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지치는 입사지원서
대기업의 높은 담벼락, 그 너머는?
지나가다 쓱 눈길이 가는 회사 채용공고에 입사 지원을 하기로 한다. 과거 '가장 존경받는 기업' 중 한 곳이며 외국 기업과의 합작 회사고 매출 규모로 따지면 대기업이다.
입사 지원을 하기 위해 회원가입을 한다. 근데 입사지원서를 보자마자 긴 한숨부터 나왔다. 입사지원서는 크게 총 11개 항목으로 나뉘어 있고, 각 항목은 나의 신상과 과거 이력을 탈탈털게 끔 세부적으로 적게 한다.
1. 기본인적사항
2. 병역사항
3. 학력사항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4. 외국어사항
5. 자격사항
6. 컴퓨터 활용능력
7. 경력
8. 해외연수 및 교환학생
9. 단체활동
10. 지원한 직무수행 관련 교육/연수
11. 자기소개사항
과거 사회초년생 시절 대기업 공채에 지원할 때와 다르지 않다.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아니, 경력직 지원인데도 빼곡하게 적어야 할 게 이렇게 많다고? 학력사항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원 때까지의 정보를 포함한다. 나의 기억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가 되어야 한다.
이 외 항목별 기재사항이 줄지어 있다. 하나라도 빼먹으면 나만 손해고, 기업 입장에서는 기재사항이 부족하거나 미흡해 보이면 지원자가 '불성실'하다고 간주할 기세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게 만든 건 자기소개사항이다. 지원동기 및 입사 후 포부부터 지원한 직무 관련 인턴 경험 및 경력사항,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까지 '글자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쓰라고 안내하면서 글자수 5000자 이내로 입력하라는 빈칸들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굳이 5000자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굳이 5000자까지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신입 때는 한 번쯤은 인생을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한 글자씩 적어낼 수 있었다.
근데 경력직으로 지원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나의 인생을 포괄적으로 훑어서 적어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기 힘들다고.
과거의 사례를 하나씩 들춰내고, 말을 예쁘게 포장하고, 이야기를 물 흐르듯이 이어 내고, 답변에 고민의 흔적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그래, 이래도 할 사람은 할 테고, 나 같이 이만한 가치를 두지 못하는 사람은 포기할 테지.
이제는 대기업, 중견기업도 입사 지원 절차를 더 간소화할 때도 되지 않았나? 제발 자기소개사항만이라도 빼고 경력기술서 또는 이력서를 첨부하게끔 해주면 좋겠다.
대기업도 다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입사지원 절차도 일종의 테스트랄까? 지원자가 얼마나 회사에 관심을 갖고, 열정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느냐. 이것부터 할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
대기업의 담벼락은 여전히 두껍고 높기만 하다. 근데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모두가 꿈과 희망을 갖고 우러러만 보지 않는다.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별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문을 두드리는 모든 지원자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