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세이 - 베토벤과 나
Muss es sein? Es mus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 음악은 왜 위대하다 여겨지는 것일까? 그의 별명은 음악계의 ”악성“ - 음악의 성인 - 일 정도로 특별하게 대우받는 작곡가이다. 분명 베토벤 외의 다른 작곡가들 또한 천재적이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작곡가들인데 말이다. 왜 베토벤은 유독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걸까?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누구냐 묻는 질문에 나는 언제나 고민하지 않고 대답한다. “베토벤”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한 어릴 적에도, 전공을 결심한 순간에도 내 마음을 가장 뜨겁게 하는 작곡가는 변함없이 베토벤이었다. 그를 잘 모르던 그 시절에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가끔 곰곰이 그 이유를 되짚어본다.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베토벤이 좋았던 한 어린아이였던 것 같다. 섣부를 수 있지만 나는 나의 이런 면에서 음악의 힘을 느낀다. 베토벤의 힘, 그의 음악이 왜 위대한 지도 느낀다. 감히 예측해 보자면, 아마 그의 음악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자신 마음도 분명히 모를 그 어릴 적의 나에게 조차 분명하게 느껴진 베토벤의 음악의 힘이 날 움직이게 한 건 아닐까란 짐작해 본다. 나는 그저 그냥 베토벤이 좋다 말했을지 몰라도 내 깊은 내면의 음악적 자아는 베토벤과 소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처럼 베토벤 음악은 희한하게 사람 마음에 깊이 파고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의 초상화를 보고 무서워하거나, 또 그의 음악을 들어도 - 예컨대 운명 교향곡의 동기만 보아도 - 강렬한 사운드, 또 그를 묘사한 역사적 자료에서 조차 그의 성격이 괴팍했다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 한 편이 시큰거렸다. 정말 그가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했을까? 정말 인정사정없는 사람이었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음악을 알면 알수록 그는 오히려 묘사되는 표면적인 모습과 반대인 사람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껴 온 베토벤은 진중하고 진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 가볍지 않은 사람, 누구보다 인류를 생각하고 사랑하던 사람이라 느껴졌다. 많은 오해 속 베토벤은 억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베토벤을 믿어주고 싶었다. 그의 음악을 진정으로 아는 자만이 그를 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알면 그를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베토벤에 대하여 공부하고, 알게 될수록 더욱 확실해지기 시작하였다. 내 믿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유쾌한 순간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자칭 베토벤 애호가이기에 몇 년 전 그가 생전에 썼던 편지들을 묶어 놓은 책을 중고서점에서 겨우 찾아 구매했던 적이 있다. 나에게 이 책은 아직도 소중하고 고마운 책이다. 그를 알고 싶을 때,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흔들릴 때 나는 이 책을 꺼내든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베토벤을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다른 이들에게 예민하게 굴고 괴팍히 느껴질 수밖에 없던 이유, 청력을 점점 잃어가고 그는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잘 들리지 않으니 소리 지르기 일쑤였고, 또 그는 음악가로서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 다른 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했다. 실제로 그의 유서를 보면 왜 본인이 다른 이들에게 그리 날카롭게 할 수밖에 없는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은 내 마음을 모를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쓰며 그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마무리하려 하였지만 글을 쓰면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듯, 그는 유서를 쓴 후 오히려 무엇으로도 파괴될 수 없는 창작의지, 음악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그러며 그는 후 라주모프스키 4중주 op.59 3번 다장조 푸가를 작곡하며 악보 귀퉁이에 이제 아무것도 자신의 창작을 방해할 수 없다는 글을 썼다고 한다. 1806년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 “여기 네가 이렇게 사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페라를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네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물론 음악계에서도 “ 그를 살린 것이 음악, 예술이었던 것이다. 음악으로 인해 살아난 작곡가. 그런 그의 음악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로 하지 않아도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강한 긍지와 희망, 아마 베토벤의 음악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 안에는 변치 않는 빛, 삶을 향한 희망이 도사리고 있어서 일 것이다.
