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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Aug 02. 2024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순간

딸 J의 시선



임순례 감독의 2008년 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 감독의 감성 덕분에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기분까지 함께 좋아지게 하는 ‘다정한’ 영화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전에 올린 "세계 여성의 날" 특집 글에서 이 작품을 아주 짧게만 언급했던 것이 못내 아쉽던 차에, 전 세계가 들뜬 마음으로 맞고 있는 "2024 파리 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다시 더 자세히 다루게 되었다.  


영화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했던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이야기를 각색 작품으로,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 때문에 변변한 지원 없이 고군분투하는, 더욱이 ‘국가대표’로서의 정체성 외에도 ‘엄마’ 혹은 ‘아내’ 등 여성에게 지워지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으로 여러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그럼에도 올림픽 결승에까지 올라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네 명의 주인공, "미숙"(문소리), "혜경"(김정은), "정란"(김지영), "숙희"(조은지) 등은 뛰어난 실력과 성적을 자랑하는 베테랑 선수임에도 그다지 녹록지 않은 현실을 힘겹게 살아 내는 이들이다. 특히 미숙은 한때 국가대표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였을 만큼 빛나던 시절을 누렸지만, 지금은 사업을 하던 남편이 사기를 당해 생긴 빚으로 채권자에게 시달리며 어린 아들을 혼자 돌봐야 하는 상황을 간신히 버텨 내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미숙, 정란, 숙희가 선수로 활동하던 실업팀이 해체되면서 - 경기장의 텅 빈 관중석이 암시하는 핸드볼의 낮은 ‘수익성’ 때문에 - 이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길로 뿔뿔이 흩어진다.





