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주 Jun 02. 2023

18화 층간소음의 가해자이자 피해자

좋은 이웃도 답이 없을 때가 있다

 첫아이를 출산하면서 장모님의 동네로 왔다. 아이가 생겼을 때 장모님을 예비역으로 삼는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총각은 “세상에, 너무 감사합니다.”를 달고 사는 사위가 됐다. 우방이 든든한 나라가 평화를 지킵니다.


 문제는 그 동네의 아파트들이 내가 아이이던 시절에 건설된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될 것을 우려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왔고, 갓난아기는 우는 게 자신의 일이었다. 살기 위해 우는 애는 밤낮이 없다. 떡을 돌리며 양해를 구했고, 이웃들은 ‘귀엽다’고 했다. 


 문제는 그 이웃들이 바뀌면서다. 우리는 아이가 울 때마다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고 손목을 갈았다. 그 사정을 알기에 관용을 받았을 터.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제는 우리가 피해자가 됐다. 혼자 살던 청년이 나가고 초등학교 남학생과 중학교 여학생을 자녀로 둔 집이 위로 이사를 왔다. 옆으로는 초등학교 여학생 둘이 들어왔으며, 대각선 층에도 한창 뛰어다녀야 되는 아동이 포함된 가족이 왔다. 


 이사 첫날부터 심상치가 않아서 다음날 슬리퍼 선물을 가지고 아기가 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올라갔다. 이해해 주셨고 서로 좋은 이웃이 되자며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우리는 수렵채집인의 후예가 아니던가.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힘들게 재운 아기는 층간 소음 때문에 깨기 일쑤였고, 그런 날은 새벽 내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낮잠 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올라가 보면 자신의 집이 아니라 옆집이나 대각선 혹은 그 위의 집이 범인이라고 하셨다. 거짓말일 때도 있었고 사실일 때도 있었으리라. 내가 자란 만큼 아파트는 낡았고, 아이가 어린만큼 우리는 예민해졌다.


 아내는 장모님께 고통을 호소했고, 아이를 봐주러 오셨을 때도, “이게 무슨 소리야?!” 하셨다. 층간소음은 공동주거 공간의 생활소음이기에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버텨왔는데, 아이는 자꾸만 깨면서 “아빠, 이게 최선이야?”라며 울어댔다. 울어대면 이제는 우리가 가해자가 된다. 다른 애들은 시끄러워도 잘만 잔다는데 ‘우리 아이만 예민 보스인가’ 싶다가도 그런 게 다 내 유전자 탓, 내가 만든 환경 탓이니 하소연할 때는 주님 밖에 없다. “주여, 젭알!”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주인집과의 계약기간이 아직 남았지만, 그런 시절에 비슷한 고통을 겪었던 주인 형님은 이해한다고 하셨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주변에 모든 것이 갖춰진 곳이었다. 무엇보다 걸어서 병원을 갈 수 있었고, 어린 아기는 자주 거길 가야 했다. 이제는 신생아 시절을 졸업하고 제법 걷는 시기다. 태어날 때 다소간의 문제가 있어서 받게 된 재활 치료도 일단은 마무리가 됐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층간소음이 덜 하고 중심지에 있는 곳으로 가면 최고지만, 그럴 형편은 못 된다. 아이가 실망하겠지만, “얘야, 보통의 삶도 보통이 아니란다.”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주머니 사정안에서, 그래도 너무 멀어지지 않는 선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를 찾았다. 인근에 뭐가 없는 아파트지만 지은 지 6년 밖에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층간소음 문제가 없다는 이야길 들었다. 전세 가격도 비슷한 컨디션의 다른 아파트에 비해 싼 편이었다. 왜인가 봤더니 인근에 축산 시설이 있단다. 그렇다는데, 뭐, 냄새야 괜찮겠지?


 주인이 집을 내놓고 얼마지않아서 다음 세입자를 구했다. 새 세입자는 바로 옆 아파트에 살았는데, 주인이 매매로 집을 내놓아서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 집을 보러 와서는 우리에게 왜 나가냐고 물었고, 우리는 “예민한 아기가 있고, 층간 소음이 있어서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저희야 나랑 다 큰 애 둘이 살 거라 별 상관없지만 갓난아기 키우기는 힘들 거예요. 여기 아파트가 층간소음 문제가 조금 있는 것으로 유명해요.”라고 하셨다. 


 아, 그렇습니까? 아니,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요!


 어제 이사를 마쳤다. 아이는 우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고, 정말이지 예뻐 죽겠다. 이번 주말에는 다시 팥시루떡을 돌리며 새 이웃에게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할 것이다. 좋은 이웃이 좋은 이웃일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