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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프레소 Mar 01. 2023

동성 부부 피부양자 인정, 기념으로 보는 영화 '밀크'

영화 '밀크' 리뷰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밀크’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논쟁적인 법안이 발의됐다. 동성애자는 공립학교 교사를 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법안을 낸 상원의원 존 브릭스는 “지저분한 행위를 한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선 동성애자가 아이를 가르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법안은 게이를 해고할 수 있게 하는 내용에 그치지 않았다. 이성애자 교사라도 동성애자를 지지한다면 파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밀크’는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하비 밀크의 실화를 담았다. 커밍아웃한 게이였던 그는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기독교인을 비롯한 보수적 미국인에게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당장 수많은 사람이 자기 성 정체성 때문에 캘리포니아 교단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밀크’(2008)는 이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남자 하비 밀크(숀 펜)의 실화다. 그 역시 게이였던 밀크는 동성애자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낼 것을 역설하며 성원을 얻었으나 마흔여덟의 젊은 나이로 살해당한다. 이 영화는 그가 죽기 직전 8년의 세월을 담았다.

그는 인종, 나이,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남부럽지 않게 살던 금융맨, 성소수자 커뮤니티로 스며들다


이야기는 하비가 불혹의 나이로 접어드는 날을 비추며 시작된다. 뉴욕에 사는 금융인인 그의 삶은 크게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지하철 역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데이트하자며 말을 걸 정도로 본인 매력에 대한 자신감도 충만하다. 마흔 살 넘은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다며 발을 빼는 남자 스콧(제임스 프랭코)에게 밀크는 얘기한다. “아직 서른아홉 살이야.”

스콧(왼쪽)과 하비.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당당해 보이던 이 남자, 사실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날 침대에 나란히 누운 스콧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마흔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데 허무감을 느낀단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스콧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지역으로 이주해 카메라 가게를 연다. 그는 당시 카스트로 지역으로 몰려들던 성소수자의 필요가 무엇인지 경청하고 그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낸다.

유능한 동료들이 하비 밀크에게 힘이 돼 준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차별받기 일쑤였던 게이들이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덕에 그는 지역 동성애자 사이에서 유명 인사로 떠오른다. 게이들이 원하는 것을 바탕으로 불매운동 등 일상 속의 정치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트럭 노동조합에서 사상 처음으로 게이 운전사를 공식 채용하게 만들면서 그는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이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영화의 초반부 구성은 ‘메시아 서사’와 닮았다. 구세주 서사의 기본 골격은 능력이나 신분상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 더 낮은 곳으로 임해 세상을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밀크’에 적용해 보면 미국 금융인으로서 주류 사회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던 하비는 일상적으로 폭력을 경험하는 당시의 게이들을 안타깝게 여겨 인생 방향을 전환한다. 기존의 삶보다 더 고난스러울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하비 밀크는 스콧과 함께 카스트로 거리에 카메라 가게를 열며 인생 방향을 전환한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동성애는 불어가 아니에요.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후의 스토리는 하비의 제도권 정치 입성 과정을 다뤘다.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세 번이나 낙마하고, 이에 지친 애인까지 떠나보내며 그는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1978년 네 번째 도전 끝에 당선되며 그는 캘리포니아주 최초 동성애자 선출직 공직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선 후 얼마 안 돼 시 전체에 적용되는 ‘동성애자 권리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걸 주도했다. 누구든 이미 고용된 사람은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비 밀크와 조지 모스코니 시장은 동성애자 인권 보장 조례를 통과시키는 데 협력했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 바로 서두에 언급한 법안이다. 게이와 레즈비언을 교단에서 모두 쫓아내려 했던 존 브릭스의 ‘제안 6호’는 당대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동성애에 갖고 있던 선입견을 반영하고 있었다. 브릭스는 하비와의 토론에서 “게이들은 자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을 부추겨서 자기들에게 합류시키려고 한다”며 “그것 때문에 교사직에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얘기한다.

밀크는 유쾌한 태도로 세상의 차별을 이겨냈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하비는 재치 있게 받아친다. “동성애를 어떻게 가르치죠? 프랑스어처럼 가르치나? 이성애자 부모님께 태어나고 이성애자 교사에게서 배웠으며 지독한 이성애자 사회에서 자란 나는 왜 동성애자가 됐을까?”


그가 이처럼 여유 있는 태도를 우직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투쟁이 쉬웠기 때문은 아니다. 하비는 숱한 살해 위협을 견뎌내야 했다. 동료가 연설 전 도착한 협박 메시지를 전해주며 몸을 사리라고 조언하자 그는 “온 국민이 보고 있다”는 대답만 남기고 연단에 오른다. 지금 피하면 계속해서 숨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비와 활동가들의 호소는 동성애자를 넘어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며 ‘제안 6호’를 부결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비는 동료와 지지자들에게 사랑받는 정치인이었다. /이미지 제공=스폰지이엔티

피격 … 11개월 만에 막 내린 시의원 활동


시의원 하비의 활동은 11개월 만에 끝난다. 시의원 사임 후 복귀를 꿈꿨던 댄 화이트(조슈 브롤린)가 그와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살해하면서다. 40세 이후 새 삶을 살고자 했던 하비의 여정도 10년이 안 돼 막을 내렸다.

댄 화이트(왼쪽)는 시의원으로 복귀하지 못한 분노에 하비 밀크와 시장을 살해했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하지만 사람들이 하비 인생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건 그 짧은 기간 때문이다. 월가에서 승승장구하던 금융맨 하비가 아닌 차별받는 이들의 옆에 서서 함께 조롱받던 소수자 하비가 사람들 마음에 흔적을 남긴 것이다.

하비 밀크 실제 모습. [연합뉴스]

최근 법원이 동성 커플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도 소수자와 연대했던 하비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부는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며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든 다수와는 다른 부분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단 점에서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소수자성을 인정하는 건 자신이 가진 소수자성도 더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반을 닦는 행위가 된다.

배우 숀 펜은 이 작품으로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영화 말미엔 하비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3만여명의 인파가 행진하는 모습이 조명된다. 암살당할 것을 대비해서 녹음해 뒀던 하비의 유서가 그를 기리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서로에게 희망이 되길 절대 멈추지 말라고 담담한 목소리로 격려한다.


“게이운동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개인적인 이득 때문이나 에고나 파워 때문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게이뿐 아니라 흑인과 아시아인 노년층과 장애인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들 말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우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나도 희망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면 인생은 살 가치가 없습니다.

‘밀크’ 포스터. /사진 제공=스폰지이엔티
*평가 및 OTT 정보는 2023년 3월 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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