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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디아 Sep 05. 2020

코로나 - 36.5도



5시 20분, 아들이 탄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6시 18분, 032로 시작되는 번호로 나에게 전화가 왔다.

숨은 조금만 쉬고 줄곧 스마트폰만 노려있었던 나는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a 000 씨의 부모님 되시나요? 000 씨의 신원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b 네, 네, 제가 엄마예요.

c 네 그럼

(찰칵)



집에 온 아들의 말로는 입국 시 첫 번째 단계가 '자가 격리자 안전 보호 앱' 설치이고, 두 번째 단계인 신원확인 및 보증단계에서 공항직원이 엄마인 나에게 전화한 것이라고 했다.



6시 30분, 비로소 아들에게서 첫 전화가 왔다, 이제 짐을 찾는다고, 아빠 엄마가 기다리실 것 같아 일단 생존 신고한다고.



6시 50분, 아들에게서 두 번째로 전화가 왔다, 체온이 36.5도 이하면 무증상자로 분류된다고, 귀국 후 24시간 이내에 거주지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내일 다시 나오느니 먼저 보건소에 들러 검사받고 집으로 가겠다고, 이제 택시를 탄다고.





8시 30분, 아들이 집에 왔다. 찐한 포옹이나 간단한 악수는 없었다. 쏜살같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아들이 방문을 조금 열고, 우리 부부는 그 방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거실 구석에 서서 환영인사와 귀국 소감을 주고 받는 귀괴한 2년 만의 부모 자식 만남이 이루어졌다. 마스크 너머로 발음이 명료치 않으니 치열한 눈빛과 펄럭이는 손과 발짓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굵지만 짧아야 했다. 수화대화에서는 얼굴 표정으로 전달하는 부분이 상당하기에 노란 옷을 입은 정부 관계자가 코로나 브리핑할 때 이를 수화로 전달하는 분들이 마스크를 쓸 수 없다는 사정을 나는 실감했다.  





아들이 성북구 보건소에서 받아온 마닐라 쇼핑 백안에는 마스크 5장, 자그만 손 소독제 하나, 뿌리는 소독제 한병, 그리고 확인, 통지, 주의, 경고를 알리는 여러 장의 종이들이 있었다. 검역 확인증, 격리 통지서, 대한민국 입구자를 위한 격리 주의사항, 자가격리 대상자 생활수칙, 자가격리 대상자 가족과 동거인 생활수칙, 자가격리 대상자 생활폐기물 관리와 처리 매뉴얼, 등등.










주황색 비닐봉지에 선명히 인쇄된 "이 폐기물은 감염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주의하여 취급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구를 보자 정부가 모든 해외 귀국자와 가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요약되었다. 당신은 본인뿐 아니라 가까이하는 사람에게도 '위험인물'이며, 당신의 손과 발이 닿거나, 숨 쉬는 공간도 물론  '위험'하다 하는 질병관리 본부의 경고를 나는 알아들었다.





아들 혼자 쓸 밥공기, 국그릇, 수저, 반찬 그릇, 유리컵, 머그컵, 수건 등을 준비는 했었지만, 그렇게 가족 내에서도 경계되고 백안시되는 것이 어색하고 황당하고 미안하고 슬프지만, '내 아들이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잖아, 그저 비행기를 타고 집에 왔을 뿐이잖아!"라고 도리도리 고갯짓도 했지만, 그 주황색 폐기물 봉투를 보고서는, 조금만 참자, 그래 2주 만이야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마스크를 쓰고 잠자리에 든 나는 쉬이 잠들 수 없었고 마스크를 쉽게 벗지도 못했다.





전전반측의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랜만에 햇살이 장하게 반짝였다. 눈을 뜨자마자 잠결에 벗어던진 마스크를 썼다. 아들이 걸친 옷과 양말과 수건을 장갑 낀 손으로 조심스레 세탁기로 운반했다. 보통 때 보다 세제를 듬뿍 더 많이 넣고 헹굼 과정도 제일 센 것으로 세팅하여 세탁기를 돌렸다. 마스크를 쓴 아들은 방에서 꼼짝 없이, 마스크를 쓴 나는 마루와 부엌을 오가며, 말로 몇 마디, 주로 톡으로 대화를 하며 오전을 보냈다.





어제 공항으로 동생 환영을 못 나가 애타고, 막내가 혼자 집으로 오는 과정이 험난(?)했기에 애달픈 큰아들에게서 수시로 톡이 왔다. 남다른 형제애의 큰아들은 마치 내가 돌보미요 자신이 부모인 것처럼 그저 모든 것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분명 동생 하고도 더 많은 톡을 하고 있으련만 나에게도 톡을 보내어 크로스체크를 하는 그런 모양새였다. 심지어 내가 자기 동생에게 먹을 것으로 무엇을 주는지도 궁금한 모양새였다. 내가 참다못해 빽!하고 경고음을 날렸더니 그다음부턴 조금은 잠잠해졌다.





9월 4일 점심










아들은 자기 방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창문을 열고 책상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밥을 먹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니, 이 모든 것이 낯설고 황당하여 좀처럼 소화하기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었더니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갑갑하다. 나는 주황색 폐기물 봉투의 문구를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 지우지 않겠다. 이렇게 14일만 견디어 끝날 상황이라니 기꺼이. 아들의 몸과 정신에 딱 달라붙은 정부의'추적앱'를 떼어 벗어 던지는 그 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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