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정아 Oct 24. 2018

분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슬픔

강서구 PC방 사건에 국민들이 원하는 건 정의 실현이다

이 세상이 점점 발전하면서 더 살기 좋아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묻지 마 범죄가 있었지만, 이토록 극악무도한 사건이 있었을까.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기사를 처음 접하고, 며칠간 심란해 견딜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기사를 읽어보고, 새로운 정보가 올라온 게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국민들이 참담한 심정으로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범인의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청원은 6일 만에 100만을 넘기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며, 분노한 국민들이 이 사건을 주시하며 다 같이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처럼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머릿속이 복잡해진 채로 며칠을 보냈을 것이다.


동생은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났고, 피의자는 ‘정신감정’을 한 달에 걸쳐서 진행한다고 한다. 절차상의 문제겠지만 이렇게 상식을 벗어난 범죄에 타당성을 부여하기라도 하듯 정신감정에 그렇게 많은 노력과 7명이나 되는 의료전문가가 투입된다는 건 어쩐지 불편하고 씁쓸하다.


법이란 애초에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며칠 전 사건의 응급실 담당의였던 남궁인 의사가 페이스북에 쓴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글이 공개됐다. 이 사건에 대해 신속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피의자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던 시점에, 피해자의 최후를 목격한 그가 올린 글을 보니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담당의가 올린 글을 비판하는 의견도 나왔다. 좋은 뜻으로 올렸겠지만 망자와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글이 아니냐, 의사의 윤리성과 환자정보 준수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글을 올린 의사의 용기에 감사했고, 내가 피해자 가족이었더라면 더욱 감사했을 것 같다. 유래 없이 참혹한 사건의 현행범이 우울증과 심신 미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동생은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난 상황이었다. 사건의 담당의사가 팩트를 바탕으로 자세히 쓴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피해자의 편에 신뢰도 있는 의견을 실어주었다. 심신미약이 자꾸 언급되는 불안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피의자의 감형을 막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심정이 아닐까.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한 담당의사의 글은 언론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그 글을 읽고 사건의 심각성을 알게 된 더 많은 사람들이 청원에 참여하며 피의자의 강력 처벌에 힘을 싣고 있는 지금 그 글의 공익성을 의심할 여지가 있을까. 피해자의 고통을 낱낱이 알린 그는 의사이기 전에 범죄의 참혹함에 분노하고, 인간의 무기력함에 좌절한 인간일 뿐이었다.


의사 겸 작가분이라고 들었는데, 글 자체만 읽어봐도 그 장문의 글을 얼마나 고심해서 조심스럽게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중립을 유지하고, 감정은 배제하고, 잔인할 수 있는 묘사는 최대한 담담하게 쓰였다. 추론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인 그의 글은 한 줄 한 줄 깊은 고민이 묻어났다. 그의 사회적 위치에서 그런 글을 대중에 공개하는 건 분명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충분히 침묵할 수도 있었다.


의사의 윤리성과 환자 비밀준수 의무 등에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도 그가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의료인으로서 비난이나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사건의 잔혹성을 알리기 위해,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을 위해 내린 용감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 안타까운 건,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그 피해자가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인과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이었다면 피의자 동생은 당연히 공범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하긴, 미국이었다면 이 살인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겠구나 생각하니 허탈해졌다.