한편 미숙의 옛 국가대표팀 동료이자 한동안 일본에서 핸드볼팀 감독으로 일하고 있던 혜경은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감독 대행을 맡아 국내로 복귀하는데, 골키퍼인 수희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뿐인 팀의 전력에 불안을 느낀 그녀는 미숙과 정란을 팀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하지만 혜경을 포함한 네 명의 베테랑과 신인 선수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계속해서 부딪히고, 혜경의 훈련 방법에 불만을 가진 선수들이 반항하면서 어그러진 팀워크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안 그래도 혜경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대하던(‘여성’ 감독이라는 이유로) 핸드볼 협회가 이 상황을 문제 삼아 혜경의 정식 감독 임명 대신 유명 선수 출신의 "안승필"(엄태웅)을 신임 감독으로 영입하자, 승필과 예전 연인 관계였다는 껄끄러운 역사까지 있던 혜경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한국 핸드볼의 전력과 그 미래를 걱정하던 혜경의 진정성을 상기시키는 미숙이 그녀를 붙잡으면서 혜경은 결국 선수로서 팀에 복귀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자존심을 내려놓은 혜경의 결단이 무색하게도 승필은 그녀를 포함한 네 명의 베테랑 선수들을 공공연하게 ‘노장’(‘한물간' 아줌마) 취급하고, 그들 사이의 갈등은 팀 전체의 분위기와 관계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혜경이 자신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수치심을 느낀 미숙이 선수촌을 떠나 버리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힘든 시간을 맞은 베테랑 선수들이 오히려 선배다운 관록과 경륜으로 어린 선수들을 위로하고 다독여 주자 팀 내의 관계들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다. 베테랑 선수들을 세월에 뒤처진 방해물 정도로 여기며 공격적으로 대하던 승필도 결국은 그들의 투지와 열정을 인정하게 되고, 미숙 또한 마음을 돌이켜 다시 팀으로 복귀한다. 완전체가 된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드디어 같은 목표를 향해 서서 놀라운 성장을 보이며 아테네로 향한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애정하는 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시간과 공간의 부족으로 모두 다룰 수 없음이 무척 아쉽다.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짧게 짚고 넘어 가고 싶은 점은, 이 작품이 한국 영화 역사상 중요하게 남을 ‘여성’ 영화이리라는 개인적 의견이다.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려 하지만 보통 ‘승리’나 ‘성취’에만 집중하기 쉬운 대부분의 남성 선수들과 달리 육아와 가사, 그에 더해 가정을 향한 감정적 책임감과 부채감이라는 부수적 짐까지 견뎌야 하는 여성 선수들의 현실을 담담하게 꼬집는 장면들이 깊이 있는 여러 화두를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 중 하나로 여성들 사이의 ‘연대’와 ‘유대’를 들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이 작품이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대와 유대의 상호 관련성과 의존성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될 만하다.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두 개의 장면 중 하나는 영화 중반, 아직 삐걱대던 국가대표팀이 남자 고등부 핸드볼 팀과의 연습 게임에서마저 처참히 패배한 후 특히 부진한 실력을 보인 선수 "현자"를 혜경이 위로하는 대목이다. 감독 승필과 남자 코치진은 그저 현자를 닦달하고 비난한 후 자리를 떠 버리지만, 선수 시절 같은 상황들을 경험했던 혜경은 현자가 월경 중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린다. 팀의 패배를 그녀의 탓으로 돌리는 코치진의 비아냥에 변명 한마디 못하던 현자는 자신의 상황을 알아 주는 혜경의 말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현자와 계속 마찰을 빚던 ‘센 언니’ 정란도 이때는 현자에게 공감하며 자신의 관련된 아픔까지 공유하면서 어린 선수들을 다독인다. 극명한 세대 차이를 보이며 같은 팀임에도 서로 으르렁대던 선배와 후배들이 처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 순간이자 이들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하는 첫 전환점은, 이처럼 선수들 간의 ‘유대감’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와 비슷한 두 번째 장면은 선수촌을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미숙의 국가대표팀 엔트리 자격을 승필이 박탈하려 들자 혜경이 이를 막으려 애쓰는 대목이다. 불암산 등반 훈련에서 자신이 그보다 먼저 완주하면 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부탁한 혜경은, 자기가 지면 자신과 동료 ‘노장’ 선수들 모두 국가대표팀을 떠나 주겠다는 불리한 조건까지 내걸면서 승필이 대결에 응하도록 유도한다. 두 사람은 결국 대결을 시작하지만, 비가 심하게 쏟아져 나머지 선수들이 철수한 상황에서도 미끄럽고 위험한 산길을 묵묵히 오르던 혜경이 넘어져 다치는 상황이 벌어지자 승필은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원래 그렇게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잖냐"는 비난 혹은 원망 같은 그의 질문에, 혜경은 자신도 아이를 낳고 또 감독의 자리에 올라 보니 선수들의 사정이 보이고 그들이 이해되며 안타까워지기 시작했다고 응수하면서, ‘선수들의 사정’엔 관심조차 없는 승필의 태도를 도리어 질책한다. 한때는 미숙을 질투하고 자괴감을 느꼈던, 어찌 보면 욕심 많고 이기적인 선수였던 혜경이 ‘팀플레이’를 강조하고 미숙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한 이유는 그녀가 인간 대 인간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연민하게 되었기 때문, 즉 타인에게 ‘유대감’을 느끼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혜경이 미숙을 위해 승필과의 대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동안, 동료 선수들은 감독인 승필을 내팽겨 둔 채 혜경을 응원하려고 모여든다. 대결의 막바지에 선수들 모두가 빗속으로 뛰어들어 혜경의 뒤를 따르는, 또 승필에게 끝내 패배한 그녀가 트랙에 넘어지자 모두들 혜경 곁에 달려들어 울고 위로하며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는 장면에서는 언제나 눈물이 찔끔 나온다. 혼자 선 채 그 광경을 뒤돌아보는 승필의 표정도 사뭇 의미심장하고 말이다. 표면적인 ‘대결’에서는 승필이 이겼을지언정 이 팀의 진정한 코치이자 정신적 지주는 그가 아님을, 혜경이 선수들 사이에 일깨워 낸 ‘유대’가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으며 ‘연대’하게 하는 힘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진심’으로 묶여진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를 연결하고 결합하게 하는, 말 그대로 ‘끈과 띠’처럼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묶는 ‘유대’(紐帶)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대에 대해 궁금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고 공감하는 마음 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상황과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함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만 함께하는 안전하고도 번듯한 공동체 안에서 논해지는 사랑이 아니라,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영혼들의 복잡하고 고단한 삶에 나의 마음을 끈과 띠로 묶어 연결하며 만들어 내는 진정한 ‘유대’와 ‘연대’의 의미에서.


