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또 좌절하며 키워가는 백수의 멘탈
이렇게 오래 놀 줄은 몰랐다.
나도 한때는 주말도 없이 몇 년을 일했고, 그러다 번아웃이 와서 쉬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5년 넘게 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엔 학교에 갔다. 바쁘게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기 6개월 전쯤의 일이었다. 프리랜서 대필작가로 책을 써본 후 영문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두 번째 학기부터 일을 그만두고 학교에만 다녔다. 마지막으로 성사시킨 계약 수수료가 우리 돈으로 1억 가까이 되었다. 웬만한 연봉 이상이었다. 그래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졸업 후 일단 한국에도 갔고, 한국 간 김에 여행도 다녔다. 미국의 대학교 학사과정은 너무나 힘들었다. 일주일에 단편소설 한 편이나 8-10장짜리 에세이를 써가야 했는데 그게 한과목도 아니고 여러 과목에서 그 정도 분량의 과제를 요구하다 보니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몇 달은 놀아도 되겠지 하며 방심한 동안 졸업 직후 가장 취업이 잘되는 골든타임이 흘러갔다. 약간의 휴식이 필요했을 뿐인데. 한국에 가서 3개월 신나게 놀다 오고 얼마 안돼 코로나가 시작됐다.
코로나 시작과 함께 뉴욕엔 아시안 혐오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 이삼십 대를 모두 보낸 내 집 안방 같은 뉴욕 시티가 한순간에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외출할 때마다 커터칼과 페퍼 스프레이를 들고나가는 일상이 2년을 넘었다. 매일 동양인들만 골라 다치고 죽었다. 묻지 마 폭행과 살인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 뉴스에 다 담을 수도 없을 정도인 상태가 2년을 넘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며 나이도 두 살을 먹었다.
그 사이 유튜브를 시작했고, 2년 만에 한국에도 다녀왔고, 코로나에 걸렸고 백신을 맞고 코로나 때보다 더 심하게 앓았다. 할 수 있는 뭔가를 하며 주어진 상황 내에서 최대한 생산적이려고 노력한 거엔 한점 부끄럼이 없다. 지독한 불안장애에 걸렸다 나아지고 있고 백신 후유증도 일 년이 지나며 조금씩 회복 중이다. 인생사 예측불가라지만 이 정도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던 적은 없었다.
백수인 것에 대해 덧붙이자면 나는 지독하고 지긋지긋한 이상주의자로 "내 영혼을 울리는"일을 평생 찾아왔다. 돈도, 흥미도 좇아보고 일로도 공부로도 배워보며 진정 내 영혼을 울리는 무언가를 찾아 미국에까지 왔다. 아직 또렷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10년 전, 20년 전보단 확실히 더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게 어디냐 싶어 감사하려고 한다.
솔직히 취업에 대해 지난 몇 년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처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게 맞다. 취업하려고 노력해 본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진지하고 절박하게 취업을 고민하는 건 처음이다. 언제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지 싶은 생각 반, 몸이 안 좋아서 일할 생각은커녕 이력서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 시간이 반이다.
어느새 미국 나이로도 마흔을 바라보고 있고 경력이 있는 분야로는 돌아가게 쉬운 것도 아닌데 돌아갈 마음이 없고 새로운 분야를 다시 "또" 개척해야 하는데 과연 내게 그럴 스태미나가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일을 그만둔 후 공부한 것과 개인적으로 한 활동들을 추려보니 스토리텔링과 소셜 미디어, 콘텐츠 등 디지털 마케팅의 세부 분야로 걸러졌다. 그 분야에 일한 적은 없지만 몇 년 간 꾸준히 인스타그램, 구글의 제품과 서비스 등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디지털 마케팅 프로그램과 수업을 들어본 후 관심이 생겨 비영리 단체의 직업 교육 프로그램 중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 등록하여 6월부터 10주간 풀타임 트레이닝을 받을 예정에 있다. 그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미리 패스해두면 좋다는 페이스북 인증 시험공부를 하는데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인증 과정도 철저해서 (물론 더 믿음이 가지만) 시작도 전에 피로가 몰려왔다.
대기업에서 어프렌티스 지원자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대부분 참가한다는 데 또 현타가 왔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어쩌다 이런 상황에 왔지? 하는 생각에 뭔가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일까 봐, 다들 20대인데 나만 혼자 이모뻘인 사람이 될까 봐 움츠러들고 뭔가 시작도 전에 자신감이 떨어진다. 30대 초에 대학교에 돌아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건, 그땐 건강하고 에너지가 있어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나 보다.
