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잘린 불상이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3년 전쯤, 족자카르타에서 본 모습이다. 족자카르타는 우리나라의 경주나 일본의 교토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한 인도네시아의 역사도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아 외국 여행객은 많이 찾지 않던 곳이었다. 나는 그 명성을 알고 있었지만, 태평양의 ‘불의 고리’ 지역에 있는 도시라 혹시 위험하지 않을까 망설였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화산 투어를 했다. 투어는 거의 폐차 단계에 달한 낡은 지프차로 산악 길을 마구 달렸다.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엉덩이가 족히 이삼십 센티미터 공중으로 들썩였다. 이 지프차의 운전수들은 10여 년 전 화산 폭발로 모든 것을 잃은 원주민들이다. 시커먼 얼굴에 흰 치아를 모두 드러내고 웃어주는 그들의 순박한 미소가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막막한 현실 앞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생계수단이지만, 자연재해마저 상품화한 냉정한 자본의 운동법칙에 씁쓸했다.
이 도시 최고의 유적은 보로부두르 사원이다. 앙코르와트, 버간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단일 불교 건조물로는 최대 규모다. 자연의 무서운 힘 앞에 인간이 그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그저 종교적 신념뿐 일게다. 권력자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악용해 이속을 챙기는 것이 동서고금의 공통분모인가 보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유적 앞에 막상 서니 고대 족자카르타 민초들의 팍팍한 삶이 먼저 떠올랐다. 자연재해의 공포를 종교에 의지해 극복하려 했으나, 권력자가 강제하는 건축 노동으로 오히려 고통스러운 삶이 이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근대에는 서구 열강에 나라마저 쓰러져 300년 넘게 식민통치를 받았던 민초들은 희망마저 꺾이지 않았을까?
이를 상징하듯 사원 여기저기에 목이 잘린 불상이 앉아 있다. 불상은 모두 500개가 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식민통치자들에 의해 목이 잘려 두상만 세계 도처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 목 없는 불상을 바라보던 식민지 국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문득, 일제 강점기의 비열한 일본 사학자가 함부로 훼손했던 우리의 문화유산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족자카르타에는 경이로운 고대 유적이 또 있다. 프람바난 힌두교 사원이다. 인도네시아는 국민의 80% 이상이 무슬림인데, 대표적인 종교유적이 불교와 힌두교 사원이라는 사실은 유적 그 자체보다 더 경이롭다. 오랫동안 의지해 오던 불교나 힌두교가 중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을 터이다. 중생의 삶을 구원하지 못하면 신이라도 인간에 의지에 따라 탄핵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전지전능한 신도 참으로 인간적인 존재다. 불교와 힌두사원 유적지인데도 히잡을 쓴 무슬림이 많이 보였다. 이 나라 알라신은 IS나 탈레반의 알라신보다 마음이 너그러운 모양이다.
귀국길에 그 나라 국적기 가루다 인도네시아를 탔었다. 가루다는 힌두 신화의 신이 타고 다니는 신비스러운 새라고 한다.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이 힌두 신화의 새를 타고 다니다니... 귀국 길은 뭔지 모르게 씁쓸하면서도 뒤죽박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