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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seulgi Oct 21. 2016

걷기왕(Queen of Walking, 2016)

걷는 것보다 뛰는 게 편한 아이러니한 현실.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복이'는 [만보기]로 소리가 난다. '만복'이란 이름은 '만보', 즉 느린 걸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1만 번의 걸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이름대로 만복이(심은경)는 느릿느릿 왕창 걷는다. 2시간 넘는 거리의 학교를 만복이는 매일매일 걸어서 등하교한다. 느리게, 그리고 한가롭게 걷는다는 게 중요하다. 천천히 걷는 만복이에게 주변 경치를 내다볼 여유 정도는 있다. 만복이는 걷다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고선 그 광경을 자신의 손가락 카메라로 찍어보곤 한다.


 멀미가 문제다. 영화의 내레이션인 '소순이'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만복이는 탈 것을 타면 멀미를 하게 되었다고.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만복이는 효길(이재진)의 오토바이를 동승하기 무섭게 멀미 증세를 호소한다. 버스를 타고 대회장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버스에 오른 멀미에게 슬슬 멀미 증세가 몰려온다. 결국 만복이는 그 증세를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한다. 키미테를 왕창 하는 식으로 땜질 처방을 하긴 하나 끝내 그게 문제가 되어 만복이는 대회 중 쓰러지고 만다.


  이 사회가 주는 멀미를 상징할 것이다. 세상이 강요하는 '8282' 메시지는 당사자들에게 멀미를 일으킨다. 수험생은 조금 더 쉬고 싶다. 하루라도 여유를 즐기고 싶다. 그렇지만 그들의 부모님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낙오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담임 선생님은 야자를 강행시킨다. 수험생은 갑갑한 현실에 멀미 증세를 호소한다. 구토를 한다. 취준생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들에겐 환기가 절실하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끝내 낙오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취준생은 앞만 보고 달린다. 모든 관계를 끊고 성공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기만 한다. 취준생들은 울렁거림을 느낀다. 세상이 준 멀미에 그들은 토악질을 해댄다.



  만복이의 걸음은 조금씩 빨라진다. 그와 함께 만복이는 늘 보던 것을 못 보게 된다. 만복이는 소순이와 대화한다. 소순이는 영화의 주된 내레이션이다. 만복이가 '연습벌레'가 될 무렵 소순이는 내레이션으로서 자취를 감춘다. 만복이가 걸으면서 보던 하늘의 풍경도 영화의 화면에서 달아난다. 연습에 열중하는 만복이에게 '하늘'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다. 만복이의 시선은 오로지 앞만 향하고 있다. 걸음이 빨라진 결과로 만복이는 중요한 '관계'도 잃는다. 만복이는 지현(윤지원)과 다툰다. 지현의 시니컬한 대답에 만복이는 지현의 꿈을 조롱한 뒤 교실을 빠져나간다. 수지(박주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만복이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수지를 밀쳐낸 뒤 달아난다. 영화는 빨리 걷게 된 결과로 무언가를 잃는 만복이의 모습을 통해 빨리 걷는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정확히 우리는 만복이와 마찬가지로 빨리 걸어간 결과로 함께 대화를 나누던 소순이를 잃고, 여유롭게 바라보던 하늘을 잃었으며, 매점에서 함께 컵라면을 먹던 친구들을 잃었다. 



