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주 Jun 23. 2022

11화 문학소녀를 만난 꿈 없던 소년은

첫사랑의 프로파간다

 다른 애들이 한창 대입 준비의 정점을 향해 갈 때, 나는 연애를 시작했다. 2001년의 겨울이었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십팔 년 동안 들어왔던 것이다. 좋은 대학은 몇 개 없고, 인간은 너무 많다. 그런데 왜 가야 한다고 했더라?


 십 대 시절의 사랑은 도를 넘기 마련이다. 심지어 첫사랑이었다. 비밀 연애가 될 수 없는 동네 연애는 곧 부모에게 발각되었고, 투옥과 탈옥이 반복되었다. 꿈이 없던 내게 여자친구의 꿈은 프로파간다가 된다. 그녀는 문학소녀였다. 


 투옥이 되었을 때는 문학을 읽었고, 탈옥을 했을 때는 영화를 봤다. 시와 소설은 졸렸지만, 영화는 두근댔다. 컴퓨터 게임과 만화책, 바보가 되는 축구와 중2병 환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인 록 음악에 빠져있던 내게 새로운 영토가 열렸다. 세계는 넓고 볼 건 많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거기서 뭘 공부해야 하는지는 몰랐던 부모님은 나의 입시에 개입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냐? 다, 너 잘 되라는 거 아니냐? 나는 공부하고 싶어도 못 했는데, 너는 왜 이러냐?”라는 타박을 해왔고, 그건 정당했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남들보다 늦게까지 일하시던 부모님은 대학 구경도 못하셨던 분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전전두엽은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고, 나는 이해했음에도 통제하지 못했다. 우리의 오랜 조상이 그러했듯 십 대 후반은 원래 짝짓기를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문학과에 진학했다. 나는 꿈이 없었고, 문학은 졸렸지만, 여자친구는 문학소녀였다. 그러니까 

 

 첫사랑은 왜 아름다운가? 첫사랑은 왜 시들지 않는가? 첫사랑은 왜 병 속에 들어간 신 같은가?


 첫사랑이 아름답고, 시들지 않고, 병의 신이기 위해 끝나야 한다. 


 누구나 가기 싫지만 누구든 뺄 수 없는 곳이 군대다. 나는 아무나였기에 속절없이 가야 했다. 그렇게 국군이 되어 탄약창으로 갔고, 나의 님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물 건너갔다. 군인에게 까마득한 세월은 님에게도 마찬가지의 세월이다.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의 곁에서 식민지의 백성 같이 살았던 그이는 독립이 필요했다. 물 건너간 님은 빼곡한 엽서를 보냈지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했던 그이도 말을 잃어갔고, 그만큼 엽서는 무안해졌다. 빈 엽서의 여백에는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차기 시작했고, 그 시절이 나의 계급을 키웠다. 전투력을 거의 잃은 병장이 되었을 때, 물 건너 세계시민이 된 첫사랑의 마지막 엽서가 왔다. 초대장이었다.  


 세계시민으로의 초청이었지만, 나는 조선의 고지식한 상놈이었다. 


 학교에 돌아와서 보니, 아-

 나는 국문학도였다. 

 국문학도라고? 어쩌다가…

 낙동강은 흐르고 나는 오리알이었다. 정말이지, 정말로.


 그리고 계절은 돌고 돌아


 십오 년의 강물이 흘렀다. 오리알이던 예비군은 오리가 되어 민방위 대원이 되었다. 그 오리는 새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온 오리알들 앞에 쭈뼛대며 서 있다. 그러고는 떠든다. 아주 뭐, 잘난 척을 한다. 정말이지, 정말로 인생은 알 수가 없고, 도통 모르는 것이다. 문학소녀를 만난 꿈 없던 소년은 선물 받은 문학을 졸린 눈을 비비며 읽었다. 읽어도 별 감흥은 없었고, 이해도 잘 되지 않았지만, 그건 숙제였고, 그녀는 과외선생이었다. 그랬는데, 그랬던 바보축구는 이제 문학을 가르치는 오리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조선의 고지식한 상놈은 세계문학론을 가르친다. 글로벌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올해 내게 세계문학론을 배운 오리알들은 곧 나는 오리가 될 것이다. 물 건너간 세계시민의 일원이 되어, 어디든, 그렇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