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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Sep 03. 2020

코로나 - “사이렌”




뉴욕에서 공부하는 아들의 졸업식이 올해 5월에 있을 예정이었다.




진정으로 '카푸트 문디 (caput mundi)'요 골수까지 '메트로 폴리탄'인 그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며 이루어낸 막내의 성과를 축하하기 위해 남편과 큰아들과 나는 5월 하순, 뉴욕에 총출동하기로 했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큰아들은 각각 2주와 1주의 휴가를 받기로 했다. 졸업식 다음날이 마침 내생일이기도 해서 우리 4 식구는 '피터 루거'에서 그날 저녁 식사하는 것을 포함하여 앞뒤로 자세한 일정을 만들었다. 남편과 나는 아들의 졸업식 이전에 일주일 동안 쿠바에 다녀오기로 했고, 큰아들은 가고 오는 날을 제외하면 며칠 안 되는 동안 동생과 실속 있게 보낼 궁리를 했다.




졸업식 후 남편과 큰아들이 서울로 돌아가면 나는 혼자 2주 동안 미국 북동부 지방의 미술관& 박물관들을 관람하고 워싱턴과 뉴헤이븐 지방을 자동차로 둘러보기로 했다. 나홀로 자동차 여행에 남편은 격려를, 큰아들은 걱정을 보탰지만 나는 벌써부터 흥분되어 가슴이 뛰었다. 뉴욕 여행에 관한 사전 조사로 작년 후반기를 죄다 쏟았다. 미국 북동부 지방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에 관한 정보를 샅샅이, 빠진 곳이 있을 세라 뒤지고 메모하고 또 뒤졌다. 이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 올릴 생각이었다. 현지에서 고국의 지인에게 부치는 엽서 또는 편지 형식의 기행문을 30편 정도 쓰려했다.




비행기표를 샀다. 내가 선두로 혼자 먼저, 남편이 그 뒤에, 큰아들은 졸업식에 임박해서 뉴욕으로 가고, 또한 올 때도 3명 다 제각각이라 여러 시나리오를 두고 고심 끝에 왕복 날짜를 정해 비행기표를 사고 좌석 배정을 마쳤다. 작은 아들에게 여러 밑반찬을 갖고 가기 위해 진공포장기도 꽤 좋은 것으로 샀다.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2019년 12월 초에.




오한인지 우한인지 중국의 어떤 도시 이름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코로나가 맥주 코로나인 줄 알았다. 텔레비젼 화면에서 보여주는 우한의 병원 상황을 보자 바이러스 '코로나'가 비로소 위협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저 먼 대륙, 지평선에서 일렁이는 검은 모래바람을 보았다.




중국 우한과 근교 교포들을 고국으로 데리고 온다, 귀국한 우한 교포들이 머무를 숙소가 왜 하필 우리 도시냐며 반대 시위가 벌어진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현지로 내려간 공무원이 그 도시민들에게 봉변을 당한다, 우한 뿐 아니라 중국에서 오는 모든 사람들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진자수가 나날이 늘어간다, 중국과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수가 연일 세계 언론에서 보도된다,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국을 막았다, 반일감정이 고조된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진작에 막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유럽도 코로나에 뚫렸다, 미국이 뚫리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밀라노에선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을 안치할 관도 부족하다. COVID 19라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파도가 우리 모두를 하루도, 한시도 정신 차릴 수 없게 몰아붙였다. 코로나 시계가 자비없이 험악하게 흘러갔다.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역 기법이라는 마스크를 구할 수 없었다. 정부가 개입했다. 일주일에 한 번 약국 앞에 30분이나 1시간 동안 줄 서서 신분증을 보이고 나서 마스크 두장을 간신히 샀다. 마스크 없이는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기에 마스크를 이삼일 연속 쓰지 않는 한 집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도 극히 제한되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피하게 되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식사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1월과 3월에 각각 예정된 일본 여행, 그리고 짧은 국내 여행도 물론 취소했다.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빗장을 걸기 전의 자진 취소였고 취소 수수료를 뗀 금액을 한 달 뒤에 돌려받았다.




