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J의 시선
누군가의 첫인상이 생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첫 장면부터 "이거다" 싶은 느낌이 오는 영화들이 가끔 있다. 개인적으론 이병헌 감독의 2019년 작 [극한직업]이 그랬다. 주연배우들 대부분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던 데다가 2015년 작 [스물] 이후 나름대로 눈여겨(?) 보고 있던 감독의 작품인지라 이미 기대치가 꽤 높아진 상태였음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유쾌함에 기분 좋게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는 열정은 넘치지만 실적은 부진한 고상기(류승룡) 반장 휘하의 마포경찰서 마약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데, 고 반장은 자신을 닮아 어수룩한 부하 형사들이 거하게 친 사고 때문에 경찰서장에게 팀 해체를 경고 받을 뿐 아니라 자신의 후배가 먼저 과장으로 진급한다는 수치스런 소식까지 전해 듣는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팀원들을 데려와 자기 팀(강력반)의 회식에 끼어드는 그를 한심하게 보던 최 과장(송영규)이 도와주겠다면서 슬쩍 흘려 준 정보는 다름 아닌 마약계 ‘거물’인 범죄자 이무배(신하균)의 국제 마약 조직 밀수 정황이다. 적선하듯 공조를 요청하는 최 과장의 제안대로 다음날부터 고 반장은 그의 팀원인 장연수(이하늬), 마봉팔(진선규), 김영호(이동휘), 김재훈 (공명)과 함께 이무배 패거리의 아지트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시작하지만 철옹성 같은 아지트 내부에 잠입할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썩는다. 그러던 중 인근 치킨집의 직원이 되면 그곳으로 배달을 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그들은, 파리만 날리다가 가게를 내놓았다는 치킨집 주인의 말을 듣고 덜컥 가게를 인수해 버린다.
그렇게 치킨집을 본부로 삼은 마약반은 이무배 패거리의 아지트에 감청 장치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하려 하지만 준비도 안 된 치킨집에 손님들이 찾아오는 의외의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이무배 조직원들이 치킨집에 주문을 하러 오기까지 하자 형사들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실제로 치킨집에서 ‘장사’를 시작하는데, 수원에 본가를 둔 갈비집 아들이었던 마 형사가 얼떨결에 만들어 낸 갈비 양념 치킨(그 이름도 찬란한 "수원왕갈비통닭")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이들의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엄청난 핫플레이스가 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형사들도 쌓여 가는 매출을 보며 점점 장사 자체에 재미를 붙이고, 이들이 치킨집 운영에 정신이 팔린 사이 이무배 조직이 아지트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안 그래도 대충대충이던 잠복수사에 비상등이 켜진다. 설상가상으로 한 방송국 PD의 악의 때문에 이들의 치킨집이 고발 프로그램의 타깃이 된 후 가게는 망할 지경에 이르고, 업무 시간에 장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마약반은 전원 정직되기까지 한다.
고 반장이 결국 경찰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은 것에 모두가 침울해진 와중, 사업가로 보이는 "정 실장"이 이들 앞에 홀연히 나타나 갈비 양념 치킨집을 프랜차이즈화하자는 사업 제안을 내민다. 형사들은 반신반의하지만 결국 그 동아줄을 외면하지 못하고, 계약을 마친 뒤 열심히 프랜차이즈를 홍보하며 다시 한 번 치킨 장사로 재기에 도전한다. 하지만 "수원왕갈비통닭" 분점의 질 낮은 서비스와 불친절한 직원들, 이상한 맛 등이 SNS에서 엄청난 혹평을 받자 이에 놀란 마약팀은 ‘분점 관리’ 차 가게들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 중 정 실장이 사실은 이무배의 부하이고 전국의 치킨 분점들이 실제로는 마약 판매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무배의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결의를 다진 팀원들은 다시 한 번 그의 뒤를 쫓게 된다.
