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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May 07. 2022

미니멀리스트의 서막

스마트한 살림인가 버리다 남은 살림인가

 결혼 후 10년간 무주택자로 살다가, 청약에 당첨되었다. 다자녀 전형이었다. 조건은 지금 살고 있는 사택에서 다른 지역으로 애 셋을 데리고 이사해야 한다. 시작부터 엄청난 관문이 예상되는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살고 있는 33평보다 8평이 작은 25평 아파트로 짐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 8평어치는 집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이 더럽다기보다 정돈이 안 된 느낌이다. 이럴 땐 꼭 책부터 읽게 된다. 책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혼자 정리를 못하겠으니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라도 좀 읽어보기로 했다.



 정리에 대한 책은 주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소개로 넘어간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통장 잔액이 미니멀하므로(큰 집을 살 돈이 없다) 대충 그 흐름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지금부터는 책에서 배운 몇 가지 사실 중에 내 생활에 적용해볼 만한 것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일단 첫 번째. 버려야 공간이 생긴다. 짐이 많다면 계속 청소하고 수납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많은 짐을 가지고 있다 해서 그만큼 다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적은 짐으로 알차게 뽕을 빼는 것이 좋다. 정리 고수들은 용도가 겹치는 물건들을 하나로 줄이고, 옷도 33벌만 남기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그래, 이론으로는 알겠는데 뭐부터 얼마나 버려야 하나. 내가 생각한  팁은 버리는데 우선순위는 없다는 것이다. 10가지 물건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필요 순위 1부터 10까지 중에 5까지 남긴다고 했을 때, 지금 내 눈에 들어온 게 6이던 10이든 간에 남기지 않기로 한건 그냥 버리면 된다. 이전의 나는 6이 먼저 보이면 아이건 10보다는 쓸모가 있는 건데 하면서 아쉬워했다. 근데 그렇게 10부터 987 순서대로 버리려고 하다 보면 일이 너무 많아진다. 5순위 안이 아니라면 버린다는 것은 똑같다. 오히려 6을 버리고 나면 다른 버릴 것들도 눈에 잘 들어와서 수월해진다.



 그래서 종량제 봉투를 가져와 딱 2개만 버려보기로 한다. 카테고리는 상관이 없다. 오늘 두 개, 내일 하루, 모레 또 두 개 이런 식이다. 버리다 보니까 비슷한 물건들 중에 세트로 딸려오는 것들이 있었다. 색깔 컵세트나 책 시리즈 같은 식으로. 그래서 이 방법도 생각해냈다. 일단 무작정 버리기 힘들다면 같은 종류의 물건끼리 분류해두기. 그렇게 하면 나중에 아예 세트로 버리거나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필요한 것만 남기는 등 정리하기가 편해진다.



 다시 이론으로 돌아와 둘째, 하나 사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이거는 좀 쉬워 보인다. 새로운 걸 사면 헌 거는 버리면 되니까. 새책을 한 권 사면 읽은 책 중에 한두 권은 버리고, 새 옷을 사면 안 입는 옷 한두 벌은 버린다. 여기까지만 생각했을 때는 간단해 보였는데.



 내 생활에 적용해보니 살면서 생활용품이 계속 리필된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가만히 있는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택배로 뭘 사고 있다. 두루마리 화장지도 있어야 하고 젖병 닦기도 필요하다. 우리 집 앞에는 늘 택배박스가 두세 개는 쌓여 있다. 이 물건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 집을 잠식하기 전에 부지런히 분리수거해야 그나마 평소 상태를 유지하고, 거기다 플러스로 필요 없는 친구들까지 버려줘야 천천히 미니멀을 해나갈 수가 있다.



 셋째, 공간을 제약해두고 우선순위 정해 중요한 것들만 남기기. 옷방이면 옷방 서재면 서재로 공간을 잡되, 그게 너무 많다면 옷장 한 칸 책장 한 칸으로 작은 범위를 잡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냥 마구잡이로 쓰레기통에 넣는 것보다, 물건이 정리되어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보통 집에 물건들이 너저분하면 그것들을 싹 봉지에 담아서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러나 밖에 꺼내놓았다는 건 오히려 사용빈도가 높은 물건을 의미한다. 어제 입은 옷이나 애들이 몇 시간 전까지 놀던 장난감 중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부터가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럴 땐 서랍에 있던 걸 버리고 잘 쓰는 걸 서랍에 싹 정리해 넣어라. 서랍에 넣어두고 봉인해뒀다는 건 계속 쓰지 않는 물건이라는 뜻이니까. 눈에 보이는 걸 버리는 게 아니라 안 보이게 숨겨져 있는 걸 버리고 그 안에 눈에 보이는 애들을 넣어 정리하는 것이다. 계절이나 시즌에 맞지 않아서 잠시 넣어둔 물건을 제외하고는 거의 안 쓰거나 그냥 안 쓰는 짐이다. 이럴 때 서랍 속 물건들을 봉투에 넣어 버린다면, 새로운 정리함을 구할 필요 없이 알아서 정리할 공간이 마련된다.



 청소에 대단한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구잡이라도 버려놓고 일단 줄여두면 청소의 체계는 나중에 차차 잡힌다. 그런데도 일단 시작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한번 흐름을 타면 물 흐르듯이 버리기도 하는데 좀처럼 시작하기가 어렵다. 육체노동에 정신노동까지 추가되어서 그런지, 약간의 정리만으로도 pt수업에 공부 두 시간까지 하는 것만큼의 결심이 필요하다



 그래도 정리만큼 눈에 뚜렷하게 결과물이 보이는 노동도 많이 없다. 나는 여기까지 배우고 나서 마트에 가서 분리수거 스티커를 받아왔다. 집에 큰 거 몇 개 버리고 정리하니 개운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애들 셋이서 부지런하게 어지르고 있으니까. 차츰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미니멀 라이프가 가능할까? 어쨌든 정리하는 삶을 산다는 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거 같으니,



 일단 밥부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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