이제까지 줄곧 당연히 엮어왔던 '보통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데도 뉴욕의 아들 졸업식만은 정말이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태가 호전되리라는 '되지도 않은'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2020년 5월 뉴욕'을 꿈꾸어 왔다. 그 도시는 나에게 단순히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한다는 것보다 더 오래되고 깊은 의미가 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시기 뉴욕에서 5년을 살았고 다시 어디엔가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뉴욕을 선택할 것이다. 나에게 뉴욕을 그러하다. 대한항공 사이트에 들어가 뉴욕 왕복 비행기표 취소하기에 클릭을 하기까지 참으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관련된 이들의 목숨과 생계를 위협하고, 고3 수험생이 학교에 가는 것을 막고, 2천 년을 살아낸 기독교왕국을 개점휴업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을 목격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 탓이요, 멱살을 잡으며 네 탓이요라고 할 수도 없는, 세계인의 문제가 된 것을 생각하면, 언감생심 내 ‘사소한 좌절’이나 무기력 따위는 입도 뻥긋 못할 일이지만, 뉴욕행 포기는 나에게 그러했다. 취소 후 두 달 뒤 비행기표 전액을 환불받았다.




뉴욕과 한국 상황을 고려한 후 학교를 마친 작은 아들이 서울로 들어오기로 결정되었다. 국내 확진자 수만큼이나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확진자 수가 만만치 않기에, 이제는 지구민 전체가 코로나의 정체를 알기에, 아들의 귀국행 비행기표 예약도 눈치가 보였다. 국내와 해외 귀국 확진자수가 30명, 20명으로 두 자리 숫자가 되자 우리는 얼른 아들의 귀국행 비행기표를 샀다. 어서 빨리 아들의 귀국날짜가 오기를, 적어도 우리 식구끼리는 같이 모여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했고, 견디다 보니 그날이 거의 다가왔다.




갑자기 광화문 집회 사태가 벌어졌다. 두 자리 숫자였던 코로나 확진자수가 하룻밤 사이에 300명, 400명으로 3자리로 치솟았다. 8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천만 시민 멈춤 주간이 선포되었다. 나는 눈이 빨갛게 되도록 코로나에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았다. 귀국 시 인천공항에서 코로나 검사 후 집으로 오기, 그 후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 등등에 관한 기사는 거의 빠지지 않고 보았다. 귀국길 비행기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사례가 거의 화장실에서란 기사에 촉각을 세웠다. 가족 단톡 방에 들어가 작은아들에게 끊임없이 당부말을 반복했다. 마스크 쓰기와 특히 화장실에서 조심하기를 지겹도록 강조했다. 아들이 뉴욕 집에서 나설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서울 집에 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화장실도 가지 말고, 누구와도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사실 말하고 싶었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걸릴 수 있는 것이 코로나라니. 도대체 비행기 타고 집에 오는 단순한 일이 이렇게도 목숨을 걸 일이었나?









버스나 전철 타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친구와 수다 떨기, 식당에서 지인들과 비빔밥 한 그릇 먹기, 헬스클럽 트레드밀 위에서 잠깐 몸 풀기와 같은 '일상'이 목숨을 거는 일이 된 2020년 현재, 몇천 년 전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이타카의 집으로 가던 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시켜 배를 난파시키고 그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봉해 사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이렌의 노래도 듣고 싶은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어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도 죽지 않은 유일한 그리스인이 된다. 신화 속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봉한 것처럼 작은 아들이 KF94 수준의 마스크를 두 개, 세 개 겹쳐쓰기를, 아니 온 얼굴에 마스크를 다닥다닥 뒤집어쓰기를,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은 것처럼, 아들이 비행기 좌석 벨트를 묶고 난 후 한순간도 풀지 않기를, 그러기 위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화장실도 가지 않기를, 심지어 숨도 최소한도로만 쉬기를, 이런 괴상한 주문을 하게끔 만든 것이 바로 COVOD 19이다.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출처 : 구글 이미지]









오늘 새벽, 잠이 깨어 스마트폰을 보니 두 아들이 나눈 톡이 우르르 쏟아졌다. 작은 아들은 뉴욕에서 귀국 비행기는 ‘무사히’ 올랐다. 지금 태평양 상공 어디쯤에 있다.




몇 시간 후 오늘 저녁, 2020년 9월 3일 17:20분, 아들이 인천 공항에 도착한다. 코로나 검사에서 어떤 결과를 받을지, 검사 결과가 오늘 나오기나 할지, 아니면 내 지인의 딸처럼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용인의 어느 숙소에서 짐도 풀지 못한 체 하룻밤을 떨게 될지. 나는 분과 초를 헤아리고 있다. 입안이 자꾸 마른다. 물을 또 마신다.







아들의 방을 청소한 후 책상 위에 KF 마스크 14개를 올려놓았다. 오늘 집에 무사히 도착하고, 그리고 14일 동안 무사히 자가격리기간이 끝나는 것만이 지금 우리의 유일한 바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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