또 다른 '나'가 태어난 순간을 상기해 보면 수는 분명 엘리자베스에게 연민을 느낀다. 당연하다. 눈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나니까. 하지만 주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태도는 어떻게 변하는가? 규칙을 어기고, 엘리자베스를 막 대하며, 눈 앞에서 치워 버리기까지 한다. 수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또한 자신의 몸을 망쳐 버린 수에게 분노하고 복수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계속 반복하듯 '그들은 하나'다. 서로를 공격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곧 자기파괴다. 애초에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낸 것이 자기혐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므로.
드러내지 않은 부분이 드러낸 부분보다 더 적은 옷을 입고 '피트니스'라는 명분으로 춤을 추고 카메라는 가려지지 않은 몸 이곳저곳을 비춘다.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골, 사타구니가 화면을 꽉 채워 송출되는 쇼의 이름은 '모닝쇼'다. 함께 춤을 추는 남자 멤버도 있지만 그의 옷차림은 어떠한가? 웃통을 벗고 삼각팬티를 입고 춤을 추는가? 남자는 러닝과 반바지, 그저 평범한 피트니스복을 입고 있다. '자신을 아껴주세요'라는 멘트로 마무리짓는 방송 치고는 모순적이지 않은가. 군살 없는 몸과 예쁜 얼굴로 왜 아침부터 누군가는 자극시켜야 하며 누군가는 만족시켜야 하는가. 왜 하루의 시작부터 그런 방송을 마주하며 자괴감을 느끼거나 불쾌감을 느껴야 하는가.
이성을 잃고 원래의 나인 엘리자베스를 공격하는 수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섬찟하다. 존재하는 나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부정하던 끝은 결국 죽음이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너의 죽음. 나라는 가면 속 너의 죽음.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너의 죽음. 그렇게 혼자 남은 '만들어진' 나는 살아갈 수 있는가? 사실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나는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가?
스크린은 틈틈이 엘리자베스와 수의 몸뿐 아니라 남자의 얼굴, 엉덩이를 비추기도 한다. 벗겨진 머리, 주름진 얼굴, 살찐 몸, 털 난 엉덩이. 외관이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에서 무시당하거나 외면받는가?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권력자이고 권위자이고 여자를 내려다보며 우위를 느끼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는데 왜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수도 없이 거울을 보고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고 사람들 앞에서 밝게 미소 지어야 하는가? 사회는 왜 우리에게 그러라고 하는가? 나이가 들면 왜 끝이라고 하는가? 무엇이 끝인가?
나를 나에게 증명할 필요는 없다. 나를 증명하는 일은 타인에게 나라는 존재와 자격을 허락받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들으니 어떠한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수많은 증명을 시도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필요가 있는가.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단언컨대 아니다.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