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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Sep 07. 2023

수요 낭독회

시가 있고, 사람이 있고, 감동이 있었던.

남편의 8월은 주말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나의 8월도 못지않게 바빴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는 때에 시작된 유치원 여름방학. 멀리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곳에 데리고 다녔다. 시원한 카페투어, 맛있는 빵집 투어,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원픽이었던 탕후루 투어도 했는데, 씁쓸한 걸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영 맞지 않아 아이들에게 모두 양보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다 같이 근교에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다. 서로 돌아가며 운전을 했고, 조수석에 앉기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쿨쿨 곯아떨어졌던 휴가였다.


피로에 잠식당할 것만 같았던 나는 체력을 끌어올리려, 홈트레이닝과 스트레칭을 수시로 했다. 그 외에 남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8월 중순에 있을 강의 내용과 PPT를 손봤다. 그 쯔음, 출판사에서 원고 퇴고를 점검하는 연락이 왔다. 아뿔싸. 마감일(8/10)이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부랴부랴 원고를 훑었다. 할 수 있는 만큼 매일 조금씩 다듬었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출판사에 원고를 전송하려던 순간이었다.


청년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강연의 신청자가 저조하다는 나쁜 소식이었다. 평일이기도 하고, 저녁시간이기도 해서 그럴 수 있지만, 평일 저녁에 열리는 다른 강의들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는 말에 마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강연을 다음 달로 넘겨도 되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최초의 폐강이라는 말에 자존심도 적지 않게 상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겠다고 하던 나는 당면한 부정적인 현상에 지질하게 연연하고 있었다.


수요일 저녁으로 잡은 건 남편의 스케줄 때문이었다. 저녁 강연을 위해선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했고, 8월에 남편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은 수요일뿐이었다. 직장인들은 평일 저녁이 좋을 테니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센터 담당자는 주변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라도 홍보를 해보자고 권유하셨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통화를 마친 후, 정처 없이 거실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냥 이번 달 강연은 취소하고 다음 달에 좀 더 준비해도 되지 않을까? 최초 폐강이든 뭐든, 존심 한 번 상하고 말면 되지 뭐.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고.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강연인데, 굳이 시간 내서 와달라고 부탁을 하는 건 민폐 같아. 요즘 사람들은 문학에 관심이 없나 봐. 고리타분하게 보이겠지 뭐. 와, 저분은 강연 마감이네. 향초 만들기, 화분 만들기, 등등. 솔직히 나도 그런 거 한 번쯤은 해보고 싶긴 해. 당장 돈 벌게 해주는 방법처럼, 바로 이득이 되거나 손에 잡히는 뭔가가 남는 강의가 실용적인 거지. 뭐.'


'그래도 딱 한 사람한테만 연락드려보고, 그다음에 생각하자. 그냥 폐강하자고 연락 오신 건 아니니까. 몇 분만 더 연락을 해보자는 거니까. 뭐, 해보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몇 번 더 거실을 왔다 갔다 한 끝에, 글 쓰는 작업을 꾸준히 응원해 주시는 한 분이 떠올랐다. 아이들 연령대가 비슷해서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하고, 서로 성향은 다르지만 각자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여기는, 든든한 언니 같은 분이었다.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나 시간이 되신다면 참석해 주실 수 있으신 지, 어쩌면 폐강될 수도 있지만, 관심 있으시면 한 번 놀러 오시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다는 사실에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보내려다 만 원고를 출판사에 전송했다.


에어컨 앞에 서서 쿨 파워 바람을 만끽했다. 등허리에 났던 땀이 식으면서 싱숭생숭했던 마음도 곧 진정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시도하는 일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핑크빛 미래를 꿈꾸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애쓴 만큼 모든 일이 다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삶에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란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철없던 시절에는 핑계라며 치부하고 믿지 않았던 말이 있었다. "나도 잘해보려고 했는데..."라는 표현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잘해보려고 진심으로 애썼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특한 일이라고,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다. 불법이 아니라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신의를 저버리고 진심을 악용하는 일이 아니라면, 잘해보려고 애썼던 모든 순간은 성공의 찰나라고 주장할 테다.


든든한 언니의 답장이 왔다. 친구도 데리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감사할 뿐이었다. 며칠 뒤, 신규 참석자분도 새롭게 명단에 추가되었다. 될 듯, 안 될 듯, 밀당을 심하게 했던 8월의 "수요 낭독회"는 좌충우돌 끝에 무사히 열렸다. 준비하는 데 고생 많이 하셨다며 꽃다발까지 들고 오시는 바람에 눈물이 날 뻔했다.


어린아이들을 다른 가족의 손에 맡기고, 꽉 막히는 퇴근길 교통 체증을 뚫고 오신 엄마 참가자 분들에게 큰 빚을 진 기분이었다. 늦을까 봐 부랴부랴 뛰어오신 앳된 얼굴의 참가자분이 참 예뻐 보였다. 각자의 삶과 꿈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터놓으며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깔깔 웃었다. 준비는 내가 했으나, 열린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신 참가자들이 이 강연의 주인공이었다.


시를 필사하던 시간, 조용한 강의실에 깔린 잔잔한 음악 너머로 각자 다른 리듬으로 끄적이는 펜 소리가 듣기 좋았다. 강연이 끝난 후 모두를 허리 숙여 배웅했다. 포옹도 했다. 뜻밖의 선물이었던 꽃다발을 들고 차로 걸어갔다. 집에 가서 예쁘게 화병에 꽂아 넣을 생각을 하며 웃었다. 속상했던 것도 가볍게 툴툴 털어낼 수 있는, 설레는 웃음이었다.


앞으로도 존심 상할 일은 일상 다반사일지도 모르겠으나, 향긋한 꽃냄새를 맡으며 걷던 밤길의 추억 덕분에 조금은 더 넉넉하게 버텨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애쓴 만큼 인생이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 하여도,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해 보련다. "덕분에"라고 고백할 수 있는 마음 근육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실용적인 자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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