선한 삶을 위해,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사실 엄청난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가 가진 개인적 지론인데, 이 작품 또한 상당히 영리한 방법으로 관객에게 무해한 웃음을 제공한다. 데뷔작 [스물]에서 가끔 과해지기도 했던 이병헌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는 이 작품에서 적절한 완급을 통해 B급을 넘어선 세련됨을 보여 주고, 통통 튀는 대사와 재치 넘치는 장면 전환으로 마치 코믹 만화 같이 시원시원한 전개와 흐름을 자랑한다. 다른 꿍꿍이가 있어 시작했던 어설픈 사업이 예상 외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는 설정은 2000년 작 [스몰 타임 크룩스](Small Time Crooks)나 1942년 작 [Larceny, Inc.] 등과도 비슷하지만, 범죄자들이 주인공이던 여타 영화들과 달리 ‘경찰’들이 장사를 하는 상황은 꽤 신선한 설정이다. 주연에서 조연까지 하나하나 존재감이 확실한 캐릭터들의 매력과 물을 만난 고기처럼 활개치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작품에 쉴 새 없이 에너지를 불어넣고 말이다(개인적으로는 오정세 배우가 연기한 "테드 창"을 최고로 애정한다).
대부분의 한국 코미디 영화들에서 후반부에는 억지로라도 ‘감동’을 욱여넣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나 다름없이 실행되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에 집중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영화가 영리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감동에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페이소스(pathos)를 끌어내기 때문으로, 살짝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설정과 상황들 속에서도 작품 자체의 테마라고 볼 수 있을 ‘평범함’에 근거한 뿌리가 영화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 준 결과일 듯도 싶다.
사실 마약 수사, 범죄자와의 두뇌 싸움 등과 같은 부차적인 요소들을 걷어 내고 나면 이 영화의 본질적 뼈대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남는다. 고 반장과 마약팀 형사들은 엄청나게 뛰어나고 특별한 인물들도, 그렇다고 직업적 사명감에 넘치는 사람들도 아닌 그냥 직장인들이다. 표면적으로는 범죄자들에게 맞서 싸우는 멋지고 정의로운 일을 하는 듯 보여도 결국엔 상사에게 쪼이고 후배와 승진 경쟁을 하며 온갖 더러운 꼴을 보면서도 묵묵히 출근하는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실제로 마약팀 팀원들은 영화 속 최고의 ‘악당’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이무배라는 인물과 개인적 역사나 원한이 전혀 없으며, 심지어 영화의 후반부까지는 서로 제대로 마주치지도 않는다. 이무배가 죄질이 나쁜 범죄자인 것과는 별개로 그는 마약팀 일원들에게 자신들의 자리 보존을 위해 잡아들여야 할 목표로서 외에는 그 어떤 감정적 의미도, 절박함도 투영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고 반장과 마약팀 형사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거창한 정의 구현이나 자신들의 실력을 인정받는 금의환향이 아닌 단순한 ‘살 길’일 뿐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쉽게 치킨집 장사에 홀려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린다. 타이틀만 거창하고 실속은 없는 남편의 "반장" 노릇에 질린 아내 은정의 눈치를 보던 고 반장은 장사를 마감한 뒤 아내에게 엄청난 단위의 현금을 턱턱 건넬 수 있는 ‘가장’ 역할에 심취하고, 경찰서에서 모지리로 놀림 받던 형사들 또한 치킨집의 성공에 줏대 없이 휩쓸려 버린다.
