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호모 데우스』를 읽고
[독서 에세이] 인공지능의 미래와 SF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고
<1> 프로기사의 스승이 된 알파고
‘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중국의 샛별로 불리던 19세의 구쯔하오가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이 마스터스는 이전의 대회와는 흥미로운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알파고 쇼크의 여파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인 알파고는 인간 최고수의 영역을 훌쩍 넘었고, 이제는 프로기사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기사들은 “알파고가 왜 그렇게 두는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다만, 그렇게 둬서 이기기 때문에 연구할 따름이다.”(프로연우, 유투브 채널, 2017.9.6)라고 고백합니다. 2017년 마지막 대회에서 바로 이 연구의 성과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8강전이었던 신진서 8단과 탕웨이싱 9단의 대국이었습니다. 탕웨이싱은 16에서 곧장 3·3부터 들어갔는데, 이는 엄청난 악수로 알려진 수법입니다. 프로들 대국에서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바둑기사 훈련과정에서도 이 수를 두면 혼쭐이 나는 악수입니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 3·3을 너무나 즐겨 사용합니다. 그 빈도가 너무 높아서 ‘묻지마 3·3 침입’이라고 불릴 정도입니다. 알파고로 인해 이 수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가 이뤄졌고, 프로 대국의 실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본 대국은 3·3을 시도한 탕웨이싱이 신진서를 꺾었습니다. 탕웨이싱은 결승에서 구쯔하오에게 져서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2국의 역전패는 대국 당시엔 수를 봤는데 신경이 끊어진 것처럼 실수를 했다. 알파고였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한창규, ‘19세 샛별 구쯔하오, 삼성화재배 우승’, 한게임바둑, 2017.12.7.) 알파고는 이미 프로기사들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2017)
<2> 인공지능의 진화
바둑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따라오기 힘든 영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계산이 아닌 직관이 바둑에서 핵심이기에 인간만의 게임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하는 분들도 많았지요. 하지만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참패하면서 도리어 질문은 우리에게 되돌아 왔습니다.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말해졌던 직관과 창의성도 결국 경험에 따른 계산의 산물이 아닐까?’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새롭게 토론에 부쳐지고 있는 영역은 비단 직관과 창의성뿐이 아닙니다. 감정 역시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의 지배적 종이 되었는가에 대한 여러 대답이 있습니다. 그중 핵심은 사회성이고, 높은 수준의 상호작용이 가능했다는 점을 꼽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마음의 다양한 심리기제 즉, 감정들이 깊고 넓게 발전되어 왔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SF의 대표 작가인 테드 창도 인공지능 진화의 핵심이 ‘감정’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테드 창의 중편 소설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북피어스, 2013)는 인공지능이 진화하는 하나의 길을 보여줍니다. 많은 SF 작품들이 인공지능의 진화를 ‘우연’에 기대거나, 혹은 이미 그렇게 된 상태에서 무대에 올린다면, 테드 창은 그것이 구현되는 과정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의 애완동물과 같던 ‘디지언트(digient)’는 알파고(제로)와 같이 “아무런 지식이 없이 시작”(16)하지만, “학습 능력을 갖게 해 고객이 직접 가르칠 수 있는 AI”(18)였습니다. 디지언트들은 서로가 상호작용하기도 했고, 또 고객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다양한 양상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디지언트와 끝까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성가셨고, ‘학습 능력’이 있기에 귀찮은 사물이 되어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양이, 개, 디지언트.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정말로 돌봐야 하는 존재의 대용품에 불과해”(61)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극소수의 디지언트만이 지속적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경험을 축적해 갑니다. 그렇게 진화하던 디지언트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 새로운 세대인 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되고, 이들은 “직접 만나 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온라인 친구의 하나”(113)로 디지언트를 여기게 됩니다. 이렇게 진화된 소수의 디지언트는 새로운 사업과 접목되면서, 인류의 일상에 성큼 들어옵니다.
<3> 4차 산업혁명 선언과 SF
하지만, 인공지능 진화의 핵심에 ‘감정’을 놓는 것이 인간중심적인 발상에 불과하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논자가 유발 하라리입니다. 그는 『호모데우스』(김영사, 2017)에서 “무인자동차는 이 모든 일을 어떤 문제도 없이, 그리고 어떤 의식도 없이 해낸다.(···) 많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신의 행동을 고려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의식이 발생하지 않고, 어떤 프로그램도 뭔가를 느끼거나 욕망하지 않는다”(165)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진화시켜야 했고, 그 덕에 지배종이 되었습니다. 맹수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마음 혹은 담대한 용기, 타인을 의심하고 또 공감하며 협동하는 마음 등 우리는 다양한 심리기제들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진화된 마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지나친 성욕은 과거에는 보다 많은 짝짓기 기회를 제공했겠지만, 지금은 성범죄자가 될 확률을 높입니다. 낯설고 거대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조상에게 생존에 유리한 심리기제였겠지만, 현재는 성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운전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잘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도 감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인공지능 진화의 핵심을 ‘감정’의 구현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도리어 ‘감정’의 도입이 인공지능 기능의 퇴보를 의미할지 모른다는 문제제기를 받습니다. 이세돌 9단도 알파고의 대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감정 없는 대상’과 대결하는 ‘감정 있는 나’라는 구도였다고 말한바 있지요.
4차 산업혁명이 선언되었습니다. 이것은 묘합니다. 과거의 산업혁명은 사후적인 규정이었습니다. 즉, 지난 산업혁명들은 그 혁명이 충분히 무르익은 이후 규정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건 산업혁명이었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오지 않은 세계에 미리 선언되었습니다. 즉, 가능성으로 도래했습니다. 따라서 앞을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는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또 누구는 ‘이것은 거대한 사기이고 공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극단 사이에 지금의 세계가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상상력이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그것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SF적 상상력을 통해 앞으로 도래할 인간 세계와 그곳에서의 다양한 양상과 감정의 결들을 지금 미리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