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 성장하기
내일은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16주기이다. 너무 힘겹게 그리워하지 않게 된 지 불과 2~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작 엄마가 떠난 시간을 횟수로 꼽아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온전히 이별하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새삼스레 놀랍다. 그토록 엄마로부터의 독립이 어려웠던 걸 거다. 하지만 비로소 엄마와 온전히 이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엄마를 대신해서 미워하는 감정을 키우거나 엄마의 인생을 빗대어서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지 않는다. 세계 전체를 기대며 의지하던 사람이 사라져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과 곁에 있던 사람을 영영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 엄마를 잃은 경험이었다.
인생에서 홀로 남겨졌다고 느끼던 또 다른 순간은 병원 응급실의 딸린 작은 격리실에서였다. 항암 부작용으로 백혈구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떨어져 있었고, 격리 병동이 없어 응급실에 마련된 작은 입원실에서 며칠을 홀로 보내야 했다. 밤마다 벽 너머로 누군가가 떠나며 남겨진 이들의 애타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일쑤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줄곧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젊은 작가가 그린 웹툰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가끔씩 나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는 간호사를 내색하진 않았지만 반가워했다. 홀로 있는 것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더욱 지쳐가는 시간이었다. 응급실에서의 긴 시간을 보내고 입원 병동에 올라왔을 때 나는 병동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환자였다. 병실에서도 엄마뻘 되는 환자 혹은 그의 가족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받곤 했다. 또 그분들에게 찾아오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볼 때마다 나는 왠지 숨고 싶어 져서 급히 빠져나와 병원 복도를 하염없이 걷곤 했다. 쳇바퀴처럼 계속 복도를 돌다 보면 몸에 열감이 느껴지고 살아있다고 느껴졌다. 병실에 돌아오면 이른 저녁부터 커튼을 치고 성경책의 시편을 읽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지만 외로웠다.
속으로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시간이 많아지고, 혹독하게 혼자라는 사실을 경험하고 난 뒤로부터는 방어적으로 혼자인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혼자인 게 편하다고 여긴 나날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해지면 나는 외로웠고, 누군가가 그리웠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글을 쓸 때도 홀로 있는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그토록 쓰고 싶었던 오롯이 자유로운 '나의 글'을 쓰는데도 예상치 못한 외로움을 느낀다. 빈 화면이 펼쳐지고 나면 제목을 서너 번 고치고서야 간신히 본문으로 내려온다. 본문을 쓰면서도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하거나 쓰고 난 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최선이었는지를 되물으며 부끄러워한다. 마감 날이면 남편은 나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출근하고, 날 위해 퇴근도 늦게 한다. 나는 무언가를 써내야만 하는 이 시간에 다시 홀로 서지만, 글을 쓰는 중에는 사람과 장소, 받은 사랑을 다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안위가 날 살아있다고 느끼게 한다.
박노해 시인의 시에서 글을 쓰면서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발견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인간은, 세계 전체가 짓누르고 죽이려 해도
속마음을 나누고 이해하고 믿어주고 안아주는
단 한 평의 장소,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랑이면 살아지는 것이니
- 박노해 시인의 숨 고르기 '카슈미르의 저녁' 사진 에세이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나에게 숨을 고를 수 있는 단 한 평의 장소가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