주인공을 ‘경찰’로 설정한 작품의 의도가 이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비슷한 플롯을 가진 다른 영화들에서 주인공이 범죄 행각을 도움 받기 위해 차린 가게에 장사가 잘 된다는 뜻밖의 상황은 단순히 유머적 요소로 사용될 뿐이지만, 이 작품의 경우엔 임무와 사명, 옳은 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는 보다 큰 주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범법자가 잘 되는 장사에 신경 쓰느라 원래 계획했던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 인물의 바람이나 삶의 방식과는 반대될지언정 객관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며, 불법을 저지르고 싶던 사람이 억지로 합법적인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악에 머무르던 사람이 선으로 끌려온다는 아이러니한 전개가 이런 설정에 웃음과 의외성을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범죄자를 쫓던 경찰들이 원래 목적을 벗어나 장사에 정신이 팔린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속하는 일(그 사업 활동의 합법성과 별개로)인 데다가 ‘악을 벌하는 선’으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리는 것으로까지 비난 받을 수 있는 행위가 된다. 실제로도 영화 속의 마약반은 치킨집 장사에 몰두하느라 막상 자신들이 치킨집을 열었던 본질적 이유, 이무배 패거리를 감시하는 일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영화 속 마약반의 행보가 한심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무배의 범죄 작전에 가담했음에도 ‘악’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이들의 모든 선택과 행동들이 결국은 어떻게든 잘 살아 보려 애쓰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고 반장과 부하들의 한심하고 찌질한 면모를 예리하게 포착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비웃어 넘기지 않는다. “치킨은 서민의 음식이라더라”며 맛있게 치킨을 먹는 당찬 딸을 바라보는 고 반장의 눈빛처럼 이 작품은 연민 어린 따스한 시선으로 마약반 일원들의 허둥대는 실수들을 감싸 준다. 열두 번이나 칼에 찔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도 변변한 인정이나 돈벌이의 기회를 얻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고 반장이 돈 버느라 수사를 좀 소홀하게 한다고 그것을 쉽사리 탓할 수 있을까? 객관적 사실 인지를 떠나 이 고달픈 세상을 함께 살아 나가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말이다.
다만 마약반 팀원들이 어느새 치킨 장사에 정신이 팔린 모습에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김영호 형사가 “왜 최선을 다하는데?”라며 포효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지다가도 조금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진짜 이유를 잊어버린 듯 잘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하는 내 모습도 저렇게 보이지 않으려나 싶어서 말이다. 어쩌면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길에서 우리를 벗어나도록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고난이나 핍박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성공과 여유를 쫓도록 방치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 위한, 악하지 않고 틀리지 않으며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목표와 노력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삶의 가장 본질적인 목적을 집어삼킬 때까지.
다행히도 영화는 마약반 팀원들의 본업인 경찰로서의 목표와 얼떨결에 생긴 정체성, 즉 소상공인으로서의 목표를 통합시키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고 반장은 경찰직을 그만 두고 치킨집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키는 일에 총력을 다하려 하지만, 이무배가 분점들을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의로운 분노를 회복한다. 물론 이무배의 범죄 행위 그 자체보다는(물론 마약을 유통하는 방식을 보면 정말 악질이긴 하다. 영화를 보며 상당히 섬찟했었다) 자신들이 열과 성을 다했던 치킨집을 이런 방식으로 망쳐 놓았다는 점에 더 ‘핀트’가 나간 듯 보이는 면도 있다. 마약반의 원래 목적, 다시 말해 그들의 직업적, 윤리적 의무가 사업자로서의 개인적 이익이나 사리(self interest)와도 일치하게 되면서 이들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확신으로 이무배 패거리를 소탕하려는 열의를 불태운다. 모두가 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사실상 선이나 정의의 실현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설정으로도, 또 ‘옳은 일’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그렇게 막연하고 거창한 일이 아님을 암시하는 상황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는 재미있게도 - 또한 영리하게도 - 이 시점에 한없이 어리숙하게만 보였던 주인공들의 ‘진짜’ 면모를 소개하며 반전을 선사한다. 마 형사는 유도 국가대표 특채 출신, 김영호는 UDT 출신(“사람도 죽여 봤다는 소문이…”라고 곱씹는 최 과장의 대사가 압권이다), 장 형사는 무에타이 동양 챔피언이고, 고 반장은 강력계 생활 20년 동안 칼을 12번이나 맞고도 죽지 않아서 "좀비"로 불리는 데다, 어설픈 막내 재훈까지도 야구부 출신으로 엄청난 맷집을 자랑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은 통쾌하고 재미있는 동시에 어딘가 찡하게 다가오는 구석도 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그 가운데에도 당연한 듯 옳은 길을 선택할 때, 즉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진실된 목적을 다시 붙잡을 때 이루어지는 유쾌하고 찬란한 회복으로도 보이고 말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던 후배 최 과장도, 의뭉스러운 악역들을 연기하며 쌓아 온 김의성 배우의 이미지 때문에 역시 어딘가 수상해 보였던 마포경찰서장까지도 결국 평범한, 적당한 선의를 가진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살기 힘든 이 세상에 굳이 더한 악의와 갈등을 보태지 않는 이 쿨함에서 따뜻한 다정함을 느낀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삶 그 자체에 내재된 우스꽝스러움에서 자연스레 재미를 찾는 이 작품은 ‘진짜 웃음’이란 결국 공감과 연민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함께 우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이듯 그 누구도 소외시키거나 상처 주지 않는 웃음을 되찾는 것 또한 유대와 연대의 한 부분일 듯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를 연결시키는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이 많이 나타나 준다면 좋겠다.
