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사라져 가느니 한순간 불타 없어지는 편이 낫다!”
얼마 전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새 앨범 <But Here We Are>(2023)가 나왔다. 들어보니 좋은 음악이었고, 밴드가 겪은 비극(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의 죽음)을 예술로 승화하고 있었다. 푸 파이터스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공고히 만든 훌륭한 밴드이고, 여전히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소중한 팀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다른 인물이 자꾸만 떠오른다. 푸 파이터스는 너바나(Nirvana)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그롤(David Grohl)이 만든 밴드다.
10대 시절의 나는 록 음악에 심취했다. 사운드도 사운드지만, 그 ‘정신’을 동경했다. 그리고 그 ‘정신’의 정점에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있었다. 그는 타락한 음악신의 대안으로 등장했고, 자신이 타락한 음악신이 되자, 스스로를 불태워 시대의 정신이 됐다.
“서서히 사라져 가느니 한순간 불타 없어지는 편이 낫다(It'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커트 코베인의 유서 中
10대를 대변하던 아이돌은 어른들이 써준 가사로 장사를 했고, 록 부심에 빠졌던 나는 그런 게 우스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꼰대가 써준 꼰대 까는 노래가 뭔 의미가 있냐?” 코베인의 영혼만이 아티스트의 그것이었고, 나머지 장사치들은 부셔야 할 적폐였다. 나의 록심은 신실했다.
우주의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세월은 흐른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Dangerous>(1991)를 빌보드 차트 탑에서 끌어내린 너바나의 명반이자 나의 록 바이블인 <Nevermind>(1991)도 나이를 먹었다. 2011년에는 20주년 기념 앨범이, 또 2021년 9월에는 30주년 기념반이 나왔다. 그 주기로 이 음악을 다시 들었고, 지금은 그러고도 2년이 더 지났다. 록의 화신이자 록을 죽인 코베인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고, 또 또 듣고, 그렇게 들어왔건만,
나도 흔한 적폐가 되었다.
이제는 어른의 사정과 아이들의 협력에 그러려니 하게 됐고, 음악은 영혼의 불을 키우는 양식이기도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임을 잘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엔터테인먼트라도 영혼의 불은 얼마든지 킬 수 있었다. 세상에, 나의 록심은 어디로 갔나? 나는 불신자가 된 것인가!
그래도 그 시절의 여파가 나의 내장에는 조금 남아있다. 그래서 구차하고, 그 덕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