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받는 날
어렸을 때 들었던 어른들의 대화가 아직도 생각난다.
“마흔 넘어가니까 몸에 왜 그리 혹이 많은지.”
용종이 많다는 뜻이다. 웬 혹? 싶지만 마흔이 넘은 지금, 그리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오늘 아침이 되니 이야기는 달라졌다. 나 역시 내 몸에 있을지도 모를 혹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검진 중에 스윽 떼버릴 수 있는 가벼운 용종이면 괜찮은데, 조직검사까지 해야 하고 결과도 신중하게 들어야 하는, 그런 용종이면 어떡하지? 왜 어르신들은 아파도 병원에 빨리 가지 않는지 이유를 알 것 같은 아침이었다.
그래도 2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검진이기에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떼내어 억지로 병원에 갔다. 올해부터는 위암 검사며 유방 검사까지 주렁주렁 이었다. 검사할 게 많다는 건 늙어간다는 뜻인가 보다.
수많은 검사지에 체크를 해내고 검진용 옷으로 갈아입었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위내시경을 했는데 위암이라도 발견된다면? 유방암은? 내가 뭘 막 건강하게 먹지는 않은 것 같은데? 생각은 끝도 없이 달려 나가 내가 가입한 보험이 무엇이었나, 가만가만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큰 병에 걸리면 빨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까? 어이없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살아서 병을 치료하느라 끊임없이 돈을 쓰며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그냥 죽어버려서 치료비며 병원비를 일체 대지 않지만 좀 슬픈 것(아니, 많이 슬플까) 둘 중 무엇이 더 나은 길일까? 생각하는 나는 역시 T인가...
생각의 경중을 따지다 보니 어느덧 입에는 수면내시경 호스가 물려지고 숫자를 거꾸로 세라는데 나는 십, 구, 팔, 칠..... 도 아니고 십, ㄱ...!!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잠깐 눈 감았다 뜬 것 같은데 검사는 다 끝났고 그새 30분이 지나 있었다. 검사 결과, 눈에 보이는 용종도, 조직검사를 할 일도, 눈에 띄는 큰 질환도 없었고 위염이 살짝 있었을 뿐이다.(아마 커피의 영향인 듯하다) ‘돈을 쓰지 않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구나’ 다분히 T스러운 생각을 하며 병원 문을 나섰다.
입추가 지났는데 여름볕은 따갑고 공기는 녹아내릴 듯했다. 위염은 차차 치료하면 될 일이고 일단 커피부터 한 잔 마시자! 오늘 하루가 지나면 죽는 날에 하루 더 가까워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남은 날들 커피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라면 조금 더 건강해지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죽을 거지만. 어차피 죽어가고 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