엄마 C의 시선
제목만 들어도 웃음을 터뜨릴 분들이 적지 않을 한국 영화 “극한직업”은 “과속스캔들,” “써니,” “타자: 신의 손” 등 오락성과 작품성으로 잘 알려진 영화들을 각색하며 영화계에 입문한 감독 이병헌이 연출을 맡고,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등 연기력으로 주목 받는 배우들이 주연으로, 그리고 신하균, 오정세, 김의성 등의 거물급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해 2019년 개봉되었던 “액션 코미디”입니다. 유명 배우와 이름이 같아 유리한 점도 불리한 점도 많을 듯한 감독 이병헌은 영화 “스물”(“로맨스/코미디” 장르로 구분되는)을 통해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세 번째 연출작인 이 “극한직업”이 흥행 돌풍을 일으킨 덕분에, 신파와 타성으로 몰락의 길을 걸을 뻔한 한국 코미디 영화계를 부흥시켰다는 어마어마한 칭찬을 들으며 삽시간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개봉한지 15일 만에 관객 수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이 영화는 총 누적 관객 수 1600만 이상으로 한국 영화 역대 관객수 순위에서 2위를, 그리고 누적 매출액 약 1,400억(제작비의 14배 이상)으로 역대 매출액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흥행 기록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2020년 5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과 기획상을, 그리고 2019년 40회 “청룡영화상”에서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 영화제들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여러 방면에서 기록적인 성과까지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기록들은 무조건 ‘웃기기만’ 하는 일이 목적이 아닌, 억지스럽지 않고 누구나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무해한’ 코미디를 만든다면 관객들이 알아보고 인정해 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잠복근무를 일상화할 만큼 열정적으로 근무에 임하며 나름대로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실적은 늘 바닥을 치고 있는 마포경찰서 마약반 반원들이 이야기의 중심인 이 영화에서, “만년 과장”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마약반 반장 “고상기”는 그나마 ‘한 건’ 할 수 있었던 기회마저 아쉽게 날려 버리면서 기수가 한참 후배인 강력반 “최반장”이 먼저 형사과장으로 승진하는 가슴 아픈 상황을 겪게 되는 데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서장의 결정으로 팀 자체도 해체 직전의 위기에 놓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범죄 조직의 국내 마약 밀반입 정황을 포착한 “최 반장”이 – 이제는 “최 과장”이라고 불러야 옳겠지만 – 공조를 요청해 오면서 “장연수” 형사, “마봉팔” 형사, “김영호” 형사, “김재훈” 형사 등의 팀 전체가 마약계 거물 “이무배” 조직의 아지트 근처에서 잠복근무에 돌입하게 됩니다. 물론 말이 좋아 ‘공조’지 사실은 기약 없는 잠복이 부담스러웠던 강력반이, 귀찮은 과정을 마약반이 다 처리해 놓으면 결정적인 순간 문제 해결의 공로를 자신들이 모두 차지할 심산이기는 했지만 말이지요.
