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도 영화도 드라마도 … 밀레니얼의 추억을 팝니다

앤 마리 '2002' 디즈니 '알라딘' 열풍으로 보이는 문화계 트렌드

by 씨네프레소
앤 마리 '2002'는 자신이 11살이었을 때를 추억하는 밀레니얼의 이야기다. <사진=유튜브 캡처>

밀레니얼(1980년~2000년대 초반생)의 추억을 건드리는 작품이 문화계에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도 복고(復古)가 유행한 적은 있었지만 현재 레트로 열풍은 음악·영화·드라마 등 콘텐츠 전반으로 퍼지고 있기에 이례적으로 보인다. 소비 시장에서 밀레니얼의 위상을 반영하는 트렌드라는 분석이 나오는 한편, 높은 실업률과 경제 성장 정체로 희망을 잃은 청년층이 과거에서 위로를 얻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2002' 어떤 노래이기에 차트 정복했나

영국 작곡가 겸 가수 앤 마리의 '2002'는 수 주째 국내 음원 차트 상위권에서 내려올 기미를 안 보이고 있다. 최신 종합 주간 순위(6월 17~23일) 기준 멜론·지니뮤직 3위, 소리바다 4위를 차지했다. 아이돌을 위시한 K팝 중심으로 돌아가는 요즘 음원 차트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1990년대 말을 풍미한 보이그룹 엔싱크의 '바이, 바이, 바이'(왼쪽)를 앤 마리는 '2002'에서 오마주한다. <사진=유튜브 캡쳐>

이 노래는 2002년에 11살이었던 여성 화자가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웁스, 아이 갓 나인티 나인 프로블럼스 싱잉 바이, 바이, 바이'(Oops, I got 99 problems singing bye, bye, bye)라며 당대 히트곡 세 곡을 한 번에 소환하는 후렴구가 백미다. 이 구절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게인', 제이지가 부른 '99 프로블럼스', 엔싱크 '바이, 바이, 바이'가 들어 있으며,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들을 오마주(다른 작가에게 존경을 표하며 그와 유사한 작품을 창작하는 행위)한다.


가사 외에도 노래의 전반적 요소가 모두 2000년대 초를 가리키고 있다. 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는 "트렌디한 신스 사운드와 드럼 비트를 활용하면서도 이를 자극적이지 않은 아날로그 느낌으로 매만진다"며 "노래가 언급하고 있는 당대에 향수를 지닌 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90년대 히트 애니 실사화해 밀레니얼 공략하는 디즈니

한국에서 704만 관객(25일 영화진흥위원회)을 모은 실사 영화 '알라딘'의 인기도 밀레니얼의 향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영화는 1993년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이 원작으로 당시 10대였던 관객들은 현재 30·40대가 됐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5월 23일 개봉한 '알라딘'이 이달 23일까지 끌어들인 관객 중 30~49세 비중은 55.6%다. 이는 '기생충'의 3040 관객 비중인 49.1%보다 6.5% 포인트 높다. 이 시리즈 4편으로 돌아와 100만 관객을 돌파한 '토이스토리'도 3040이 주 관객으로 전체의 56.2%를 차지한다. CGV 관계자는 "아이와 추억을 공유하려는 부모 관객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개봉 전 동심파괴 논란을 빚었던 윌 스미스의 지니(왼쪽)는 밀레니얼에게 멋진 추억 여행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두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월트디즈니는 향후에도 20여 년 전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영화로 밀레니얼을 공략한다. 7월 말 '라이온 킹'은 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마녀 시점에서 바라본 영화 '말레피센트', 유역비를 주연으로 내세운 '뮬란'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알라딘'과 '미녀와 야수'는 성인까지도 즐길 수 있는 코드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전성기를 연 작품"이라며 "현재 실사화되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단순 가족용을 넘어서는 파급력이 있다"고 했다.

7월 17일 개봉을 앞둔 실사화 '라이온 킹'. 원작에서 삼촌 스카를 끊임없이 도발하던 심바의 성격이 어떻게 변했을지 관심이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유튜브에서는 옛 시트콤이 뜨겁다. SBS '순풍산부인과'(1998)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 MBC '거침없이 하이킥'(2006) 에피소드는 업로드될 때마다 조회수가 치솟는다. 가족들이 미달이의 방학 숙제를 다 같이 도와주는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방학숙제' 편은 330만 번 넘게 재생됐다. '두말할 것 없는 레전드', '지금 봐도 웃겨' 등의 댓글이 3400여 개 달려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1일부터 일본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전세계 독점 방영 중이다. TV시리즈 총 26편과 극장판 '에반게리온 데스 앤 리버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어, 진심을 너에게'를 포함한다. 이에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에반게리온' 감상 순서 등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독점 방영을 시작한 '신세기 에반게리온' <사진=넷플릭스 제공>


◆ 밀레니얼은 왜 복고에 열광할까

밀레니얼이 그 어느 세대보다도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강한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중문화계에서는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복고 열풍에 한몫했다고 본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새로운 동네와 장소,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새로운 것이 다시 금방 식상해지는 게 반복되다 보니깐 차라리 과거에서 새로움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2030 세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며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아날로그 정서가 남아 있는 세대의 향수"라고 설명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 국면에 절망한 청년들이 어린 시절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곽금주 교수는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경쟁이 심하지 않았던 과거를 돌이켜보게 된다"며 "일반적으로 사람은 과거를 더 푸근했다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기에 점점 더 어린 시절에 기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