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같은 음악과의 항해
지난달 어머니 생신을 기념으로 남해를 다녀왔다.
남해는 그동안 그 아름다움에 대해 많이 들어왔던 터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서해나 동해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남성적이며 거친 느낌을 주는 강원도와는 다르게 매우 웅장하면서도 여성스러웠고 모성과 같은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찾은 장소에서 한없는 모성과 같은 바다를 느끼다니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나에게 드넓고 광활하면서도 모성과도 같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곡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영화배우 하정우가 감독을 맡았던 영화 <허삼관>의 OST 대표곡으로, 아름다움에 있어 음악이 영화를 압도한다. 또한 영화 전반의 감정선을 이 한 곡에 잘 담아내어 극적이고 감정적으로 강한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영화 <허삼관>의 총 음악 감독이자 이 음악의 작곡가인 푸디토리움 김정범씨는 인터뷰에서 ’작은 감정으로 시작해서 큰 감정으로 천천히 변화해 나가지만 어느 순간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관객 모두가 함께 빠져들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잔잔하고 아름답게 시작된 음악이 어느덧 듣는 이를 휘몰아치듯 격정의 감정 속으로 인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곡은 체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레코딩한 것으로, 여느 오케스트라 곡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곡의 진행에 있어 클라리넷 플룻 피콜로등과 같은 관악기들이 주 멜로디를 잡으며 곡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허삼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따뜻한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악기들의 가장 적절한 밸런스를 중요하게 여긴 김정범 음악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음악이 유려한 멜로디에 관악기가 내뿜는 독특한 분위기와 개성이 드러난다.
마침 이 곡에 한참을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전시를 하나 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화가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블라디미르 쿠쉬 라는 러시아 화가의 전시였다.
유명한 미술관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화가의 전시가 열린다니, 궁금해졌다.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첫 작품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한발 한발 내딛을수록 너무나도 환상적이고 상상력이 가득한 작품들에 쉼 없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초현실적이지만 사물과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화가의 세계를 어렵지 않게 탐험할 수 있었고, 기발한 발상과 위트 넘치는 표현들은 기꺼이 그가 펼쳐놓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했다.
알고 보니, ‘러시아의 달리’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쿠쉬는 세계가 인정하는 초현실주의의 대가였다.
그는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으로 가득한 세계를 작품화하여 끝없이 상상하게 하며, 독특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한 아름다운 풍경은 수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전시를 보는 내내 〈허삼관〉의 대표곡을 듣고 있었는데, 쿠쉬의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특히 바다를 배경으로 그린 〈날개 달린 배의 출항〉을 감상할 때는 나 역시 배를 타고 아득할 만큼 드넓고 반짝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날갯짓하는 나비와 함께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귀에서 흐르는 음악은 쿠쉬의 〈날개 달린 배의 출항〉과 그 그림에 빠져 있는 나를 남해와 같은 따뜻함으로 한없이 품어주었다.
세련되면서 이국적인 음악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을 구축한 푸디토리움 김정범 음악 감독의 〈허삼관〉 대표곡을 들으며 쿠쉬의 그림과 같은 드넓은 바다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성지윤 칼럼니스트 claramusic8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