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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Nov 26. 2024

아버지의 빈티지 가죽재킷

아버지의 낭만

 아버지가 빈티지 옷가게에서 가죽재킷 하나를 사 오셨다. 70이 넘은 노인에게는 좀 더 따뜻한 패딩이 어울릴 것 같은데 아버지는 개의치 않고 이 옷으로 겨울을 날 거라고 했다. 모처럼 새로운 옷이 마음에 드셨는지 한동안 거울 앞에 서서 재킷을 입고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셨다.

 1년 간의 투병 생활을 보내고 처음으로 산 옷이 새 옷이 아닌 구제옷이라는 게 신경 쓰였지만 아버지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 옷을 입고 교회에 갈 생각에 설레어했다. 나는 그 모습이 다행스러웠다.

 투석을 받고 나면 비틀거릴 정도로 힘들어하는 아버지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죽 재킷을 걸치고서 지팡이를 의존한 채 겨울을 나는 뒷모습을 떠올려도 그리 위태로워 보이지 않았다. 한낱 서른 중반의 내가 어찌 70대 노인의 낭만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어느 작가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림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사물에 짙게 드리워진, 조용히 나를 따르는 그림자를 알게 됐을 때 피터팬이 왜 그토록 그림자를 찾아 헤맸는지를 깨닫게 됐다고 했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곁을 지키는 그림자의 존재감을 알게 된 때는 언제일까.

 한동안 아버지가 나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있을 적엔 일상에서 먹고 즐기는 선택을 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미안하다는 말이 늘어가는 한없이 약해져 가는 아버지지만 오랜만에 아버지의 욕망과 낭만이 보여 좋다. 그것이 약해진 모습보다 빛이 나서 좋다.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내게서 떼어내어 다시 아버지에게 붙여 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주일에 검은색 빈티지 재킷을 입고서 새 옷을 입은 설렘에 굽은 어깨가 조금은 세워지시겠지. 교회 권사님이 “멋진 재킷을 입으셨네요!”라는 인사에 멋쩍지만 환한 미소를 띠며 내심 ‘내 선택이 맞았지’라고 낭만을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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