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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Feb 27. 2024

파묘, 재밌는 K오컬트... 굳이 해석이 필요한가

극장에서 즐기는 웰메이드 만화책... 시각을 바꾸면 연출 의도가 보인다

*스포일러 없는 감상 후기입니다. 다만, 이야기의 흐름을 약간이라도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파묘'를 보고 왔습니다. 이번에도 진중하게 평가하기에는 다소 모소한 구석이 있어서 편하게 여러분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후기를 남깁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밌습니다. 무척 재밌어요. 개인적 시각이지만 '재밌는 영화'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많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이 영화를 '더' 재밌게 보려면 시각을 살짝 바꿔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어떻게요? 만화책을 보듯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묘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일제의 악행을 다뤘지만 역설적으로 연출 방식은 흡사 만화책 같은 일본의 '그것'과 꽤 유사합니다. 아! 물론 비판이 아닌 칭찬입니다. 그래서 재밌거든요.

굳이 비교하자면 원작이 따로 없었지만 일부 관객이 "웹툰을 영화화한 것 같다"고 짐작했던 '신의 한 수(2014)'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파묘'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도입부와 1장(총 6장으로 구성)부터 이미 '만화적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배우들의 표정, 대사, 몸짓을 포함해 모든 미장센에서 '만화책의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화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시놉시스를 전혀 확인하지 않고 장르가 오컬트라는 정도만 인지하고 영화를 감상했던지라 배경만 한국으로 설정한 엑소시스트(1975) 같은 영화이려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해결할 '영웅'들을 한 명씩 소개하는듯한 연출이 장르와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던 거죠.


극 중 무당 '화림'을 연기한 김고은, 그를 서포트하는 '봉길'역의 이도현 등 배우들이 '미스캐스팅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특히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화림은 다른 여배우가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이보다 더 적절한 캐스팅이 없었겠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왜냐, 앞서 말했다시피 제 눈에 이 영화는 '극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만화책' 같은 영화였거든요.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장의사 '영근' 역에 배우 유해진이 캐스팅된 이유도 짐작이 되고요. 그들 사이에서 연기의 무게중심을 잡았던 배우 최민식(풍수사 상덕) 조차 왜 평소보다 '캐릭터성'이 다소 과해 보이는 연기를 했는지 납득이 됩니다. 쉽게 말해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두 '만화 속 인물' 들처럼 보였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파묘는 이야기에 '무거운 역사'를 끌어왔지만 가벼운 만화책 같습니다. 살짝 밸런스가 어긋난 것 같으면서도 이를 절묘하게 버무린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렇게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적 시각으로) 감독의 의도를 설정하고 영화를 감상하니 그때부터는 매우 재밌는 영화로 평가가 바뀌더군요.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지만 만화책에 그런 게 중요하겠습니까? 저는 재밌는 만화책을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로 실감 나게 감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책 같은 재밌는 이야기'에 나름 '역사적 고찰'을 접목하니 더 뜻깊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파묘의 감상 후기를 '진지한 비평'이 아닌 가벼운 대화체로 작성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작품성을 심도 있게 비평하기보다는 '왜 재밌었는지'에 대한 견해를 공유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때문에 혹시 아직 안 보신 분들 중 극장을 찾아갈 계획이 있는 분들은 처음부터 영상화된 만화책을 즐긴다는 시각으로 파묘를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이제 반대로 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한 경우를 가정해 볼까요.'아주 무거운 정극'인 상황에서 '지금의 캐스팅'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떠올려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 평가는 달라집니다. 애초에 배우 김고은을 캐스팅한 것부터 아쉬웠을 거예요. 굳이 다른 배우를 추천해보라고 한다면 저는 전도연이나 문소리 같은 배우들을 먼저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화책' 같았던 파묘는 김고은이 화림 역할로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장재현 감독이 이를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대살굿을 하는 무당 화림(김고은). 무당 연기를 극찬하는 관객들이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굿' 자체보다는 굿을 하기 전 묫자리로 입장하면서 몸을 떠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우 최민식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편안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중견배우의 관록이 느껴져요. 다른 역할은 몰라도 '풍수사 상덕' 만큼은 최민식이 아닌 다른 배우가 맡았더라면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까지 크게 달라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찌 그리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편안하게 가져갈 수 있는 걸까요.


보는 시각에 따라 영화 속 분위기(만화책)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약간은 무겁게 보일 수도 있는 배우 최민식의 아우라를 희석시켰던 건 '장의사 영근' 역할을 맡았던 배우 유해진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영근의 존재감'이 크게 기억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유해진이 얼마나 '조화로운 연기'에 내공을 쌓았는지 알 수 있죠. 이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지금의 파묘'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


또, 이들의 연기를 칭찬하고 싶은 건 '적당히 현실적'이었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극 중 (굳이 표현하자면) '영적인 정도'를 걷는 화림(김고은), 봉길(이도현) 듀오와 달리 이들은 '비교적 현실적인 콤비'를 연기합니다.


다만, 이들을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돈 얘기'는 도입부에서만 살짝 언급될 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요. 만약 이들을 지나치게 '현실적인 듀오'로 설정해 무당팀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면 오히려 이야기가 너무 가볍고 진부해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적당히' 치고 빠지면서 어디에서나 볼법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편한 '현실적인' 풍수사와 장의사가 됐어요. 그러면서도 '만화 같은 캐릭터 느낌'까지 적당히 유지했고요. 그래서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대본이 그러니 배우들이 그렇게 연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캐릭터 연구와 서로의 호흡 방식을 조율하는 정도는 우리 생각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만화 같으면서도 만화 같지 않은 현실적인 듀오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은 화림&봉길과 적당히 대조를 이루면서도 극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항상 글을 마칠 때마다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인지 개인적 시각으로 평가하는데요. 파묘는 극장에서 보시길 추천합니다.


물론 극장이 아니더라도 꽤 재밌는 이야기여서 괜찮습니다. 하지만 가급적 극장에서 보시길 추천해요. 이유는 장르 특성상 스피커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부러 시각적 공포감을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해 주로 좁은 화각을 활용하거나 점프스케어가 잦은 영화는 아니지만 대형스크린이 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킬 겁니다.


한 줄 소감 : 현실감을 왜 따지나... 만화책처럼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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