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예술가들의 유쾌한 창작법
지난글에 이어, 과거에는 예술을 어떻게 창조해 나갔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떤 시대적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추구해야 하는 예술 창작의 방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찰하고 개인적인 의견까지 담아보고자 합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의 관점으로, 제가 공부한 지식과 함께 저의 의견까지 더해 작성한 글임을 참고해주세요.
음악의 '독창성'과 '개성'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이후 작곡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20세기에도 쇤베르크와 라벨 같은 작곡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려 했죠. 현대에 이르러서는 표절이 법적 문제로 이어질 만큼 독창성은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특히 18세기 이전의 음악가들에게는 지금과는 다른 가치관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모방'이 창작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여겨졌던 시대였죠.
바흐나 헨델 시대에는 독창성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헨델의 '차용(borrowing)' 기법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차용기법'은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나 자신의 이전 작품 일부를 차용해 새로운 작품에 사용하는 기법을 뜻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자기 표절'이나 '도용'으로 비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창작의 한 방식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도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가져온 선율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이는 헨델이 얼마나 자유롭게 '차용'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모방'을 통해 탄생한 '메시아'가 헨델 사후에도 꾸준히 연주되며 그의 불멸의 명성을 이어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예술은 과거에 없었던 것을 원하지만, 현재의 모든 예술은 과거에 다 있었다"고 말하며 모든 예술은 과거의 예술에 빚지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과거에는 매주 루터교 예배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야 했던 바흐처럼, 작곡가들은 끊임없이 음악을 제공해야 했고, '모방'은 창작의 부담을 줄이는 실용적인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되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과거 예술가들은 왜 '모방'을 거리낌 없이 했을까요?
그 답은 인류가 예술 활동을 시작한 뿌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예술의 본질을 묻는다면 그들은 '미메시스(mimesis)', 즉 모방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플라톤은 예술의 본질을 '모방'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예술가가 자연이나 인간의 감정,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음악은 "다른 종류의 모방보다 훨씬 대단하다"며 가장 큰 관심을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대상을 인간의 감정, 성격, 행동으로 확대했습니다. 그는 음악의 선율과 리듬이 인간의 내적인 삶을 모방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성격과 특징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모방은 단순히 대상을 베끼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외부 세계의 모습이나 인간의 내면을 음악으로 재현하고, 예술가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창조적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뒤보스와 루소 같은 예술 이론가들도 모방을 단순한 복제가 아닌, 예술가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는 상징적인 재생산으로 정의했습니다.
모차르트 역시 어린 시절 전 유럽을 여행하며 각 지역의 음악 양식을 모방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과거 예술가들에게 '모방'은 창작의 첫걸음이자 학습의 과정이었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원동력이다'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모방'이 '표절'이라는 이름으로 더 엄격하게 다뤄집니다. 김헌식 평론가의 말처럼, K-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작곡가들이 그랬듯, 새로운 창작을 위해 '모방'을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어디까지를 '오마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거죠.
김헌식 평론가는 “논문을 쓸 때 세세하게 각주를 달듯 레퍼런스든 샘플링이든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K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관행처럼 이어지는 잘못된 창작의 행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면, '모방'이 단순히 무언가를 그대로 베끼는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라, 창작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헨델은 '메시아'에 다른 음악을 빌려와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고, 모차르트는 모방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배우고 창조해 나갔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과거의 예술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재해석하는 과정 자체를 창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오마주'나 '샘플링'도 과거의 '모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원작에 대한 존경을 담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시대의 창작자들 역시 과거의 유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모방'과 '창조' 사이의 경계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이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예술을 만들어가야 할지, 그리고 어떤 예술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 전공의 길에서 콘텐츠와 미디어, IT를 결합하여
음악으로 세상을 이롭게 만들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오희숙 저, 『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
연합뉴스, 『과거 예술은 모방을, 지금 예술은 창조를?』 (2022.07.29)
한국일보, 『"K팝, 표절 논란 뿌리 뽑아야"』 (2022.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