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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담는 창고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책마을, 그림책 미술관

by citevoix



00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려야 할까?


친환경 시대를 넘어 필환경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서 새롭고 다양한 의미를 지닌 환경과 파생된 단어들이 생겨났다. '업사이클링', '리사이클링'. '다시 사용하다'라는 재활용의 개념은 질문에 대한 답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을 '물건'이 아닌 '공간'으로 옮겨보면 어떻게 될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공간'으로 말이다.


유휴공간은 유휴(遊休)와 공간(空間)의 합성어로써, '사용되지 않는, 쓰지 않고 가만히 놀리는 공간'으로 정의되며, '쓸모없음'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공간이라는 의미는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유휴공간은 산업, 군사, 행정, 교육, 도심공동화 지역, 자투리 공간, 정기시장 등 발생원인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유휴공간은 녹지, 공원으로 조성되거나 문화시설, 예술창작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즉, 유휴공간은 '새로운 기능의 부여'를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삼남지대 지도 출처 | 구글



01 동맥이 흐르는 곳


역참은 교통, 통신 업무, 군사 및 병청의 업무, 사법 기능, 교역 및 정보 교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의 도로 및 통신제도는 이러한 역참의 전통적인 역할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유사 이래로 고대시대, 삼국시대, 조선시대 삼례지역은 호남 최대의 역참지이며, 조선시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거점이자 한반도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가 존재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1920년 일제 강점기 시대, 옛 삼례역과 군산역을 통해 일본으로 양곡을 반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규모 곡물 창고가 있었다. 여기는 '완주 구 삼례 양곡 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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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暗

'완주 구 삼례 양곡 창고'는 당시 일본인 지주와 직원들이 관리 목적으로 근무하였고, 산미증식계획에 맞춰 호남지방의 쌀을 대거 수탈하여 이곳에 저장한 후 철도를 통해 경성으로 보내거나 근처 군산항으로 보내 일본 본토에 보냈던 쌀 수탈 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해방을 맞이하면서 미군정령에 의거해 적산으로 지정되었고, 1948년 국유지가 되어 1961년 농협중앙회가 설립되면서 2010년까지 삼례 농협 저장고로 사용되었지만 창고 노후화로 폐쇄된 후 폐건물로 방치되었으나 완주군이 주변 일원을 매입해 공공 주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미술전시, 공연예술, 문화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이 담겨 있는 2013년 6월, 지역 문화예술 재생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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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역사의 흔적이 수행하는 역할


삼례예술촌은 틀림없이 방치된 곳 아니 보존된 곳이었다. 벽체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채 색이 바랬고, 입구를 버티고 있는 철문들은 모두 고철 덩어리들처럼 녹이 슬어 있었다. 또한 옛 농협저장고로 사용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심벌과 명칭, 관리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명패 역시 그대로 1920년대 지어진 양곡 적재를 위한 목조 구조 건물의 양식과 흔적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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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의 내부로 들어오면 벽면에 자리 잡은 서까리 형태를 볼 수 있는데 당시 비나 눈이 내리는 경우, 양곡에 물이 스며들어가지 않기 위함이며, 지붕 트러스와 벽의 위쪽에 있는 작은 창, 지붕 위쪽의 환기 시설 등은 창고 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진입로 문을 자세히 보면 그물망이 창을 감싸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설치류, 벌레 등이 양곡에 접근하지 못하기 위함이란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양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카페로 이용되던 이 공간은 내부의 로스팅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피콩 향들로 창고를 가득 매워 방문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운영 어려움으로 카페는 운영상 이유로 빠지게 되었고 현재는 미술체험 프로그램과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원을 마주하며 길게 이어진 통창은 어둠이 가득한 창고에 화창한 빛을 들여주고 의자에 머무르고 있으면 마치 새로운 것이 들어올 것만 같은 환영의 느낌을 준다. 바깥의 정원은 원래 수풀과 물로 가득 차있고 데크로 내외부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현재의 모습으로 구조 변경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만약, 원래의 모습의 형태와 여전히 로스팅 카페가 운영을 하고 있었다면 정말 근사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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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외부로 나가보자. 넓게 형성되어 있는 지붕 트러스와 차양 등의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곳곳에 그때에 맞춰 보수를 통해 유지되어 변형된 부분들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속 정면에 보이는 목조 구조물의 양식들이 총집합한 이 장소에 자연 그대로의 곡선을 살린 가우디 양식의 조형물도 발견할 수 있다. 건축양식은 그 시대의 사회와 흐름을 읽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처음 양곡 창고가 지어질 때 존재했던 조형물이 아니라 운영주체가 변경되면서 추가로 설치가 된 작품으로 추측된다.)