여기에서 조금 흥미로운 부분은 감독이 선수들의 ‘사정’을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그로 인해 진정한 감독의 자격과 존경심을 혜경에게 빼앗긴 승필 또한 그의 개인적 ‘사정’, 다시 말해 그의 배경과 뒷이야기 같은 것이 영화 속에서 하나도 제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 내내 베테랑 선수들의 ‘사정’이 자세히 다루어지고 심지어 신인 선수들의 배경과 동기들도 어느 정도 설명되는 것과 달리, 꽤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승필의 경우엔 그가 하는 ‘행동’ 외에 관객이 공감하거나 유대를 느낄 수 있을 개인적, 사적인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고, 그의 성격이나 혜경과의 예전 관계 등 그나마 인물의 ‘내면’과 관련된 부분들도 모두 그녀를 포함한 여성 선수들의 전언과 해석을 통해서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팀의 남성 코치진 역시 그들이 하는 대사나 행동 외에는 이들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단서가 될 만한 그 어떤 ‘뒷이야기’(backstory)도 부여 받지 못한다. 





‘여성 중심 서사’라는 표현이 따로 있어야 할 만큼 주로 ‘남성’ 캐릭터들에게만 다양하고 인간적인 서사와 배경을 제시하던 기존 영화들로부터의 재미있는 ‘전환’(reversal)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혜경과 미숙, 정란과 숙희 등의 ‘사정’을 설명하며 서사를 부여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관객이 주로 이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유대’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설정과 서술적 장치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자신의 입장과 ‘사정’을 설명하고 공유하며 이해과 공감을 얻게 되는, 다시 말해 ‘유대’를 쌓을 수 있는 기회 또한 사실은 사회적 권력과 편향에 따라 부여되는 ‘특권’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문화적 ‘권력’과 ‘매력’을 소유하는 - 제도가 만들어 낸 일정 기준과 ‘타당성’에 부합하는 - 사람들에게만 그 기회가 허락되는 경향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인 데다, 이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은 공감과 이해, 연민과 유대의 기회마저 박탈 당한 채 더 깊고 처절한 소외로 내몰리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최근 많은 창작자들이 영화와 소설, 그 외 여러 매체에서 사회적 ‘강자’나 ‘기득권층’에 쏠려 있는 ‘서사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실에 기인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사정과 속마음을 드러낼 힘이 없는 약자들을 우리 스스로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진심이 아닐까 한다. 이해와 공감에 목마르고 굶주린 이들이 그것들을 '구걸'하기 위해 제발로 나서기 전에 그보다 한발 앞서 그들의 사연과 고통을 감싸 안는, 유대와 사랑을 자유롭게 나누는 사회 속에서의 진정한 연대야말로 지상에 천국이 강림하는 통로일 테니까. 