40대 나이 지긋한 의사, 기자, 군인 장교인 분들과 함께 원어민 영어수업을 듣던 시절 나와 내 친구는 클래스 유일한 학생이자 중학교 2학년이었다. 이삼십 대 어른들과 일본어 회화 수업을 들을 때 회식에 가면 어른들 사이에 끼어 아무리 사복을 차려입어도 학생인 걸 들키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스물다섯 언니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로 보던 때가 나도 있었다. "80년대에도 애들이 태어났어?" 하는 얘길 하던 그 일본어 수업 언니 오빠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에버랜드에서 일할 때는 한국 나이로도 스물, 미국 호텔 인턴십을 할 때는 미국 나이로 스물 한살이 안 되어 술도 마실 수 없었다. 영어학원 강사를 할 때도, 첫 번째, 두 번째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가장 어린 나이대였다. 그렇게 나이에 비해 앞서 나가는 게 당연한 것 같은 20대를 보냈다. 나는 늘 그렇게 최연소로 무언가를 갱신하며 그렇게만 쭉 살아갈 줄 알았다.
20대의 끝자락에 결혼을 하며 그럭저럭 대부분 시간에 맞추는 것 같이 살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출산도 육아도 하지 않으면서 사회활동도 왜 하지 않아 커리어는 붕 뜨고 건강은 바닥을 쳤다 간신히 어찌어찌 회복하고 있는 잉여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네 슈퍼에서 일하는 고등학생을 봐도, 도서관에 발룬티어를 하는 노인들을 봐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나보다 더 사회인이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으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걸 넘어 내가 개미만큼 작아진 기분이 든다. 마치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인간이랄까. 일이란 건 돈을 떠나 인간의 사회성과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유일한 경제활동인 유튜브도 몸이 안 좋아지며 손을 놓으니 꾸준히 올라가던 구독자 수와 그보다 더 중요한 상승세의 기운이 사라졌다. 매일 늘어가던 구독자 수가 정체하더니 금세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지만 기운이 없어 그야말로 숨만 붙어있던 때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1년 만에 컨디션을 회복하며 다시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상승세를 회복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듯하다.
엊그제 야심 차게 올린 토크 영상이 역대급 최저 조회수를 기록한 걸 보니 유튜브는 해도 해도 잘 모르겠고 예측이 불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번 배웠다. 이건 뜨겠다 하는 건 뜨지 않고, 대충 찍어 대충 올린 영상 조회수가 훨씬 더 잘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대충 찍어 올린다고 잘 나오는 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다. 그야말로 예측 불가다.
이번 영상은 내가 유니버설 뮤직의 데프 잼 레코드에서 일한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경험에 관한 이야기였고, 편집하면서도, 공개 직전까지도 몇 번이나 돌려볼 정도로(보통은 편집하며 질려서 다시 틀어보지 않는다) 나는 역대 썰 영상 중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좋을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언니에게 "첼로(고양이)가 x 싸는 영상을 찍어 올려도 이거보단 조회수가 잘 나왔을 거야"이라고 한 말은 진심이었다.
백수라도 주말은 소중하다. 백수도 주말이나 되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주중엔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혼자 치열하다. 청소도 치열하게 하고 이력서도 치열하게 쓰고 영상 편집도 치열하게 한다. 밥도 치열하게 먹다 체한다. 마음이 급하고 너무 간절해서 지친다. 그럴 때 돌아오는 주말은 일하던 시절 못지않게 큰 휴식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죄책감을 안 느껴도 되니까. 어차피 주말은 남들도 다 쉬니까. 아침까지 잠을 못 자 뜬 눈으로 새도 괜찮다 토요일이니까. 남들도 다 그러는 날이니까. 주말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닌가. 백수도 일요일 밤은 기분이 안 좋다. 마음이 벌써부터 치열해지고 우울하다.
다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했던 지난 일 년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이력서를 넣고 다시 영상 편집을 하고 뭔가 "생각할 수 있는" 정도로 회복된 지금은 기적 같다. 다시는 못 쓸 줄 알았던 글을 이렇게 쓰고 있지 않은가? 무기력이 너무 심하고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매일 아침 죽지 않고 깨는 게 신기할 정도의 상태로 살았던 걸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기적이다.
글을 쓰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절절히 깨달은 시간이었다. 글을 쓰던 한때의 내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느껴진 기이한 경험이었다. 글쓰기가 즐거움이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나였는데, 마치 그쪽 뇌가 꺼진 것 같은 멍한 느낌으로 일 년 넘게 살았다. 지난 며칠처럼 문장들이 머릿속에 모이고 쌓여 문단이 되고 이렇게 글로 쏟아내 머릿속 글 공장을 텅 비울 수 있는 오늘 같은 날이 다시 온 게 어딘가 싶다. 그야말로 기적이고 축복으로만 느껴진다.
건강도 좋아지고 있고 소소한 운동 습관도 들였고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를 다진 일 년이었다. 악몽으로 볼 수도 있을 시간이지만 나는 행복던 시간으로만 기억하고 싶다.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불안증 증상도 없어진 지 두어 달이 되었고 남편과 고양이는 건강하고 창밖의 나무는 어느새 무성한 초록색이 되었다. 백수에게도 봄도 여름도 주말도 온다. 또 치열한 한 주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