7동 창고는 현재 제2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조적조(건축 양식 중 하나로 돌,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드는 건축구조양식)의 형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은 붉은 벽돌의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숨긴다. 측면 부분은 증축을 이루어 현재 야외 공연장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어 다양한 공연예술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만경강 주변에는 2016년 생태하천복원사업으로 조성된 면적 약 90,000m2의 생태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공원 이름은 조성 당시에 발견된 금개구리에서 착안하여 '금와습지생태공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금개구리는 '금줄개구리'라고도 불리며, 천적인 황소개구리의 증가와 농약 사용 등 환경의 변화로 개체수가 급감하여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보호받고 있다. 완주군은 현재 삼례문화예술촌을 통해 희귀 생물의 보호와 서식환경 조성에 어린이들이 자연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 및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여 시그니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삼례예술촌을 벗어나 둘레길을 따라가면 작은 마을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엔 세월이 깃든 커다란 양곡창고가 있다. 삼례책마을은 2013년에 삼례로 이전한 영월책박물관이다. 1950년대에 지어진 양곡창고를 개조하여 책마을센터, 헌책방, 북카페 등을 갖춘 북하우스로 전시 및 강연 시설이 있는 북갤러리, 한국학 문헌 아카이브 이렇게 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있다. 양식 창고가 지식의 창고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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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로 쭈욱 이어진 데크를 따라 1층으로 진입하면 양곡창고의 커다란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웅장한 트러스 양식에 시선을 쫒다 10만여 권의 소장된 책 보관소의 규모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 책마을에서는 고서 판매를 중심으로 각종 도서전과 세미나,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지고 있는데 특히, 주말에는 마을 광장에서 헌책 벼룩시장이 열리고 전국의 고서수집가가 삼례를 찾아온다. 이곳은 책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책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다시 골목으로 나와 조금 걷다 보면 또 다른 양곡창고를 발견할 수 있다. 삼례역 주변으로 양곡창고들이 정말 많이 있다는 걸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양곡 안전 관리' 큰 텍스트와 코드 넘버의 기존 외관 역시 그대로 둔 채, 그림책 미술관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책 미술관이다. 내부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방문했던 시간대에 어린이들의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해 내부의 모습을 경험할 수 없어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정보에 의하면 그림책 미술관은 작가의 친필 원고와 원화를 전시하고, 작품 속 등장인물을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해 책을 읽듯이 돌아볼 수 있게 꾸며놓았다고 한다. 또한 상설전시와 시기별로 매회 기획전시를 통해 아이들이 동화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03 재해석의 새로운 방향


도시는 경제적사회적 영향으로 확장축소되거나 내부가 재구조화되는 등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도시의 쇠퇴한 원도심에는 건축자산이라 불리는 공간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유휴공간을 가장 이상적인 활용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의 기능이 부여되는 '문화적 재탄생'이다. 문화를 정의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문화는 협의로 본다면 고급문화를 의미하며 주로 예술적 표현으로서 문화를 뜻한다. 음악, 미술, 연국, 건축, 문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 광의의 문화는 생활양식을 의미하며,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여 한 나라 또는 한 지역의 삶의 모습을 통칭한다. 따라서, 유휴공간의 '문화적 재탄생'의 활용 측면에서 본다면, 문화는 광의적 측면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으며, 예술적 표현을 넘어 '인간의 생활양식, 삶의 모습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 창작 스튜디오, 공연장 등의 고급 예술 측면만이 아닌 공원과 광장, 커뮤니티 센터 등 일상적인 생활환경 측면에서의 활용 또한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공공 주도 공간재생사업은 대부분 입지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배후 주거지가 빈약해 주민들이 찾아오기 어렵거나, 이동 동선으로부터 외각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재방문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은 민간 주도와 달리 지역 이해관계자들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하기에 퀄리티가 높은 콘텐츠를 생산하기 어렵고, 사업 자체가 선투자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 연계할 만한 매력적인 공간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도보로 주변과 연계할 만한 매력적인 장소의 부재는 재방문을 이끌어내기 어려워 단발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공공 주도 공간재생사업은 입지적 약점으로 인한 재방문의 어려움, 다양한 이해관계의 반영으로 집객 기능의 약화, 도보로 연계할만한 매력적인 장소의 부재 등 세 가지 위험요소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위험요소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민간 주도 사업처럼 영리만 목적으로 할 수도 없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황으로 볼 때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지속성과

수익성 역시 놓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소 만들기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커뮤니티의 참여와 연계를 수반해야 한다.

셋째, 교류와 소통을 통해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강조되어야 한다.


유휴공간의 '문화적 재탄생' 활용방안 사업을 추진 시 공공의 적극적인 투자와 책임감 있는 운영주체를 선정해 공간 조성・콘텐츠 기획・리테일 숍 등의 유치를 같이 해 가는 모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또한 지방도시의 경우 서울 등 대도시에 반하여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인적, 물적, 금전적 자원 등)이 부족하다. 그만큼 다양한 시도가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해당 지역의, 그 지역만이 가능한 콘텐츠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즉, 기존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새롭게 재해석해 사람들을 유인하여 재방문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소수의 건축자산만으로는 재방문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에 연계할만한 매력적인 공간과 함께 재생사업으로 조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04 앞으로의 기대


삼례예술촌은 양곡창고를 개조하여 지역작가 공모전 전시, 세미나 등 지역의 역사성과 고유성을 살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책마을, 둘레길 조성 등 다양한 문화 자원을 활용한 마을문화 공동체 육성사업을 통해 문화 성장을 이루고 사람들의 방문을 이끌어 내며 공공 주도 공간재생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다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 운영 및 리테일 숍 유치, 둘레길 조성 사업 등의 노력으로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게끔, 조금 더 머무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있기를 기대한다.



글, 사진 | citev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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