P.S. 마침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경기에서 치열한 승부를 보여 준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성적과 관계없이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몸을 내던지며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아름다운 열정과 헌신에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선수들 모두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이 앞으로도 수없이 남아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엄마 C의 시선



“우생순”이라고 줄여 부르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던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훈련과 실전 과정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2008년 개봉되었던 한국 영화입니다. 핸드볼이 특히 비인기 종목으로 인식되는 한국의 경우 고정된 팬 층이 없다 보니 흥행에 대한 기대를 갖기 어려웠던 데다, 대중적 인기 스포츠로서 이미 여러 관련 영화들을 양산한 야구, 축구, 농구 등의 구기 종목과 달리 참고할 전작조차 거의 없어 도움이 될 만한 자료 찾기도 쉽지 않았다는 여자 핸드볼 팀 선수들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저희의 “브런치” 글 중 첫 번째로 올렸던 – 그리고 제가 무척 좋아하는 - 영화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연출자이자 이후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 등의 문제작을 연출하기도 한 임순례 감독의 작품답게,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소외 계층과 주변인들의 삶을 주목하고 천착하는 감독 특유의 시선을 잘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그렇기에 이전의 올림픽 경기들에서 의외의 좋은 성적을 거둬 왔음에도 늘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던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2004년 올림픽을 앞둔 당시 설상가상으로 역대 국가대표팀 중 최약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국민과 대중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훈련에 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여자 핸드볼 팀 선수들은 대다수 사람들의 짐작과 예측을 벗어난 놀라운 실력을 보이며 올림픽 결승전까지 진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핸드볼 세계 최강이라고 알려진 덴마크와 맞서 싸워 은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 같은 선수들의 투혼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면서 덴마크와 금메달을 놓고 겨룬 이때의 결승전은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명승부”로, 당시의 여자 핸드볼 팀은 “가장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 준 선수들 1위”로 선정되었을 뿐더러, AP 통신이 선정한 “2004 아테네 올림픽 10대 명승부전”에까지 그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감동 실화를 다룸으로써 당초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누적 관객수 400만명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그리고 실제로 34세의 나이에 훈련과 시합에 참여했던 - 영화에서 등번호 13번으로 출연한 - 임오경 선수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핸드볼로 ‘잔뼈가 굵은’ 네 명의 중견 선수들을 중심으로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전에 참가해 온 올림픽에서의 2연패를 이뤄 낸 주역이자 현역 핸드볼 선수 중 최고라고 인정 받는 “한미숙”과 일본 프로 팀 감독으로 활약하다 국가대표팀의 감독 대행을 맡으며 귀국하게 된 “김혜경”을 주축으로, 전성기의 나이 때는 별다른 실력을 보이지 못했지만 뒤늦게 “물이 올랐다”는 평을 듣는 “송정란,” ‘푼수’ 끼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골키퍼로서의 능력은 독보적인 “오수희”까지 포함된 네 사람의 선수들이지요. “2004 핸드볼 큰 잔치”에서 거둔 우승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 소속되어 있던 실업 팀의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남편의 사업 부도로 막막한 처지가 된 미숙은 대형마트의 식품부에서 판매 일을 시작하고, 음식점 운영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면서도 운동에 대한 미련이 여전한 정란은 답답하고 ‘좀이 쑤시는’ 하루하루를 이어 갑니다. 미혼인 수희만 국가대표팀에 재합류하여 원하던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되지요. 


전성기 시절 미숙과 라이벌 관계였던 혜경이 “감독 대행”이라는(실질적으로는 감독의 역할인) 직함을 얻어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오면서 실력과 기량이 여전한 미숙을 팀에 복귀시키려 일하고 있는 마트까지 찾아가지만, ‘한가하게’ 운동할 여유가 없는 미숙은 자신의 처지를 혜경에게 털어 놓으며 복귀 제안을 반가워 할 정란이나 다시 데려오라고 조언합니다. 정란을 복귀시킨 혜경은 미숙 역시 설득하여 -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받게 될 포상금을 협회에 요청해서 미리 받아 주는 조건으로 - 함께 팀에 복귀시키지요. 은퇴가 목전인 ‘연로한’ 선수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할 만큼 최약체의 전력 평가를 받는 팀의 재정비를 위해 혜경은 초반부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선수들을 몰아대지만,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빡빡한 그녀의 지도 방식이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훈련을 원하던 신예 선수들로부터 반감을 사는 가운데, 이런 갈등 상황은 관록의 노장 선수들과 젊은 신진 선수들 간의 다툼과 분란으로까지 비화됩니다. 





