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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Apr 03. 2022

7화 팬이 되고 싶어요 下편

신앙고백이 되는 음악

 나에게 2000년 9월 9일은 매년 돌아오는 추석 연휴의 하루였다. 하지만 사촌 형과 누나들에게는 오랜 시간 동안 손꼽아 기다려 온 날이다. 뭔 일인고 했더니, 그날 저녁에 서태지 컴백 공연을 MBC에서 방영한다는 것이었다. 1996년에 은퇴를 했던 서태지가 다시 가요계로 돌아왔는데, 나는 딱히 그의 팬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며 송편을 우걱우걱 먹을 뿐이었다. 


 ‘아니,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를 학창 시절로 보내면서 그의 팬이 아니 될 수가 있단 말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어쩌면 나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데뷔했을 때는 국민학생이었고, 그가 은퇴했을 때도 초등학생이었다. 물론 내 또래 아이들 중에도 서태지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소풍을 가면 장기자랑 시간에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곡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흥국의 아싸-<호랑나비>나 <꼬마 자동차 붕붕>을 더 좋아했다. 나는 또래보다 더 작은 아이였고, 그런 내게 서태지의 음악은 어려웠다. 


 하지만 사촌 형과 누나들은 사춘기 시절에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자랐다. 그들은 X세대였고, 가요계에서 비롯된 혁명이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것을 체감했다. 바로 그 차이가 2000년 9월 9일 저녁의 온도를 결정했다. 시간이 됐고, 새빨간 레게머리를 한 서태지가 드디어 등장했다. “렛츠고!!!”


-

?

!


 자막이 올라간다. 공연이 끝났다. 


 시청을 마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의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었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다고? 콘서트를 이런 식으로 해도 된단 말인가! 들뜬  온도에서 시작했던 사촌형누나들도 나와 같은 걸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달리 판단했다. “아…… 이제 서태지 노래 더는 못 듣겠다. 왜 이렇게 됐냐?” 


 나는 왜 그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형누나와 달리 골로 갔다. 그들은 시청 후 식었지만,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음반숍으로 뛰쳐가고 싶었다. 그 음악을 계속 들어야 하는 몸이 되었다. 형누나들은 이제야 송편을 집어먹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 이상 떡을 삼킬 수 없었다.


 2000년의 서태지는 누메탈이라는 과격한 음악을 들고나왔고, 우리 대중음악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그는 그 해에 조성모, 지오디와 경쟁했는데, 압도하기는커녕 대중적으로는 도리어 밀리는 형국이었다. 서태지는 매번 우리에게 생소한 장르를 끌어와 한국 가요계를 혁신했고, 엄청난 인기몰이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렇게 우리 시대의 정서 자체를 바꿨다. 하지만 이제는 21세기다. 그가 통치하던 90년대가 아니다. 


 그렇다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나로서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서태지는 사촌 형1과 사촌 누나1, 2를 잃었지만, 새 팬을 얻었다.

 셋을 잃고 하나를 얻은 서태지는 유감이겠지만,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팬이 되는 건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많은 서태지 팬들이 이 새로운 사운드를 낯설어 하며 떠났다. 그런데 나는 듣기 괴롭다는 이 음악이 왜 좋았을까? 그렇기에 취향은 신앙이 된다. 계시가 모든 걸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실했던 기존의 신자들 중에도 새 음악을 영접하지 못한 영혼이 숱했다. 반면 아무런 의지가 없던 내가 느닷없는 불세례를 받았다. 나는 비로소 짝퉁 테이프와 결별했고 진정한 경전을 얻었다. 경전의 수록곡들은 참기쁨으로 채워진 복음이었다. 예배에 필요한 음악은 싱글이 아니라 앨범이었고, 앨범만이 경배를 받을 가치가 있었다.


 ‘음악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 조상이 곰이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순도 높은 ‘뻥’이었기에 코웃음을 쳐왔는데,


 내가 믿게 됐다. 정말 곰이 우리의 조상이었고, 나는 신실한 신자가 되어 중한 죄짐을 지게 되었다. 아무렴 어때, 할 수 없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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