 만복이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멀미'란 만복이의 한계는 노력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멀미는 만복이가 부단히 노력해도 세계적인 경보 선수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만복이는 탈 것을 못 탄다. 따지고 보면 만복이는 경쟁의 장에 들어설 수조차 없다. 만복이는 걸어서 대회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만복이는 수지와 강화에서 서울까지 걷는다. 하지만 세계 대회라면 얘기는 다르다. 만복이는 비행기를 못 탄다. 헤엄을 쳐서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멀미'란 한계는 만복이의 선수로서 활동 범위를 딱 한반도 범위 내로 국한한다. 만복이가 제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가 '세계적인 경보 선수'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수지 역시 마찬가지다. 수지는 다리를 다쳤다. 거칠게 걸을수록 그녀의 다리는 망가져 간다. 병원의 담당 의사는 그녀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볼 것을 조언한다. 수지의 다리는 수지에게 있어 일종의 한계다. 노력만으로는 그녀의 부서진 다리를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지는 노력해도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수지는 부단히도 애쓴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다. 내게는 그녀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려 악을 쓰는 것 같아 더욱 안쓰럽게 여겨졌다. 수지는 노력하면서도 그 한계를 깰 수 있다는 사실에 회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지가 강화에서 서울까지 걷는 만복이의 걷기 여정에 동참하는 것은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만복이의 모습을 보고서 어떤 확신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노력'을 강요한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두고서도 '정신력 문제'를 거론한다. 세상이 야기하는 또다른 멀미의 실체다. '노력'에 대한 공허한 주문은 한계를 목도한 이들에겐 '멀미'를 일으킨다. 만복이에게 만복이의 아빠(김광규)는 '노력 부족'을 질타한다. 만복이의 담임 선생님(김새벽)은 열정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며 육상을 포기하려는 만복이를 잡아 세운다. 수지도 만복이의 가장 큰 문제를 '노력 부족'이라 꼬집는다. 만복이는 "선배는 노력하는 거고, 저는 무모하게 행동하는 거예요?"라고 항변한다. 세상은 노력을 온당하게 평가치 않는다. 결과물을 보고 '노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가늠할 따름이다. 여기엔 '노력' 있었다면 '성공'이 있었을 것이란 그릇된 신화가 자리한다.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이들로선 실로 멀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멀미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로 엎어지는 것이다. 보다 느리게 걷는 것이다. 경쟁의 레인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것이다.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한가롭게 거니는 것이다. 대회 중 오버 페이스로 걷던 만복이는 하늬의 다리에 걸려 넘어진다. 넘어진 그녀는 하늘을 본다. 그러고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왜 이렇게 빠르게 걷고 있는 거지?" 만복이는 비로소 빠르게 걸으며 자신이 무수한 것을 잃었음을 깨닫는다. 만복이는 빠르게 걷기를 포기한다. "완주할 것이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만복이는 더 이상 걷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만복이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순간 화면을 에워쌌던 멀미는 싹 달아난다. 


 그런데  뛰지 않는 게 뛰는 것보다 어렵다. 우리 사회의 모순이다. 영화는 뛸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서글픈 운명을 그려낸다. 영화가 그려내는 인물들을 보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운명을 짊어진 시지푸스가 생각난다. 수지가 만복이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경보 시합이다. 수지는 어떤 수를 써서든 자신을 이겨 보라 한다. 시작부터 만복이는 뒤처진다. 승리의 가능성은 안 보인다. 결국 만복이는 달려서 수지를 추월한다. 반칙으로 승리를 따낸다. 그럼에도 수지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수지는 말한다. "경보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건 뛰고 싶은 욕구이다. 그렇지만 질 바에야 그런 욕구를 드러내는 게 낫다." 이기려면 뛸 수밖에 없다. 느리게 걸으면 미련한 인간 취급 받는다.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어느덧 우리는 빠르게 뛰는 것보다 느리게 걷는 게 어려운 사회에 살게 되었다. 


 수지가 쉽게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불안. 꿈을 포기하는 데 따른 불안이 절대 아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뒤처진 데서 비롯하는 불안이다. 만복이가 멀미로 인해 육상부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온다. 만복이는 불현듯 불안감을 느낀다. 늘상 보던 지현이 자신보다 훨씬 앞서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저한 거리감은 만복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만복이는 그 불안으로 인해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 만복이는 다시금 육상부로 돌아온다. 수지와 대결을 벌인 후 만복이는 훨씬 노력하는 '연습벌레'가 된다. 영화는 뛰고 싶은 욕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서 보다 근본적인 '불안'을 본다. 영화의 카메라는 '불안'을 야기하는 경쟁 패러다임, 그 자체를 비판점으로 삼는다. 다른 사람과의 거리감을 확인하고서 불안감을 느끼는 만복과 수지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가 않다. 경쟁체제에 익숙한 우리도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불안감을 느끼고서 뛰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 '경쟁'이야 말로 우리의 한가한 걸음을 앗아간 주범이다. 



 엎어진 만복이는 경쟁을 거부한 거다. 만복은 걷기의 경쟁이 자신의 걸음걸이를 빠르게 한다는 것을 안다. 영화는 경쟁 패러다임을 허문다. 만복의 꿈을 통해 새로운 '걷기왕'의 진로를 보여준다. 만복은 '속도전'이 아닌 '거리량'으로서 유명인 대열에 오른 꿈에 취한다. '걷기왕'이 '속도전'의 승자로 여겨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경쟁 패러다임'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만복이와 수지가 일상적인 걸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그들의 마지막 '걷기'엔 멀미를 일으키는 요소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영화는 그들의 걸음걸이에서 '경쟁'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운다. 오늘날 경쟁은 우리의 걸음걸이를 얼마나 빠르도록 하는지. 또 얼마나 멀미를 느끼도록 하는지. 한껏 엎어져 누워 있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엎어져서 생각해 보니 우리는 참으로 빠른 속도로 세상을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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