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쓰는 이야기
아마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시간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에서 활을 들고 선 순간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 차 안에서, 혹은 빈 연습실 한켠에서 바이올린 케이스를 조용히 닫으며 비로소 ‘나’를 만나는 순간이 더 깊게 남는 날들이 있습니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우아하고 빛나는 세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오히려 그런 작은 고요와 혼자가 주는 고백 같은 순간들이 음악을 더 음악답게 만들어 주곤 합니다.
저 역시 한때는 고요가 어색했습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하나둘씩 해외 유학을 떠날 때 저는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살아갈 용기가 없어 무작정 머물렀습니다. 공부도, 연습도, 연주도 좋았지만 홀로 보내야 할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주말이 오면 불안했고, 마음 한편에서 쉼 없이 ‘더, 더’라고 속삭이는 조급함은 오히려 저를 지치게 만들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무대에 설수록 혼자만의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스스로의 호흡, 손끝의 온도, 마음의 결까지 모두 반영하는 외로운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팬데믹은 그런 고요의 의미를 더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텅 빈 강의실에서 카메라만 바라보고 수업을 하던 날들, 관객 없이 마이크와 조명만 켜진 공연장에서 바이올린을 들었을 때의 묘한 공허함.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시간을 지나며 저는 비로소 혼자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연습실의 적막 속에서 활끝이 내쉬는 숨을 들으며, 오늘 연주했던 음들에 마음이 솔직했는지 자문하고, 어제보다 단 한 음이라도 더 진실하게 울렸다면 스스로를 칭찬해 주는 시간. 혼자 있는 순간이야말로 제 음악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영양제 같은 시간이라는 것을요.
그래서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무반주 바이올린 음악이 깊이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선 음들이 서로 기대고, 또 홀로 자라나는 그 세계는 마치 넓은 강 위를 혼자 헤엄치는 것 같습니다. 물결에 휘둘릴 것 같은 순간에도 결국 제 호흡과 제 판단이 모든 것을 이끌어야 하는 느낌.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을 연주할 때마다 그런 고요 속의 용기를 배웁니다.
특히 마지막 악장 샤콘느는 마치 인생 전체를 한 곡 안에 담아낸 듯, 기도처럼, 고백처럼, 그리고 희망처럼 다가오거든요. 언어가 없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그 음악 안에서는 누구도 외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고독의 친구,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들으면 혼자인 시간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그림과 그림 사이를 이동하는 발자국, 프롬나드의 선율에 실린 조용하지만 단단한 정서. 누가 옆에 있지 않아도 충분히 풍요로운 감정들이 흐릅니다.
그림 속 세계를 산책하듯, 마음 속 장면들을 천천히 꺼내어 회상하게 되죠. 아마 혼자 있는 순간이 낯선 분들도 이런 음악과 함께라면 고요의 결이 한층 더 포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활을 들고 있습니다. 때로는 두려움과 긴장도 있지만, 혼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무대는 덜 외로워집니다.
음악은 결국 사람과 마음을 잇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바흐의 무반주 전곡을 언젠가 제 음악 인생 속에서 모두 연주하겠다는 꿈을 안고, 오늘도 조용히 현을 고릅니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진 마음으로,
내일의 한 음을 더 정직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며.
새롭게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