예기치 않은 갈등 상황에 당황한 협회 측은 혜경이 ‘같은 여성’임에도 선수들과 불화를 빚고 있다는 사실과 그녀의 ‘이혼’ 경력을 함께 문제 삼으며 감독 대행 직의 불신임을 결정하고, 유럽에 진출한 후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경력의 “안승필”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합니다. 열정을 쏟아부어 온 감독의 자리에서 경질된 데다, 선수 시절 연인 관계였던 - 나중에 밝혀지지만 - 승필에 의해 ‘쫓겨나는’ 모양새로 처참한 자존심의 손상을 입게 된 혜경이지만,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에서 부상으로 불참하고 받은 금메달에의 ‘부채 의식’을 털어 버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평 선수로 복귀하면서 다시 한 번 ‘백의종군’의 각오를 다지지요. 하지만 과거 혜경 가족 쪽의 결혼 반대가 예상되자 유럽으로 ‘도망’갔었다는 승필은, 서구에서 도입한 ‘과학적’ 프로그램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겠다는 어설픈 계획을 강행하는 한편, 당시 빚어진 ‘원한’ 때문인지 자신과 혜경의 과거 사연을 알고 있는 노장 선수들을 눈에 띄게 차별하며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혜경을 함부로 대하는 승필에게 반기를 들던 미숙이, 자기가 ‘미리’ 받은 것으로 알고 있던 금메달 ‘포상금’은 협회가 아니라 혜경 개인으로부터 전해진 돈임을 그를 통해 듣게 되면서 치욕스러운 심정으로 팀을 떠나기도 하지만, 자신의 무단이탈에 징계를 선언했던 승필의 결정을 되돌리려 애쓰는 혜경의 진심과 핸드볼에 대한 스스로의 열정을 깨달으며 다시 팀으로 돌아옵니다. 그녀들의 열정에 승필의 마음도 열리기 시작하는 한편, 무지하고 답답한 ‘꼰대’쯤으로 노장 선수들을 과소평가하던 젊은 선수들이 후배에 대한 선배들의 속깊은 사랑과 핸드볼을 향한 그들의 진정한 애정을 알게 되면서 신-구 선수들 간의 갈등도 해결 국면을 맞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아테네에서 하필 남편의 자살 기도 소식을 듣게 된 미숙 때문에 잠시 팀에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끝끝내 한마음으로 뭉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덴마크와의 결승전에 임하고, 계속되는 동점 상황으로 연장전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 마지막 힘을 다 짜낸 후의 “승부 던지기” 결과에 따라 세계 2위, 은메달이라는 - 아쉽고 안타까운 - 결과가 주어지며 그녀들의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당시 경기에 실제로 임했던 선수들의 노고와 헌신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영화의 촬영에 동참했던 배우들 역시 그에 버금갈 만큼 각고의 노력을 쏟았다는 이야기도 후일담으로 전해집니다. 엄청난 강도의 운동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훈련 시작 후 10분만 지나도 구토와 어지러움 등으로 힘들어 하던 여배우들이 3개월의 트레이닝 기간 동안 하루 7~8시간의 체력 훈련(스피드, 점프력 등 기본기를 다지기 위한)과 패스, 슈팅, 드리블 및 고난도의 세트 플레이, 페인팅 모션 같은 핸드볼 기술 훈련을 병행함으로써, 일반적 상황에서의 진척 속도보다 3배 이상 빠른 습득 능력을 보인다는 평가를, 훈련을 담당한 코치로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네 명의 주요 배우들은 합숙 훈련과 추가 웨이트트레이닝까지 자청하면서 닭가슴살 등 고단백 식단으로 몸 만들기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요.


