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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씨네마
by Nseulgi Mar 17. 2017

미녀와 야수(Beauty&the Beast, 2017)

사랑, 그 황홀한 마법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간다. 언젠가 우리는 잊혀진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소멸을 안타까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유한성(Mortality)’을 주제로 한 영화는 꽤 있다. 최근을 기준으로 보면 영화 <로건>이 대표적이다. 영화 <로건>은 히어로 능력을 잃은 로건(휴 잭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멸해 가는 입장에 놓인 로건의 고뇌가 영화 <로건>에는 잘 드러난다.     


 

 영화 <미녀와 야수>의 주제도 ‘유한성’이다. 야수(댄 스티븐스)는 저주에 걸렸다. 그와 궁정의 사람들은 곧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장미꽃의 잎이 모조리 떨어지는 순간 그들은 흔적도 없이 이 세계에서 사라진다. 야수는 소멸해 가는 자신의 운명을 거듭 의식한다. 영화에는 ‘시계’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는 장치다.      





 벨(엠마 왓슨)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그녀는 모리스(케빈 클라인)와 단 둘이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의 험담에 시달린 벨이 모리스를 찾는다. 이때 모리스는 인간의 ‘유한성’을 노래하고 있다. 예술가로서 모리스가 하고 있는 고민은 어떻게 해야 ‘순간’을 ‘영원’으로 바꿀 수 있는지다. 모리스는 시계를 만지작거린다. 모리스는 예술 활동에서 불멸할 가능성을 찾는다.     



 영화는 야수가 거주하는 멋진 성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 성 안에서 왕자와 궁정의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다. 분노한 요정이 왕자와 궁정의 사람들에게 저주를 건다. 화려했던 성 역시 굉장히 허름한 형태로 탈바꿈된다. 장미꽃의 잎새가 떨어지듯 허름한 성의 벽 또한 무너지고 있다. 야수가 거주하는 성 자체가 사실 소멸하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는 메타포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꾀하고자 하는 건 성의 복원, 즉, 유한성의 극복이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불멸의 가치를 탐구한다.     




 사랑. 그것은 황홀한 마법 주문과도 같다. 사랑이야 말로 소멸의 운명을 극복케 해주는 힘이다. 개스톤(루크 에반스)이 야수를 향해 총을 쏜다. 야수는 죽어간다. 마지막 장미꽃 잎새가 떨어진다. 촛대 르미에(이완 맥그리거), 시계 콕스워스(이안 맥컬런) 등은 인간으로서 기억을 잃는다. 야수도 숨을 쉬지 않는다. 그때 벨이 한마디 내뱉는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것은 가장 황홀한 마법 주문이다. 아가타(해티 모라핸)는 그 주문 소리를 똑똑하게 듣는다. 영화에서 가장 황홀한 마법이 펼쳐진다. 소멸이 극복되는 것이다. 저주가 풀린다. 야수는 왕자의 모습으로 벨과 마주한다. 주전자 포트 부인(엠마 톰슨), 찻잔 칩(네이튼 맥) 등도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성은 예전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간직한다. 벨이 구사한 마법과 함께 소멸될 위기에 놓여 있던 모든 것이 소멸의 위기를 극복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벨과 야수가 치장을 하고 춤을 추는 장면이 그렇다. 야수가 저 편의 계단에서 걸어 내려온다. 벨이 반대쪽의 계단에서 걸어내려온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다. 둘은 함께 계단을 내려온 뒤 춤을 춘다.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건 두 사람 사이에 싹튼 사랑의 감정이 비로소 만개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표현하지 않지만 관객들은 두 인물이 서로에게 푹 빠졌음을 안다. 그 둘을 지켜보는 궁정의 사람들은 “무언가 있다.”며 두 인물이 사랑에 빠졌음을 암시한다.     



 벨은 모리스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벨은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벨은 야수와 함께 파리의 한 장소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모리스와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알게 된다. 벨의 어머니는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모리스는 남아 있는 벨을 지킨다는 생각에 그녀를 데리고 외딴 마을로 이사를 온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벨의 어머니는 소멸했지만 적어도 모리스의 입장에선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벨의 어머니는 불멸의 존재로서 모리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벨의 어머니에게 불멸의 가치를 더하는 건 다름아닌 모리스의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벨에게도 있는데, 벨이 과거를 마주함과 함께 벨의 어머니는 벨에게서도 불멸의 존재로 거듭난다.      




 벨이 떠난다. 야수가 그리움을 노래한다. 야수는 멀어지는 벨을 보며 오만 가지의 슬픔을 드러내 보인다. 내게 야수의 행동은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잊혀지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벨에게 사랑이 없다면 야수는 조만간 그녀에게서 잊혀지리라. 야수는 벨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야수에게 두려운 건 조만간 그 자신이 벨에게서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소멸의 가능성이다. 야수는 그 두려움을 그리움의 형태로 드러내 보인다. 야수는 슬픔을 노래한다. 구슬픈 노래 소리는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소멸’을 경험해 본 뭇 관객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소멸의 저주가 풀린다. 모든 인물이 불멸의 지위를 획득한다. “사랑해요.” 벨의 한마디는 가장 황홀한 마법을 펼쳐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황홀하게 와닿는 건 모든 인물이 불멸의 존재로서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는 영구불멸하는 잔상을 남긴다. “사랑해요.” 관객들의 사랑도 이 영화를 불멸의 작품으로 거듭나게 만들 것이다. 영화는 ‘사랑’에서 불멸의 가능성을 찾은 셰익스피어와도 같다. ‘불멸’을 노래하는 영화가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야수의 입장과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왜일까. 영화는 지금도 ‘불멸’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소멸의 위기에서 구해 줄 ‘미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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