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끝내며
내가 맺었던 새로운 인연이 끝났다. 시작은 어쩌면 가벼웠던, 그저 하루하루 만나는 게 즐거웠던, 남들 다하는 그 정도의 사랑. 뻔한 이야기처럼 시작했던 그 사랑은, 결국 여느 뻔한 이야기처럼 끝이 났다. 나의 사랑은 어쩌면 조금 더 특별할 거라 생각했던, 그 치기 어린 착각의 늪을 기어코 헤쳐 나오고야 말았다.
떠나가는 인연을 보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난 늘 그랬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 마주 와도,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데면데면하게 굴거라 다짐하지만, 막상 뱉는 말들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난 어쩌면 아무것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걸 지도. 그저 내 손에 모든 걸 쥐고 꼭 안으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른 나이에 시작한 사회생활은 일종의 도피와도 같았다. 난 집에서 나오고 싶었고,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떤 때는 갑갑해 막 숨이 안 쉬어졌다. 그래도 난 꾸준히 걸었다. 그렇게 마주한 사회생활은 처음에는 달콤했고, 때로는 자랑스러웠고, 가끔은 막막했다. 그렇게 지낸 지도 어엿 3년. 도피로 시작한 새로운 인생은 나에게 적당히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서울 한켠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작게나마 그 공간을 넓혀도 보고. 이렇게 하나씩, 조금씩, 이뤄나가는 게 인생이구나, 하는 조금은 겁 없고 오만한 생각도 해봤다. 결국엔 살아지는구나. 살다 보면 조금씩 인생은 더 행복해지는구나. 이런 생각도 해봤고.
찬바람에 부는 옷깃
사랑에 빠진 달빛 눈꽃이 흩날리는 별에는
온통 잿빛 물감에 물이 든 듯 아련히 번지고
하늘은 장밋빛 무지개를 만들어내죠
-MC스나이퍼, <마법의 성>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면, 그동안 내가 보낸 고통의 시간들이 다 지금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나? 하는 오만한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들이 피어났다. 돌이켜봐도, 그렇게 생각했던 내 마음에는 어떠한 잘못도 없다.
더 이상 쌓을 추억이 없다는 슬픔에 길고 긴 휴가를 날려 보냈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채.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작은 조각이었던 것들. 또는 그저 잊으면 될 일이라 생각했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것들을 가득 안은 채.
가득 채워진 내 품이 언젠가 가벼워질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을 머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