스포츠와 관련된, 그리고 그에 헌신하는 선수들의 삶을 그린 영화나 소설을 접할 때마다 오래전 베스트셀러였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의 제목이 생각날 만큼, 운동 선수들은 말 그대로 피와 땀을 쏟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며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합니다. 영화에서도 그려지고 있듯 한국 여자 핸드볼 팀 선수들은 미비한 지원과 체력적 열세,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한 미래 등에도 굴하지 않고 핸드볼에 대한 사랑과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명감으로 각고의 노력을 쏟으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사실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름과 국가의 명예를 위해 이처럼 모든 것을 걸고 또 바치기까지 한다면, 하나님을 알고 믿는 신앙인들은 그분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그보다 더한 노력을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믿는 자들은 ‘일’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매 순간 공급 받으며 사는 그 은혜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편에서 올려 드리는 ‘최선’의 노력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터이기에 말입니다.  





거짓말까지 하면서 사비(私費)를 털어 마련한 ‘가짜 포상금’임을 알게 된 미숙이 상한 자존심을 토로하며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따져 묻자 “감독으로서 너같이 훌륭한 선수가 꼭 필요했다”고 대답한 혜경은, 현역 선수 시절 미숙의 재능을 질투하며 그녀보다 1시간 더 연습하는 등 이를 악물고 노력했지만 결국 따라잡을 수 없었다는 말로 당시 자신이 느꼈던 좌절감과 함께 여전히 변하지 않은 상대에의 존경심까지 드러냅니다. 어쩌면 한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보다 우월한 타인의 능력과 재능을 인정하며 축복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갖게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talent)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최신식, ‘과학적’ 훈련 방법을 운운하는 승필에게, 예전 감독님은 자기 엄마의 기일과 아들의 생일도 기억하는 분이었다고 쏘아붙이는 미숙의 대사와, 의욕이 앞서다 보니 어린 선수들까지도 가차없고 냉정하게 대하던 혜경의 감독 재임 당시(평 선수로 돌아오기 이전) 태도를 통해 사람을 이끌고 지도하는 일에서 ‘능률’이나 ‘효율성’보다 훨씬 우선되어야 할 ‘마음 나눔’의 중요성을 새삼 기억하게도 됩니다. 뒤늦은 깨달음을 얻은 혜경이 승필에게 “감독이 선수들을 못 믿으면 그 팀은 백전백패야. 경기에서 절대로 못 이겨”라고 조언하는 모습이나, 남자 고교 선수들과의 시합에서 실책을 범한 신진 선수를 감독과 코치가 나무라자 “우리가 이겼으면 그땐 누구 덕분에 이겼다고 했을 건데. 핸드볼은 다 같이 하는 운동이지 개인플레이가 아니야”라고 분명히 지적하는 장면에서도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니까요. 





신학적으로도 “Already but Not Yet,” 즉 천국(the Kingdom of God)은 이미 도래했지만 또한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 성경의 일부 구절들은 “천국이 이미 도래한” 것(롬 8:30; 엡 2:6)으로, 다른 구절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요 18:36; 히 2:8)으로, 그리고 또 다른 구절들은 “이미 도래한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것(사 51:3; 마 16:18)으로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기에 – 찬양곡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The Best Is Yet to Come”이라는 문구(“당신에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역시 크리스천들 사이에 나누는 인삿말처럼 회자되곤 합니다. 이들 개념에 대한 저의 개인적 해석법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에겐 그 만남의 순간이 곧 “천국이 도래한(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때이겠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야 진정으로 “천국이 도래할 것(The Kingdom of God Is Not Yet)”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거듭난 ‘각 사람’의 삶에는 “천국이 도래”하여 이미 “최고의 순간이 왔을”지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에 “천국이 도래”하고 “최고의 순간이 오는” 때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아무런 물질적 대가나 세상적 명예도 바라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핸드볼을 위해 주저없이 국가의 부름에 응했듯 우리 역시 사랑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조건 없이 순응하는 순간, 또한 우리 국민들이 ‘변방’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모아 준 것처럼 우리 모두가 ‘변두리’의 삶을 사는 이들을 향해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는 순간, 바로 그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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