해외에서 숨어 지내던 이무배가 조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복할 곳(그리고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근처 건물의 치킨집에서 지겨울 정도로 프라이드 치킨을 먹으며 지내야 했던 마약반 팀원들은, 기다리던 이무배가 갑작스레 출현하자 장사가 잘 안 돼 조용한 그 치킨집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은신해 감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하고 아예 가게를 인수해 버립니다. 하지만 오직 그 조직원들만 배달 주문을 한다는 말을 믿고 부담 없이 인수했던 치킨집에 손님들이 찾아들기 시작하며 실제로 닭을 ‘튀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데, 수원에서 갈비점을 하는 가족들의 양념 비법을 사용해 만든 마 형사의 양념치킨이 뜻하지 않은 호응을 얻어 입소문을 타면서 가게가 붐비기 시작합니다.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하느라 조직의 동향을 감시하는 일에 전념하지 못하는 팀원들이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던 차, 하필이면 서장의 호출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무배 조직은 그 건물에서 이사를 떠나 버립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허탈해하던 고 과장은 그나마 영업이 잘 되는 점포만은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으려 하지만 – 실상 미리 청구해 확보한 그의 퇴직금으로 계약했던 가게이기에 – 맛집 탐방 프로그램에 “수원 왕갈비 통닭”을 소개하는 방송 촬영을 제의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일이 있는 방송국 PD가 보복 차원에서 악성 기사를 내보내면서 가게는 파산 직전에 이를 뿐더러, 설상가상으로 그 방송을 본 후 마약 유통에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이무배 측이 고 과장 팀과 계약을 맺으면서 얽히고설키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자신이 중국에서 제조한 마약을 국내에서 유통할 파트너로 ‘동종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또 다른 마약업자 “테드 창”(본명은 “창식이”)을 끌어들이려던 이무배는 물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대편과 난투극을 벌이고, 그러는 사이 먼저 그들을 추적하던 마 형사에 이어 마약반 팀원 모두가 그곳에 출동해 양쪽 조직을 모두 체포, 소탕하는 쾌거를 이루어 냅니다.
워낙 폭소를 자아내는 대사들이 많이 등장해 영화를 봤던 관객들마다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대사가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제 경우에는 – 그리고 다른 많은 분들도 그러리라 짐작되듯 –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자신에게 따라붙는 고 형사를 향해 이무배가 “치킨집 하면서 왜 목숨을 걸어?”라고 소리쳤을 때 고 형사가 맞받았던 “네가 소상공인에 대해서 잘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고 해!”라는 대답이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대사를 들으며 위로 받은 소상인 분들이 실제로 많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 명칭에 “소(小)”라는 글자가 붙어 있어 별 대단치 않은 일을 일컫는 것처럼 들리는 명칭인 이 “소상공인”은, 그러나 사업체 수 596만 여 개, 종사자 수 955만 여 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기업 수의 약 95%, 전체 종사자 수 기준 36%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중요도를 차지하는 사업자, 사업 형태입니다. 그 치열한 경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그분들이 무슨 일에서든 “목숨 걸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자 차 안에서 잠복하며 기다리다 이무배 일당이 차로 떠나는 것을 보고 미행을 시작했던 김영호 형사가,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전화를 해도 모두들 장사하느라 정신이 없어 아무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는 바람에 혼자 추적하다가 갈림길에서 놓치고 돌아온 후 어이없어하며 했던, “범인 잡으려고 치킨집 하는 겁니까, 아니면 치킨집 하려고 범인을 잡는 겁니까?”라는 질문도 단지 재미있는 대사라기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의미가 꽤 깊은, 여운 있는 일침일 수 있을 듯합니다. 처음에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 닭을 잡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닭을 잡는 일이 범인을 잡는 일보다 우선이 된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삶의 여러 다른 측면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본말이 전도되고 우선순위가 뒤바뀐 상황의 전형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믿음 생활 가운데도 적지 않은 영역들에서 반추해 볼 수 있는 교훈이고 말입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잔혹한 장면들로 점철되는 영화들이 오락 영화 시장의 주류를 차지하는 요즘의 세태와 비교하면 상당히 ‘순수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이 작품에서조차 악당 쪽 ‘주 종목’이 마약 판매/유통으로 설정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우려스럽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마약 청정 국가”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어느 순간 무색해지는가 싶더니 언제 그런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마약 문제가 보편화(?)되어 가는 한국의 상황 때문인지 이 영화에도 등장하듯 자신들의 음식에 “마약 치킨,” “마약 김밥” 등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 오히려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 붙이곤 하는 실상과 맞물려, 이 영화가 그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교 주변에 산재한 수많은 “마약…” 간판들의 철거 운동에 직접 나섰다는 기사를 접한 일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며 실컷 웃고 난 어른들이 이를 관련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는다면 영화가 갖는 여러 의미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함께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