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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y 15. 2023

*전화 걸기 두렵다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75)


왜 우리는 무슨 무슨 날이라고 이름을 붙여야만 문득 생각난 듯 안부를 묻고, 수선을 피울까?

줄 이름 붙은 날들이 많아서 유난히 무거운 오월의 달력을 보며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큰 꾸러미의 식재료를 작게 포장하여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것처럼 사랑과 감사도 작게 작게 담아서 자주 꺼내 쓰면 안될까?


5월의 인위적인 사랑은 마구마구 손에 쥐어주고, 돌아서기 바쁘게 빼앗아가는 기분이 든다. 어째서 날짜 배치를 그토록 숨 가쁘게 했을까?

5월의 달력, 빽빽하게 준비된 이름표 중에 내 생일마저 끼어있어서 괜히 챙겨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꽃과 과일을 풍성하게 만나서 좋기는 한데...

날이 갈수록 세상이 하도 빠른 속도로 돌아가니, 제 철 과일, 제 철 꽃이 따로 없는 것 같다.

과일은 시도 때도 없이 뒤엉크러져서 아무 때나 매대에 올라앉고, 꽃들은 천천히 눈 맞춤도 하기 전에 우르르 몰려왔다가 바쁘게 지고 만다.

그 틈새에 끼어 머뭇거리고 뒤뚱대다 보면 세은 저만큼 멀어지고 나만 동그마니 서있게 된다.



오늘은 스승의 날~ 생존해 계셔서 가끔 안부를 전하는 두 분 은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서울에 계신 국민학교 2학년 때 스승님은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여전히 밝은 음성으로 전화를 받아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6학년 때 가르쳐주신 스승님과는 어제 낮부터 저녁까지 여러 차례 전화를 해도 통화가 안된다.

작년에 뵈었을 때, 한 달 전 사모님을 떠나보내셨다고 쓸쓸하게 말씀하셨는데,

그새 선생님께 무슨 변고가 생긴 건 아닌지 불안했다. 아흔을 훌쩍 넘기고 혼자 남은 어른이시니 전화를 받지 않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동생분에게 문자를 남겼더니 오늘 아침에 전화를 해주셨다.

다행히 크게 편찮으시지는 않고,

자식들이 번갈아 주말에 와서 같이 지내고 간다고 했다.

낮에는 노인돌봄센터에 나가시고 저녁때에 돌아오시는데 귀가 어두어서 전화를 안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연세 드신 어른들께 전화드리기가 두렵다. 행여 못 받을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은사님은 주말에나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근래에 어머님을 비롯 많은 지인들이 하늘로 주소를 옮기신다. 소식도 전할 수 없는 막막한 곳으로...



오늘은 학습관 1학기 마지막 보충수업을 했다. 선물 받은 꽃바구니를 앞에 놓고, 오늘의 나로 살게 해 주신 은사님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었다.

내 가슴 바닥에 슬픔으로 가라앉아있는 그리운 선생님의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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