미국이었다면 애초에 그의 살인 위협이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기에 신고를 한 것이고, 신고가 되었기에 위협을 한 사람은 경찰서에 연행되었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조사를 받아야 했을 것이고, 상해 전과기록이 나오니 상황이 조금 심각해져서, 아마도 길고 지루한 조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피해자는 이미 퇴근을 했을 것이고, 다음날부턴 정규직 채용이 된 곳에서 일을 하며 모델의 꿈을 키우며 살아갔을 것이다. 피의자 또한 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흥분을 가라앉힌 뒤 귀가했다면, 적어도 그날의 사건으로 살인자가 되는 일은 면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살인 위협은, 아무런 해가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위협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고, 위협의 정도에 따라 5년까지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몇 년 전에 뉴욕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혼자 타고 집에 가던 중에, 손에 쥐고 있던 아이폰을 소매치기당한 적이 있다. 새벽 1시 정도 되는 시간이었는데, 다른 때는 보통 택시를 타고 귀가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지하철을 탄 날이었다.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읽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내 손에서 폰을 낚아채서 지하철 밖으로 튀어나갔고, 그와 동시에 문이 닫히고 출발했다.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역을 두 군데쯤 지나친 후에야 정신을 차려 지하철에서 내렸다. 역무원에게 울먹거리며 얘기를 하자 지하철 역 앞에 대기 중이던 경찰을 불러줬다. 그렇게 난생처음 경찰차 뒷자리에 앉아 인근 경찰서로 갔고, 거기서 조서를 작성하고 케이스 넘버를 받았다. 이 케이스 넘버가 있어야 휴대폰을 정지하고, 휴대폰 내의 개인정보로 인해 2차, 3차의 피해가 생기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놀라운 건 경찰들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였다. 사실 역무원에게 신고를 하면서도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은 게 내 심정이었는데, 그 사건이 다뤄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세밀했다. 조서는 수십 장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범인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야 하는데, 사람을 묘사하는 방법이 그렇게 다양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머리색, 눈 색깔은 기본이고, 머리 길이, 머리카락 곱슬거림의 정도, 얼굴 형, 입술의 굵기와 코의 모양, 어깨의 넓이와 다리의 굵기 등 신체 구석구석의 특징이 선택문항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입고 있던 옷의 색상, 무늬, 패턴, 체크무늬라면 어느 정도의 체크 크기인지, 줄무늬라면 줄이 굵은지 가는지까지 선택해야 했다. 검은색 옷이라고 선택을 하면 옷의 재질은 무엇인지, 셔츠인지 후드티인지, 겨울 옷인지 여름옷인지 등 수십 가지의 문항으로 세세하게 나뉘어 그날의 범인의 특징을 좁혀 나가게 되어있었다.


사실 범인을 본 건 찰나의 순간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아서 나중엔 거의 찍듯이 체크해 나갔다. 겨우 핸드폰 도난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 내가 머문 시간은 약 세 시간이었다. 경찰서를 나오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당장 오늘 그를 잡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이 범인이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체포되었을 때 오늘 내가 입은 피해까지 더해서 처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줬다. 난생처음 간 미국 경찰서에서 새벽에 혼자 오들오들 떨며 문항지를 풀고 있자니, 수갑을 찬 사람들이 하나 둘 경찰들에게 끌려 들어왔다. 범인들을 보는 것도 무서웠는데, 그들을 다루는 경찰들의 태도는 상당히 거칠어서, 멀리서 지켜보는데도 오싹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비자 인터뷰나 입국심사를 할 때 심사관들이 까다롭고 강압적이라고 불평하곤 한다. 하지만 미국은 입국 심사관뿐 아니라 경찰, 보안관 등 공권력이 원래 그렇게 세다. 그들은 총기 사용에도 거리낌이 없다. 경찰의 말이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절대권력이다. 외국인이라 입국할 때 까다로운 게 아니고,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서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매일매일 입국하고, 수많은 불법 마약을 들여오는 곳이 통로가 바로 공항이기 때문에 그곳을 심각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경찰의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에 익숙하다. 그러니 일반적인 공권력을 생각하면 공항의 차가운 입국심사관들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경찰의 명령에 불응할 시에 현행범을 사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경찰의 말에 불복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이 권위적이어서 불편한 점보다, 경찰이 필요할 때에 “그들이 분명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신뢰에서 오는 안정감이 더 크기 때문에, 누구도 경찰이 불친절하다고, 또는 공권력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경찰의 임무는 사회의 질서를 통제하는 것이고, 법이란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맨해튼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어느 날, 혼자 와서 술을 마시던 20대 후반의 여자 손님이 술에 너무 취해 돈을 안 내겠다며 억지를 부린 적이 있었다. 우리 돈으로 8만 원 정도 나온 금액을 그 여자는 끝까지 안 내겠다고 우겼다. 우리를 위협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매뉴얼대로 매니저가 경찰을 불렀다.


