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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Oct 31. 2021

1화 우주의 발견

태양이 우주 짱 아니었어?

  국민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숙제를 하기 위해 반장 집에 갔다. 반장집은 사진관이었다.

  “안녕하세요. 숙제하러 왔어요.”

  “그래, 딸내미는 잠깐 심부름 갔다. 들어가 있어라.”

 그 시절 가게와 가정집은 흔히 붙어있었고, 우리집처럼 반장집도 그랬다. 나는 반장과 또 다른 학우를 기다리며 반장 방을 두리번댔다. 외동이었던 그녀는 자기 방이 있었고, 구석엔 풀칼라로 된 얇은 과학책들이 있었다. 공룡기를 졸업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공룡편을 찾았는데, 없었고 대신 우주편이 있었다. 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 책을 폈는데, 거기에는 내가 모르는 우주가 있었다.


 옛날에는 지구가 우주 짱이었다. 고귀한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과 졸병들 그리고 별사탕 같은 별들이 조아리며 지구를 돈다. 거들먹거리며 짱 행세를 하던 지구는 16~17세기를 지나면서 코페르니쿠스에게 망치로 두들겨 맞는다. 물론 망치의 표적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인이었다. 외워라, 지구인이여. 짱은 태양님이시다.


 뭐,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태양이 짱이고, 지구도 조아리며 돈다. 우리 역시 태양의 아이들이고, 지구의 에너지는 모두 태양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이 태양을 숭배한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우리 학교 옥상 위에 있는 저 태양은 중앙 시계만하지만, 멀어서 그렇지 지구 크기의 109배(지름)란다. 몸무게(질량)로 따지면 무려 33만배라고 하니, 짱할 만하다. 인정. 뭐,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장의 우주는 그게 아니었다. 책을 보니 태양의 지름은 1,392,000km인데, 시리우스라는 형님은 2,335,000km였다. 뭐야, 태양보다 큰 놈이 있었어?! 바보야, 아르크투르스라고 있는데, 그 형님은 22,101,000km란다, 10배 정도 차이가 나지. 뭐라고?! 야, 뭘 놀래, 고놈도 아무것도 아니야, 베텔기우스는 903,500,000km고, 세페우스자리 VV는 2,644,800,000km야. 헉...! VV형님 정도만 되도 밝기는 태양의 35,035~200,000배이고, 지름은 태양의 516~1,000배지. 게다가 이 형님보다도 큰 형님들이 우주에는 여럿 된단다. 세상에, 엄마! 너무 무서워!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데, 반장과 친구가 왔다. “뭐하냐?” 나는 내가 접한 영적 세계를 이 친구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이 복된 소식을 땅 끝까지 전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어떻게 발굴하게 됐는지, 나의 공룡기가 오늘 왜 끝장이 났는지, 무엇보다 엄마 생각이 어쩌다 났는지를 이야기 했다. 나의 구구하고 절절하던 신앙 간증을 듣던 친구가 입을 뗐다.


 “그게 뭐?”

 “으, 응?”

 “숙제나 하자.”

 “응?, 응...”


 놀랍게도 이 불신자에게는 성령의 불이 내리지 않았다. 반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 책 빌려줄게, 가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래? 다시 말을 꺼내려는데, 앵콜금지였다. 


 이후 숙제를 어떻게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 장래희망 칸을 고민 없이 쓰게 됐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당시 나는 딱히 되고 싶은 것이 없었기에 친구들 칸을 기웃기웃했는데, 드디어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내 꿈은 바로 바로 ‘과학자!’


 이후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됐는가? 그럴 리가. 나는 과학자가 된 것이 아니라,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되었고, 덕분에 과포자(과학을 포기한 자)도 되었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호기심도 필요했지만, 그보다 머리가 필요했다. 엄마가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머리, 공부머리.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고, ‘이 인간아!’의 사람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때 받았던 충격과 공포, 그리고 솟아나던 호기심을. 그리고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런 나의 간증에 무심했던 친구들의 어벙한 표정을.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면 어쩌면 그랬기에, 그때의 기억은 소박한 나의 우주에 지금도 떠있다. 빛나는 항성이 되어 오늘도 은하계를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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