나는 그의 예술에 대한 강한 긍지와 사랑이 좋다. 그에게는 그것이 전부였다. 어디에 있더라도, 어떤 상황일지라도 음악만 할 수 있다면 그에겐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악이 있는 곳이 그에겐 드넓은 우주였기 때문이다. 편지의 내용 중 한 신예 작곡가가 베토벤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였는지 그에게 썼던 편지도 남아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베토벤의 성품과 음악에 대한 자세를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도시에서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제게는 좀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선생께 저를 모범으로 보여드릴 생각은 전혀 없지만, 다만 저는 아주 작고 이름 없는 고장에서 살았고, 이곳에서나 그곳에서나 스스로 노력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걸 확인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께서 예술을 계속하겠다는 열망을 느낀다면 이 사실이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
나에게 이 베토벤의 말은 큰 귀감과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국 음악계에 필요한 말, 정신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는 갈망의 사회인 것 같다. 특히나 입시세계가 그렇다. 어느 정도 대학을 가야 성공한 음악가의 삶이 시작되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자로 여겨지는 듯한 세계는 나를 오랫동안 짓눌렀다. 음악을 너무 사랑하고 원하지만 내게 허락되지 않는, 내가 감히 넘보면 안 될 것 같은 동떨어져있는 세계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또 음악세계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는 상황이 주어져야, 조건이 붙어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안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사회로 굳어가는 듯하다. 나는 이에 반기를 들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특히 청년들이 베토벤의 저 정신을 닮아 세상의 소리가 아닌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듣길 원한다. 정말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국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에 있지 않고 내 안에, 나의 내면에 힘이 있다는 것을 함께 알길 원한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이 있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닌 나의 내면의 요동에 귀 기울이고 가능성을 그 안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것이라 생각하는 힘. 나는 베토벤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그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음악을 특별하다 생각한다.
우연히 읽게 된 베토벤에 대한 글에 이렇게 적혀있던 것이 기억난다. “베토벤은 음악 ‘운명’을 작곡했을 뿐 아니라 음악의 운명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 전까지는 대개 ’산만한 청취‘로 이루어졌었다. 연주회장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까지 작곡가들의 음악은 그저 귀족들의 배경음, 요즘 시대 말로 말하면 ’ 브금‘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연주회장이 변했다. 모두가 정면을 바라보고 오직 음악만 듣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그저 그런 브금으로 치부되는 것을 못 본 것이다. 또 그는 내가 알기로 최초로 자신의 곡에 번호를 붙인 작곡가인 것으로 안다. 이렇듯 그는 음악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음악의 개념, 음악회 매너, 음악에 대한 태도는 베토벤이 만들어 놓은 세계이다. 그리고 그 글에서는 이렇게 덧붙인다 ’ 베토벤은 청중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다기보다는 자기 음악을 위해 청중을 바꾼 사람이다.‘
음악의 운명을 바꾼 작곡가, 베토벤. 이것으로 그가 왜 음악계에서 특별히 여겨지는지, 왜 성인이라 불리는지 그 한 조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인과 대화를 하며 바흐는 음악으로 신을 찬양하였고, 베토벤은 음악으로 신을 만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말이 참 마음에 맴돌았다. 동시에 베토벤을 향한 신의 계획에 놀라움도 느낀다. 가끔 아이 같은 상상을 하곤 한다. 만일 먼 훗날 내가 천국에 간다면 베토벤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이다. 그 답은 알 수 없지만, 만일 만난다면 참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언젠가 하늘에서 베토벤을 만났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이 땅에 있을 때 더 열정을 가지고 음악에 임해 풍성한 에피소드들을 많이 쌓아 놓아야겠다는 유쾌하고 분명한 다짐을 해보며 글을 마친다.
Beethoven say :
Every time I jump over something, I feel happy.
- Me, too Beethov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