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추천을 기념해 다시 보는 영화 <버닝>

왜 종수(유아인)의 아버지는 하필 MBC 사장이 연기했을까

by 씨네프레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버닝>을 '2018년 추천 영화 리스트'에 올리면서 이 작품이 한번 더 화제가 되는 모양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인스타그램에 '2018년 최고 영화' 리스트를 올렸다. 목록의 5번째에 적힌 'Burning'이 영화 <버닝>을 가리킨다.

작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버닝>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중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가장 많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영화적 체험을 극대화한 작품'이라며 찬사를 쏟아낸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문창과 신입생의 습작을 보는 듯한 영화'라는 정반대의 평가가 나왔다. 영화에서 전혀 다른 두 부분에 주목해 내린 듯한 두 가지로 극명히 갈린 반응은 사실 이 영화의 한 가지 특징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이 작품은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보면 영화적 체험을 극대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설익은 영화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버닝>의 포스터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억압된 에너지가 화산처럼 분출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감독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이 사회에 부작용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가피한 희생인지를 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바로 종수(유아인 분)의 아버지로 나오는 최승호 MBC 사장의 캐스팅이다. 최 사장이 맡고 있는 역할을 중심으로 <버닝>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이 글은 <버닝>에 대한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최승호 MBC 사장

영화는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 분)의 뒷모습을 쫓으며 시작된다.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촬영한 이 장면은 오랜 시간 지속되며 종수가 느끼는 고단함을 전달한다. 매장에 진입하던 종수가 호객 행위를 하는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면서 '일용직' '지방' '비주류' 등 키워드로 연결되는 두 사람 관계가 형성된다.

종수(유아인)

이 세계에 균열이 가는 건 해미가 '수입차' '강남' '부유층'으로 요약되는 남자 친구를 사귄 이후부터다. 종수는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자신에게 소개한 남자 벤(스티븐 연)을 질투하지만 그와 경쟁하는 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1t 트럭을 모는 남자가 포르쉐를 끄는 또래에게 품는 열등감 때문이다. 하지만 종수는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다"고 밝힌 후 그가 혹시 비닐하우스와 함께 해미를 태우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벤(스티븐 연)

해미는 돌연 실종된다. 그리고 종수의 시각에서 보면 벤이 해미를 살해했다고 의심하는 건 합리적이다. 이를테면, 벤의 집에는 여자의 액세서리를 수집해둔 장신구함이 있는데, 해미가 사라진 뒤 그 통엔 해미의 액세서리가 추가된다. 해미가 자취를 감춘 다음 벤의 옆자리를 채우는 건, 해미처럼 경제적으로 어딘가 불안정한 20대 여성이다. 또, 해미에겐 종수가 한 번도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보일'이라는 고양이가 있는데, 해미가 실종된 후 벤의 집에서 발견된 고양이는 "보일아"라는 종수의 부름에 반응한다.


해미(전종서)


벤이 범인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확증은 갖지 못한 종수. 현대사회에서는 확신만으로 사람을 단죄할 수 없다. 한 사회의 법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멈추는 게 맞다. 하지만, 감독은 묻는다. 논리적인 태도가 반드시 윤리적인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종수가 아무리 마을의 비닐하우스 사이를 뛰어다니더라도, 벤을 고소할 만한 증거를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종수와 벤의 신분 차이는 빈부격차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정보력의 격차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종수가 증거가 부족하단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다면, 아마도 벤의 장신구함에는 더 많은 여성의 액세서리가 수집될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모든 정황이 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을 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단죄하지 않는 게 사회적으로 올바른 판단인지 말이다. 종수는 벤을 죽이고, 포르쉐와 함께 태워버린다.


종수의 아버지를 연기한 최승호 MBC 사장


그렇다면 왜 최승호 MBC 사장이 종수 아버지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 경북대 동문인 감독과의 친분 때문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보통 이창동 감독처럼 사실주의 영화를 찍는 사람이 비전문배우를 기용하는 이유는 배우가 기존 작품을 통해 구축해둔 이미지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즉, 관객이 잘 모를 법한 배우를 출연시킴으로써 선입견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반면, 최승호 MBC 사장은 사회적으로 명확한 '캐릭터'가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는 'PD수첩' PD로서 황우석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공영방송의 공익적 가치를 입증해 보였다. 2012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그는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에서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권에 대한 반대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러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 MBC 사장으로 친정 복귀에 성공했다. 보수 정권 당시 MBC를 구(舊) MBC라고 한다면 최승호 사장은 정권 교체 이후 신(新) MBC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렇게 사회적으로 뚜렷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을 이창동 감독이 섭외한 건 그 사회적 캐릭터를 작품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한 종수 아버지는 영화 밖에서의 최승호 사장과 겹쳐 보인다. 시청 공무원을 폭행한 이유로 재판을 받는 종수 아버지의 모습에서 옛 정권을 겨냥하다가 온갖 고초를 겪게 된 최승호 사장의 인생을 읽는 건 무리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가 공무원을 때린 이유는 '분노조절장애'로 축약돼서 애매하게 나오지만, 종수 아버지의 친구로 나오는 문성근이 '네 아버지는 타협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기득권에 대한 모종의 저항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종수가 "보일아"라는 부름에 반응하는 고양이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종수 아버지를 최승호 사장으로 설정한 것은 전체 영화의 질문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 질문이 '해미와 같은 약자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을 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유력 용의자를 단죄하지 않는 건 정의로운 행위인가'에 대한 것이었을 때 말이다. 보수 정권에 맞서던 신(新) MBC를 상징하는 'PD수첩' 제작진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영했고(최승호 사장은 당시 'MBC 스페셜' PD로 근무), 이 방송은 그해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일어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촉매제가 됐다. 하지만 이후 방송의 허위 여부를 놓고도 지난한 공방이 이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에 걸렸다 △주저앉는 소는 모두 광우병에 걸린 소다 △한국인의 94%가 광우병 걸릴 위험이 있다는 등 3가지 내용에 대해서 허위 또는 과장·왜곡이라고 하면서도 '공익적 보도의 성격이 인정된다'며 제작진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는 언론, 또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많은 질문거리를 던진다. 지금까지도 당시 광우병 보도가 국민을 선동하는 방송이었다며 분개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일단 찌르고 보는 태도는 팩트에 어긋나기에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을 때 찌르려 달려드는 사람이 없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가 당시 목도했던 건 조각조각으로 봤을 때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에 불충분했던 사실들이 하나로 모였을 때 스모킹건이 되는 모습이었다. 지난 한 해 한국사회를 강하게 휩쓸었던 미투는 어떤가.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단 이유로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추악했던 남성 기득권자들에게서 위선의 탈을 벗기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허위로 판명된 일부 미투가 팩트 체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창동 감독


이창동 감독이 한쪽을 지지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보인다. 감독은 종수의 비겁하고 사악한 면까지 함께 드러내면서 그를 단순히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시각은 던져버렸다. 그저 불타듯 달아오르는 한국 사회의 에너지를 포착하고, 무엇이 옳은지 질문할 뿐이다. 억압됐던 에너지가 여전히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기에, <버닝>이 던진 질문은 2019년에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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