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래하고 싶은 사람들을 보면서 울었다.

2020년을 마무리하며 보내는 작별인사.

by 양윤미

코로나를 피해 아이들과 집에만 있었더니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무심코 튼 TV에서 연예대상이 방영되는 걸 보고서야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스마일 마스크를 쓴 연예인들, 상을 전달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는 기발한 모습이 재밌다. 수상자에 호명된 사람들의 감격과 기쁨이 전해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도 상 같은 걸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을 향한 촌철살인과 독설을 날리는 내 안의 재판관 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다. 그렇지만 코로나로 한 해를 통째로 날려버린 2020년 올해만큼은 이런 나 역시 칭찬과 상으로 보상이란 걸 받고 싶다. 수고하셨습니다 상. 애썼습니다 상. 정말 착실하게 열심히 사셨습니다 상. 뭐 그런 거 말이다.

최근에 꼭 챙겨보는 프로가 있다. jtbc의 <싱어게인>. 여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충 보다 말거나 아니면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기 일쑤였는데 요즘 나는 월요일 밤마다 방송 시작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싱어게인은 대체 뭐가 다른 걸까. 그것은 아마도 오디션에 임하는 사람들의 다양성, 음악을 향한 진정성, 오디션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빛나는 스타성을 지닌 원석들을 보는 재미일 것이다.

<싱어게인>은 무명 뿐 아니라 잊힌 가수들, ost 가수들 등등 다양한 집단에 속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다시 노래하고 싶다."는 열망 그 자체다. 20대 때 노래방에서 열창하던 'love holic'과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를 부른 가수, 국민 애창곡 '인형의 꿈'을 부른 가수가 나올 땐 깜짝 놀랐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여자분이 자신의 노래라며 스카이 캐슬 ost를 부를 때는 전율이 일었다. 무명 가수들 역시 만만치 않다. 어디 숨어있다 이제야 나온 걸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오디션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오디션 프로는 최고로 실력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토너먼트로 경연을 치른다. 매 경연마다 누군가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고 누군가는 떨어진다. 그런데 출연자 모두가 자신과 겨뤄야 하는 상대방을 이길 생각보다는 그저 무대를 즐기기 위해 나온 것만 같다. <싱어게인>이란 명칭처럼 출연자들은 그저 음악이 좋아서, 노래를 할 수 있는 무대를 찾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심사위원이 짜준 사람과 팀을 이루어 연습했던 2라운드는 더욱 볼만했다. 자신만이 돋보이게 무대를 짜는 팀은 없었다. 팀을 이룬 사람과 함께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모두가 고심했다. 1호와 45호가 만들어낸 나이를 뛰어넘은 공연은 실수마저도 감동으로 탈바꿈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무대는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가장 먼저임을 모두가 증명했다.


독보적인 재능과 매력으로 승리한 누구허니팀의 30호는 탈락 위기에 처한 형님 때문에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반전이 있는 법. 다시 기회를 얻은 형님이 돌아오자 30호는 달려가 껴안는다. 출연자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음악을 응원하는 팬이 된 것 같았고, 서로가 잘 되길 바라는 진심 같은 것으로 끈끈해진 듯했다.

강력한 운명팀이 무대를 앞둔 각오를 말하는 장면에선 존경심이 일었다. 멋진 무대를 보여줬던 과거의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 노래하겠다는 사고방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장 멋진 경쟁, 가장 선한 경쟁은 언제나 어제의 나와 겨루어 이기는 승부에 있었다.

사회자 이승기는 다재다능한 참가자 37번을 보며 말했다. 성실함이란 장점은 연예인에게 있어 좀 더 낮게 평가되는, 오히려 손해인 듯한 자질로 폄하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어마어마한 연습량이 눈에 보이는 37번과 같은 참가자를 볼 때면 기분이 좋다고. 37번의 무대는 성실함도 끼라는 것을 보여준 무대가 아니었나 싶다고. 이승기의 말에 37번이 눈시울을 붉히는데 나도 그만 같이 울어버렸다.

소위 요령, 꼼수, 꾀, 잔머리 같은 것을 굴릴 줄 아는 사람들은 지름길을 잘 알아채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우직한 사람들이 몇 년에 걸쳐 겨우 하는 일들을 단 시간에 성취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뭐든지 빠른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느리고 뒤쳐져 있는 나 자신이 가끔 한심해 보일 때도 있었다. 성실함은 재능이라기보다 실력없는 사람들을 허울좋게 포장해주는 입바른말 같았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가진 끼와 재능이 많다해도 성실한 삶의 태도 없이는 그 무엇도 견고히 쌓아나갈 수 없다.

성실함도 끼라는 이승기의 말에 눈물이 났던 것은 내가 너무 열심히 한 해를 버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 수업은 매력이 없어요.”라고 악평했던 상사의 말도 떠올랐다. 승기 씨 덕분에 나는 이제 “성실함도 끼예요. 그게 내 매력이죠.” 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나를 찍어누르려는 상사의 말보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내 수업시간을 기다린다는 다른 이들의 증언을 믿으련다.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홈베이킹에 도전하고 며칠에 한 번씩 미술놀이를 해주고 홀로 둘을 데리고 외출도 감행했던 올 한 해의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간다. 글도 쓰고 책모임도 하고 그 와중에 틈틈이 영어 수업도 찔끔찔금 했던 시간을 돌아보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우울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애를 쓴 나에게 참 애썼다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시대 속에서 나와 같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잘 감당해낸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애썼다고, 수고하셨다고 말해주고 싶다. 2020년 연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브런치 작가분들에게 다 말해주고 싶다.

"고생 많으셨어요.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그리고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An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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