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전함 속에서 찾은 익숙함
아버지는 6개월여 만에 돌아온 집에서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병원복을 벗어던지고 지팡이를 내려놓고 익숙한 듯 냉장고에서 커다란 김치통을 꺼냈다. 내게는 찌개에 넣을 고기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고 다녀왔을 땐 이미 집안 가득 매콤하고도 시큼한 냄새가 맴돌았다. 아버지는 대파를 썰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가 입원하시기 전 친정집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무게가 10kg이나 줄고, 허공에 의미 없는 말을 내뱉던 아버지가 찌개를 끓이는 모습은 불완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자연스럽고 익숙한 풍경이었다.
입원 전 아버지의 집 베란다에는 시간을 견디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처럼 화분이 하나둘씩 늘어났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빛을 바란 채 시들거나 죽어있었다. 그 역시도 아버지가 오니 존재감이 생겼다.
아버지는 낯익음이 안겨주는 위안에 온몸을 맡긴 채 다시 돌아온 집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다듬고 있었다. 퇴원 전날까지 아버지가 돌아올 집을 못 미더운 듯 비우고 자리를 준비하던 나는, 금세 아버지의 보호자에서 딸의 위치로 리듬을 바꾸고 있었다.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에서 저자 대니 샤피로는 리듬에 관해 이렇게 표현했다.
"리듬은 다정한 정렬이고 우리가 일상에서 이상적으로 작업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위안이 되는 패턴이다."
"작가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언제고 문제가 생기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인생이라는 한 단어로 좁혀진다. (중략)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이 찾아오고, 눈이 온다. 지붕에서 물이 샌다. 이웃집이 공사 중이다. 위기를 겪는 친구가 전화를 해온다. 인생은 귀중한 글쓰기 시간을 가지라며 멈추는 법이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삶은 멈추지 않고, 우리는 협상한다. 안정되거나, 보통이거나, 고정된 날 같은 건 없다."
인생이 우리를 방해하고, 불완전하게 하고, 막막하게 한다는 것에 대해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인생에서 겪는 일 때문에 글을 썼고, 때론 그러한 인생을 핑계로 오랜 시간 글을 쓰지 못했다. 언제나 살기 위해 익숙한 물건과 공간, 책임을 만들며 견뎌왔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질 때, 예상치 못하게 흐트러지거나, 사라졌을 때 나는 줄곧 나약해졌다.
병원은 환자를 한없이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만들고, 보호자에게는 환자를 보호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을 넘치도록 쌓게 한다. 이러한 일은 누군가에겐 삶의 전체가 바뀌듯 아주 큰 경험이다.
아버지는 퇴원 후 스스로의 위치가 낯설거나 작아질 때 자주 이렇게 표현했다.
"이렇게 병원에 오래 입원했던 적은 처음이라서..."
익숙했던 공간이나 행동이 주는 힘은 실로 놀랍다. 잠시 미미해졌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금세 다시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아버지에겐 퇴원해서 돌아온 10평 남짓한 집이 그랬다.
나에겐 글쓰기가 그렇다. 다시 브런치에 글을 남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글쓰기가 내 삶의 주요한 리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주 1회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삶의 여러 핑계들을 앞세우며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나, 글을 쓰는 동안 내 안에 깊이 남겨진 익숙함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언젠가 아버지와 손을 잡고 춤을 추던 다섯 살 쯤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따라갔던 지인의 가게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조명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고, 어린 나는 그것이 동화 속에서 볼법한 무도회장이라고 여겼다. 아버지가 지인과 미팅을 하고 있는 사이에 차마 발을 내딛지 못했던 무대 위를 아버지의 팔을 잡고서는 아주 쉽게 올라갔다. 손을 마주 잡고 빙글빙글 돌거나 텅 빈 무대를 가로질러 달려왔을 때 보이던 아버지의 반짝이는 구두를 떠올린다. 지금 생각하면 낭만적이기보다는 피식 웃음이 나는 순간이지만, 그 시간이 내 리듬에 녹아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힘을 준다.
아버지의 뒤축을 꺾어 신은 실내화가 놓인 곳, 김치를 투박하게 썰어 넣은 찌개의 냄새가 나는 그 장소가 고달프더라도 존재감을 잃지 않고 조금 더 이어지면 좋겠다. 익숙하지만 언젠가 잃을지도 모를 그 모습을 내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싶다. 막막함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꺼내보고 싶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