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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seulgi Oct 20. 2016

인페르노(Inferno, 2016)

단테를 향한 감독의 애정이 보이긴 하지만...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에는 단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드러난다. 영화 제목 '인페르노(Inferno)'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일컫는 말이다. 이외에도 영화 속 미스터리의 핵심 장치는 모두 단테와 연관된 것들이다.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의 주머니에 있던 포인터는 단테의 '지옥'을 이미지화한 보티첼리의 지옥 그림을 담고 있다. 단테의 마스크가 어떤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랭던 역시 단테 전문가이기에 사건에 휘말린다.



 영화의 서사도 단테의 '신곡'을 그대로 차용한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과 연옥을 여행한다. 이후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올라가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단테는 그녀를 따라 천국의 일면일면을 살핀다. '신곡'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베아트리체는 죽을 때까지 단테가 사모하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단테의 마음 속 이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신곡에선 끝내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헤어지고 만다. 둘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에나 브룩스(펠리시티 존스)는 베르길리우스다. 위기에 처한 랭던을 시에나가 구해주는 시퀀스는 위기에 빠진 단테를 베르길리우스가 구해주는 장면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이후 시에나는 랭던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된다. 그와 함께 곳곳을 돌아다닌다. '지옥도'를 보며 미스터리를 함께 풀이한다. 이 자체가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의 지옥&연옥 여정을 생각나게 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세례를 받지 못하였다. 그의 천국 출입은 불가능하다. 시에나와 랭던의 동행 역시 천국의 문을 눈앞에 두고서 끝마칠 필요가 있는데, 실제로 시에나는 베니스에서 랭던의 뒤통수를 치고 달아난다. 


 엘리자베스 신스키(시드 바벳 크누센)는 베아트리체다. (이 비유에 대해선 이 백과사전 내용을 참고하여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22965&cid=40942&categoryId=33054) 단테의 천국 여행 동승자는 베르길리우스가 아닌 베아트리체였다. 영화에서 랭던과 함께 다니던 인물이 베니스 시퀀스를 기점으로 바뀐다. 이스탄불에서부턴 엘리자베스가 랭던의 옆에 서서 앞서 시에나가 했던 역할을 수행한다. 엘리자베스야 말로 랭던의 천국 여행을 돕는 베아트리체다. 엘리자베스는 랭던과 함께 조브리스트(벤 포스터)의 계획을 저지시킨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사모하듯 랭던은 엘리자베스를 사모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좌절된 듯보인다. 랭던은  엘리자베스를 마음 속으로나마 자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랭던 역시 말한다. "지옥을 거쳐 베아트리체에게 갔던 단테는 끝내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을 이룩하지 못했다." 랭던은 지옥을 돌아다녔다. 엘리자베스와 함께 천국을 거닐었다. 그렇지만 둘의 사랑은 끝내 실현되지 않는다. 랭던이 엘리자베스에게 묻는다. 다시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엘리자베스의 대답은 여운을 남긴다. 엘리자베스는 랭던의 마음 속 이상으로 남는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은 애초부터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문학적 의의가 있다. 



 한데 딱 그뿐이다.  영화가 미스터리의 묘미를 잘 살렸느냐 한다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아리송하기는 하다. 하지만 아리송한 상태에서 위기감이 고조되다 모니 모든 위기감이 뜬금없이 느껴진다. 영화 속 펼쳐지는 추격 시퀀스는 놀랍도록 아무런 긴장감도 안 준다. 갑갑하기만 하다. WHO의 브루더(오마 사이)와 리스크 컨소지엄의 해리 심(이르판 칸 )의 의문스러운 행동들은 헛웃음만 유발한다. 바옌사(안나 울랄루)의 죽음은 어설픔 그 자체다. 서사를 '신곡'에 끼워  맞추다 보니 미스터리가 실종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단테 스스로도 영화가 망쳐 놓은 '신곡' 속 지옥의 풍경을 보면 굉장히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일 것이다.



 사랑의 원죄가 아닐까. 랭던은 말한다. "세상의 가장 큰 죄악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다."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 머물렀다.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두 사람은 선악과에 입을 대고 만다. 선악과를 먹기 무섭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벌거벗은 서로의 몸을 감추기 급급하다. 두 사람의 원죄가 '사랑'이란 해석도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에덴동산에 있을 때 자식을 갖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야 '카인'과 '아벨'을 낳는다.


 조브리스트는 인구 과밀을 문제 삼는다. "인류는 자정 1분 전에 위치해 있다."는 명대사를 남긴다. 조브리스트는 출산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산은 '사랑'의 결과물이다. '인페르노'로써 인류 청소를 꾀하는 조브리스트의 시도는 '사랑'에 대한 응징으로도 볼 수 있다. 조브리스트는 인간이 지닌 '원죄'로서 '사랑'을 문제 삼는다. 시에나가 악행을 저지르는 명분도 '사랑'이다. 시에나는 사랑하는 조브리스트의 유지를 잇고자 무모한 행동을 벌인다. 



 한데 이상하다. 시에나는 '사랑'을 문제 삼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 한다. 시에나가 조브리스트의 못 다한 계획을 도우며 완성시키는 건 그들의 사랑이다. 시에나는 단테가 지옥을 거쳐 베아트리체를 만났듯 지옥을 거쳐 천국의 조브리스트를 만나고자 한다. 자신에게 닫혀 있는 천국의 문을 '인페르노'로써 활짝 열어 젖히려고 한다. 조브리스트 또한 마찬가지다.  조브리스트가 정작 머무는 공간은 시에나와 사랑을 나누는 '방'이다. 조브리스트는 시에나에게 '단서'를 남긴다. 시에나에게 그 단서를 보고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켜줄 것을 부탁한다. 


 랭던과 엘리자베스는 사랑을 바탕으로 인류의 구원을 이끌어낸다. 엘리자베스는 랭던에게 포인터를 넘긴다. 그럼으로써 조브리스트의 계획을 저지시키려 한다. 이스탄불에서 랭던은 위기에 처한 엘리자베스를 구해낸다.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는 상대를 제압한다. 세상에 '지옥도'를 펼쳐 놓은 건 분명 사랑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구원'을 이끌어낸 것 또한 '사랑'이다. 영화 속 랭던과 엘리자베스가 보여주는 사랑은 '사랑'의 천국적인 느낌을 다분히도 야기한다. 그들의 사랑은 '구원'을 준다. 



 사랑은 분명 원죄다. 하지만 구원을 가능케 하는 것 또한 사랑이다. 인류가 넘쳐나는 결과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조브리스트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랑의 결과로 태어난 무수한 생명들이 또다른 방법을 고안해 낼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랑'의 확장된 개념으로 탄생한 인류애가 사람들에게 공생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인류는 사랑으로 저지른 죄악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그 역사는 무려 태초의 인간이 탄생한 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는 '사랑'에 응징을 가하려는 무리의 손에서 무기를 거둔다. 오히려 사랑이 줄 수 있는 구원의 가능성을 돌아보게 한다. 



 조브리스트는 사랑의 '원죄'만 보았다. 그것이 줄 수 있는 '구원'의 가능성을 차마 외면했다. 조브리스트의 계획은 실로 무모한 것이다. 또 자기모순적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류에는 구원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영화를 보면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이어주던 '사랑'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단테는 사랑한 이유로 베아트리체와 천국을 거닐 수 있었다. 어쩌면 영화는 바로 그런 '사랑'에서 '자정 1분 전'에 위치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인페르노'란 섬뜩한 제목 치곤 참으로 낭만적인 결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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