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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seulgi Oct 24. 2016

노트북(The Notebook, 2004)

내겐 가장 절실한 단 '5분의 기적'.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슴이 아렸다. 처음엔 덤덤했다. 뻔한 얘기가 이어지려니 했다. 노트북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감정은 역전되었다. 앨리(제나 로우렌즈)가 듀크(제임스 가너)를 알아봤다가 이내 까먹을 때 눈시울에 눈물이 맺혔다. 앨리가 실려가는 듀크를 멍하니 바라볼 땐 가슴에서 울럭거리는 뭔가를 느꼈다. 두 손을 마주 잡은 두 노인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을 정화하는 듯했다. 그 모습은 벅찬 감동을 안겨 주었다.


 듀크가 앨리에게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솔직히 뻔한 얘기다. 노아(라이언 고슬링)가 앨리(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첫눈에 반한다. 다짜고짜 대시를 한다. 둘은 미칠 듯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장애물을 만나 둘의 사랑은 한 차례 좌절된다. 한여름의 뜨거운 사랑으로 그치고 만다. 사랑 이야기라면 늘상 반복되는 클리셰다. 이런 종류가 아닌 사랑 이야기를 찾는 게 오히려 더 힘든 일이다.



 '장애물'이란 것도 지극히 진부하다. 경제적 배경. 노아는 가난뱅이고, 앨리는 갑부의 딸이다. 현저한 배경 차이는 앨리의 부모로 하여금 반발을 이끌어낸다. 앤 해밀튼(조안 알랜)은 어떻게든 노아와 앨리를 떼어내고자 한다. 노아의 편지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인물도 앤이다. '배경'이 사랑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설정은 그 옛날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줄곧 차용한 설정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구시대적인 느낌을 풍긴다. 적어도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다.



 노트의 비밀이 밝혀진다. 이야기를 읽어주는 할아버지가 노아다. 이야기를 듣는 앨리는 이야기 속 그 앨리다. 앨리는 치매에 걸렸다. 듀크는 그 기억을 살려주고자 그들의 사랑 기록을 읊어주는 거다. 노트의 기록자가 기억을 잃은 앨리란 사실이 밝혀진다. "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기억을 되찾아 주세요."란 앨리의 기록이 선명하게 노트에 남아 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영화는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로 거듭난다. 진부한 영화 속 사랑 이야기는 소도구에 불과하다. 진실로 관객이 귀기울여야 할 이야기는 노트를 통해 서로에게 기적이 행해지길 바라는 두 노인이다. 두 남녀의 영속적인 사랑이다. 영화는 기억을 되찾는 앨리의 모습을 통해 사랑이 지닌 기적의 힘을, 또 치유력을 실감하게 한다. 


  사랑을 가로막는 또다른 장애물이 있다. '치매' 말이다. 그 장애물은 '과학'일 수도 있다. 새롭게 찾아온 주치의가 듀크에게 말한다. "이야기 읽기를 포기하는 게 어떠신지." 의사는 치매가 난치병임을 강조한다. 의사는 과학적인 합리성에 기반해 '사랑'으로 기적을 행하려는 듀크의 시도를 만류한다. 듀크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듀크에게 집으로 돌아자고 한다. 듀크의 평안이나마 찾으라고 강조한다. 듀크의 자식들 역시 듀크와 앨리의 노트가 '기적'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다. 


 '사랑'은 기어코 장애를 극복한다. 잠시나마 앨리는 '기억'을 되찾는 것이다. 앨리는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챈다. 듀크를 알아보고는 듀크와 사랑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간다. 임종하기 직전에도 앨리는 듀크를 알아본다. 두 사람은 손을 꼬옥 잡은 채 한날 한시에 눈을 감는다. 간호사는 두 노인이 함께 죽음을 맞이한 순간을 목격한다.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영화는 사랑이 지닌 '치유력'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 '사랑'의 기억이 단순히 신경계에 각인되는 게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보다 사랑은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하는 것이다. 영화는 앨리가 배를 타고 노를 젓는 노아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앨리는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노아란 존재를 그런 식으로 느끼고 있다. 



 단순한 '치매'일까. 나는 이 '치매'가 시간이 다소 흐른 우리들의 '기억상실증'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사랑'은 수단시 되었다. 사랑 그 자체의 사랑을 찾기는 어렵게 되었다. 노아와 앨리의 사랑은 현 시점에서찾기 더욱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영화에 따르면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잃은 우리야 말로 불치의 치매에 걸린 환자다. 영화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한 '노트북'을 보여줌으로써 복원시키려는 기억은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그런 사랑에 대한 그윽한 노스탤지어다.


 노아는 앨리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냥 끌린 거다. 그렇게 노아는 앨리에게 빠졌다. 앨리도 마찬가지다. 앨리는 노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앨리가 노아를 사랑하는 감정은 앨리가 론 하몬드(제임스 마스던)를 사랑하는 감정과 사뭇 다르다. 앨리는 론을 마주하면서도 자꾸만 노아를 떠올린다. 노아와 앨리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들의 불 같은 사랑은 오늘날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랑이다. 



 앨리가 노아의 대시를 받았을 때 묻는다. "너 프로구나." 앨리가 노아와 서로의 나체를 드러내 보일 때도 말한다. "너는 아무 생각도 없니?" 오늘날엔 사랑의 순수성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 '원나잇' 만남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현대인들에겐 '사랑'은 하룻밤 쓰고 버리는 '콘돔'과도 같은 것이다. 앨리의 부모가 앨리의 사랑에 대해 말하는 "한여름의 뜨거운 사랑"이란 표현도 이런 소모적인 사랑과 맥이 닿는다. 영화는 '사랑'을 소모품 취급하는 이들을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로 간주한다. '노트북'으로써 그런 사람들이 잃어 버린 사랑의 기억을 되찾아주고자 한다. 우리는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진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잠시나마 순수한 사랑이 주는 환희를 만끽할 수 있다.



 현대인은 불치의 병에 걸렸다. 그들은 영속적인 사랑에 관한 기억을 잃어 버렸다. 사랑의 치유력은 환상이 된 지 오래다. 그들은 사랑을 소모품처럼 취급한다. 영화는 부서져 버린 환상을 재건한다. 무려 '노트북'을 건네면서다. 두 손을 맞잡고 한날한시에 눈을 감은 두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그런 '기적'을 이룬 힘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나는 영화를 통해 단 5분이나마 사랑이 주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5분이 지난 뒤 다시금 기억 상실증 환자로 돌아갔지만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영화는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한 5분의 기억을 되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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