5분쯤 후에 경찰 네 명이 들어와 그녀와 대화로 해결하려 했지만, 그녀는 술에 취해 경찰에게도 억지를 부렸다. 두 번의 경고 끝에 경찰 네 명이서 그녀를 바닥에 제압했고, 수갑을 채우는 동안 밖에서 경찰 세 명이 더 들어왔다. 키 170도 안 되는 보통 체격의 20대 여자를 체포하기 위해 키도 크고 덩치가 산만한 남자 경찰 7명이나 출동한 것이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뒤로 수갑을 차고 밖으로 끌려나가 경찰차를 타고 사라졌다. 경찰이 그렇게 빨리 온 것도 놀라웠는데, “혼자 온 여자 손님이 계산을 안 한다”라는 신고로 경찰 7명이 온 것은 충격이었다. 아마 그 여자는 경찰서에 가서 8만 원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의 벌금을 내야 했을 것이다.



범죄도시에 나오는 대림동의 불법체류 조직원들은 칼을 차고 다니는데, 실제 사건은 영화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보복운전을 하거나 운전 중 싸움이 나면 트렁크에서 도끼를 꺼내 휘두른다고 한다. 집 밖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수도 없을 만큼 치안이 안 좋다는 몇몇 남미의 나라들은 또 다른 차원이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월드컵이 열렸을 때 경기장 근처를 벗어나면 강도당할 확률이 150%가 넘는다고 했다. 150%란 수치는, 1번은 무조건 강도를 당하고, 몇 분 후 바로 또 당할 확률이 50%라는 뜻이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위험한 문화권에서 온 별별 민족들이 다 모여 사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에 질 좋은 외국인들만 들어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총으로 무장한 공권력으로 사람들을 통제해야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미국에서 자국에서처럼 행동하다간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는 걸 알기에 미국의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


한국도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좀 더 강화된다면 치안 수준이 세계 상위권인 지금보다도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사회의 변화에 맞춰 한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까지 통솔하기 위해 법이 재정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현행법상 경찰은 초동조치 시 민간인의 범죄경력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경찰의 대응능력이 떨어진다고 경찰을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기에 그들이 조치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 갈수록 범죄는 흉악해지는데 범죄자들은 강력범죄에 대한 허술한 처벌을 알기 때문에 큰 두려움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결국 피해 보는 것은 법을 준수하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강서구 PC방 사건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주말 아침 평범한 아르바이트 생에게 일어난 잔혹한 사건이 예방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고, 피의자를 심판하는 과정이 못 미더워 보이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감형 반대 국민청원이 100만을 육박하며 온 국민이 집중하고 있는 사건에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심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회에 도덕적인 혼란이 올 것 같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피의자와 공범을 엄벌로 다스리고, 나아가 이 사건을 계기로 법을 강화해서 이런 어이없는 사건을 예방하는 것, 그리하여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피의자보다 피해자의 인권을, 범법자보다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인권을 우선하는, 그런 당연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꾼다.


나는 평소 사회적인 사건에 분개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더 정의로운 누군가가 나서서 어떻게든 세상을 바꿔주길 바라며 침묵하는 부류에 가깝다. 사회정의 실현에 희망적이기보다는 회의적인 내가 이 사건을 접한 이후 머릿속이 복잡해서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건, 다음 날 정규직 첫 출근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던 스무 살 청년의 삶이 하루아침에 짓밟혀 버린 게 도저히 남 일 같지 않아서였다.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가며 그는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가야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를 마주하는 두 형제를 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까. 그의 마지막 뒷모습이 마치 내가 아는 동생같이 느껴져서 더 아팠다.


나처럼 소극적인 사람들까지 힘을 보태고 목소리를 높여야만 세상이 바뀐다. 국민청원에 동의하고, 미국의 한인 웹사이트에 청원 링크를 올리며 참여를 종용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충격받고 분노하며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총기로 무장한 공권력과 비싼 벌금으로 범죄를 다스린다. 모든 범죄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고, 죄질이 나쁜 경우 100년, 200년씩 구형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공개처형으로 강력범죄를 다스리고, 싱가포르에서는 태형으로 범법자를 다스린다. 이처럼 강력한 처벌에 대한 공포가 국민들에게 교육되어 수많은 잠재 범죄를 방지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한국의 법 체계가 바뀔 수 없다는 걸 국민들도 알고 있다. 부디 고인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사건을 계기로 점차 법적인 체계가 강화되어 평범한 사람들을 이번 사건같은 비극으로부터 지켜주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408609?navigation=best-petition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