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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외우기 대신 이해하기

「인사」라는 일

by Opellie

우연히 영상 하나를 만났습니다. 영상 속에서 한 일타강사는 학생에게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이에 학생의 부모님은 시간이 부족한데 책 읽는 시간에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죠. 이에 강사분은 '암기 대신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인사를 이야기하며 '암기보다는 이해'를 강조합니다. 암기는 주어진 답을 만나게 하지만 이해는 우리를 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개인적 일 수도 있지만 '암기보다 이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공부하는 저는 '이해'를 필요로 하는 성향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면 어린 시절의 저는 이해 대신 암기해서 시험 보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당장 시험을 보아야 하니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일단 암기를 한 거죠. 지방이긴 하지만 공부를 아주 못한다는 말을 듣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잘 외워서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외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사팀 발령을 받고 인사업무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왜 하는가'를 알고 싶어 했지만 전임자 대리님은 '이렇게 하는 거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속에는 '대리인 내가 이만큼 잘했어'라는 의미가 덤으로 포함되어 있었고, 생각해 보면 그건 일을 해본 사람이 그 일을 알고 모름에 관계없이 일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일종의 블러핑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수인계를 받는 시간 내내 나에게 들려온 이야기는 학창 시절 마주했던 상황과 같았습니다.


「이해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고 외워!」


이후로 인사담당자로 살아가는 시간 동안 이와 같은 맥락의 말들을 들어왔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도 들어보고 시키는 대로 해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은 이해하는 대신 암기를 선택했던 어린 시절에 느꼈던 묘한 거리감을 다시금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때론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외운 대로 하면 바로 답을 낼 수도 있겠지만 이해하려면 수학 한 문제를 놓고 일주일 동안 혼자 씨름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대단히 비효율적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1시간이면 될 일을 일주일이나 들인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해'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는, 친한 사이가 된다는 점입니다.


"자 요기. 이게 뭘 풀은 것 같네?"

"루트2?"

"그래"

"루트2를 소수점 아래 38자리까지 손으로 계산한 거야"

"그냥 루트2라고 쓰면 되지 뭐하러 굳이 이걸. 변태다 변태"

"이 변태가 바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베른하르트 리만 동지다"

"리만? 그 리만 가설할 때 리만요?"

(중략)

"문제는 최고의 수학자로 존경받는 그 리만동지가 어째서 이 1.41421356 그런 한심한 계산을 했냐는 거야"

"그니까요"

"친해질려고 그런거야"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극 중 이학성과 한지우 대화 발췌


저는 인사라는 일을 외우는 대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공들여서 천천히 아주 꼼꼼하게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건 어쩌면 제가 가진 성향일지도 모르지만 인사라는 일을 외우는 대신 이해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시간 어느 날 제 상급자분이 저를 호출합니다. 대표님이 다면평가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셨다고 말이죠. 저는 바로 제도를 만들고 운영했습니다. 상급자분은 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Opellie는 어려운 일을 되게 쉽게 한다"


인사라는 일과 친해지면 일견 어려워 보이는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친하니까 그렇게 일을 했을 때 인사라는 일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도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인사의 입장에서 인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견으로 인사라는 일은 친해지면 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일이라 말합니다. 인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죠. 저는 많은 분들이, 특히 인사라는 일을 하는 분들이 인사라는 일과 친해지길 바랍니다. 언뜻 보기에 지금 당장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무엇보다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사를 주어진 답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인사를 '공들여서 천천히 아주 꼼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지금의 제가 그리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사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의 여정에 한 자락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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