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최근 몇 달 동안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골프를 쳤다.
아내가 은근히 걱정스러운 말투로 몸은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내 스타일의 챌린지다. 그러면서 부킹은 번번이 도와준다. 아무튼 골프탐닉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과하다 싶다.
오늘도 라운딩 약속이 있었지만 2차 장마 시즌인 데다 오후에 이천 지역에 꽤 많은 비 예보가 있어 당연히 취소하겠거니 했다. 오후 라운딩이긴 했지만 옷 가방도 싸지 않고 골프 전 의식과도 같은 공에 퍼팅라인을 긋는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신문을 보며 여유를 부렸다. 마침 매일경제 커버스토리에 지인이 칼럼을 실어 정독을 했다.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금은 비가 안 오는데 오후 4시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 시간을 좀 당겨도 될까?’
일행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능’, ’네‘ 로 동조한다. 나도 바로 ’전 가능해요‘ 라고 회신을 했다. 얼마 후 우리 앞쪽으로 아직까지 취소팀이 없다는 답이 왔다. 오늘 같은 날씨면 취소팀이 있기 마련인데 한국인의 투혼이 대단하다 감탄하며 우리도 티오프 한 시간 전에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골프장에 도착할 무렵 비가 세차게 내렸다. 오늘은 무리겠구나. 비싼 점심을 멀리도 와서 먹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체크인을 했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고 18홀 내내 비는 없었다. 나는 날씨 요정인가? 그저께도 그랬는데.
웰링턴 CC에서 라운딩이다. 좋은 골프장 순위에 항상 탑 10 이내에 들만큼 훌륭한 골프장이다. 성공한 친구덕에 가기 어렵다는 웰링턴을 종종 가게 된다. 친구야, 더욱 번성하렴. Live longer & Prosper!!
웰링턴 CC는 어떤 순간에도 겸손과 침착함을 요구한다. 편안한 듯 보이지만 매 홀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곳곳에 장애물과 페널티 라인이 있어 방심과 오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 와이번 코스는 예민한 코스로 라운딩을 하다 보면 변수가 많다.
오늘은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양호했고 샷감도 나쁘지 않았지만 우려하던 곳에서 우려하던 일들이 벌어졌다. 드라이버는 평소보다 길게 나왔지만 트러블 상황에서 여러 차례 페널티 구역으로 공이 들어갔다. 해저드 5번, OB 1번으로 7개의 페널티를 받아 최종 86타, 퍼팅 수는 33개. 그나마 위안은 여러 차례 버디펏을 놓치긴 했지만 거리감이 좋았고 두 번의 버디를 했다.
와이번에 있는 귀신은 오늘도 출몰했다.
와이번 6번, 파 4홀에서 양파를 했다. 긴 파 4에 그린 바로 옆으로 연못이 있어 드라이버는 길게 나올수록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드라이버를 잘 치다가도 이 홀만 오면 유독 더 힘이 들어가 풀샷이나 훅이 나와 OB가 많이 난다.
오늘도 여지없이 왼쪽으로 당겨지는 샷이 나왔다. 다행히 벙커 뒤쪽 마운드를 맞고 공은 OB선상 바로 앞 러프에 살아있었다. ‘그래 골프공과 아들은 살아만 있어도 감사해야지’라고 위안을 하며 핀까지 거리를 보니 180미터가 남아 있다. 왼쪽 카드도로를 따라 하얀 OB말뚝이 그린 옆까지 이어져 있고, 그린 오른쪽은 해저드가 그린 초입부터 끝까지 면해 있다. 이런 경우 정석 플레이는 140~150미터 아이언 샷을 한 후 어프로치로 핀에 붙여 <쓰리온 원펏>을 하는 것이다. 나의 선택은 오늘의 샷 감을 믿고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5번 유틸리티가 잘 맞을 경우 180미터를 가고 혹시라도 거리가 짧으면 어프로치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러프를 이길 요량으로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왼쪽으로 당겨져 OB가 났다. 이제 그 자리에서 4번째 타가 된다. 이때야말로 침착하게 방어를 할지 계속 공격적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한다. 오늘은 닥공이다. 다시 잡은 유틸리티는 이번에는 뒤땅이 났고 어렵사리 식스온-투 펏, 더블 파로 마무리 했다.
왜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방심인가, 오만함인가.
다음 홀은 짧은 파 3홀이다. 버디를 꽤 여러 번 해 본 홀이라 어떻게든 양파를 만회하겠다며 마음을 다 잡는다.
핀까지 거리는 105미터, 핀 바로 앞이 벙커라 캐리로 100미터를 보내야 한다. 다시 두뇌회로가 복잡하다. 피치로 부드럽게 펀치샷을 할 것인가, 이러다 당겨져서 전반 파 3에서 해저드/더블보기를 했다. 48도 웨지는 너무 타이트해서 벙커에 빠질 확률이 높다. 벙커만 넘긴다면 핀까지 오르막펏으로 충분히 버디를 노려볼 수 있을 텐데 갈등이 된다. 이때 동반자가 ‘타이트하게 쳐야 버디 나오지’라며 부추긴다. 그래 공격적으로 가자 마음을 정하고 48도 웨지를 선택했다.
심기일전해서 샷을 했다. 아주 잘 맞아 스핀을 제대로 먹은 공은 핀하이로 날아가 벙커를 넘고 핀을 지나 그대로 섰다. 내리막 라이라 조심스럽게 한 퍼팅은 조금 짧아 파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몸이 이상하다. 허리가 과하게 들어간 걸까? 허리 쪽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이언샷을 하면서 허리를 삐끗한 것이다.
남은 두 홀은 제대로 된 샷을 못하고 조심조심 샷을 했다. 그런데 두 홀 연속 아깝게 버디펏을 놓치며 파를 했다. 골프 그놈 참 알 수가 없다.
라운딩을 마치고 냉탕에서 반신욕으로 냉찜질을 하며 생각한다.
’내 스스로 멈추지 않으니 내 몸이 나를 멈추게 하는구나.‘
집에 돌아와 아직 대화형 AI는 아니지만 녹색창에 ‘허리 삐끗’으로 검색을 하니 급성요통인 것 같다. 처방은 냉찜질할 것, 온찜질 안됨, 일주일 정도 휴식, 과한 스트레칭 안됨, 소염제 투약 등이다. 주말에 이어 월요일까지 3일 연속 라운딩이 있는데 이를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