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군도 아니고
후회되는 것이 많다. 한두 개가 아니라 아주아주 많이. 내가 행했던 어리석은 행동부터 무식하게 몸으로 부딪히려 한 많은 일들이 그렇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보기에만 그럴듯한 업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 안에서 나는 왜 이리 무지했으며 개성마저 없었을까. 편안하지 않은 생활들이었다. 분명 꿀을 빨 수 있다고 해서, 일단 임용되기만 하면 팔자는 어느 정도 편다고 해서 가볍게 꿈을 접고 들어선 이 길이 생각보다 고되었다. 원래 남의 돈 먹는 일은 쉬운 게 없다. 거기에 사회가 부여한 사명감까지 더해지면 어깨는 무릎까지 내려간다. 내가 이렇게 사명감에 고취되어 있는 사람인가, 으쓱거리다가도 또 하루는 이런 쓰레기 같은 내가 교사라니, 명치까지 치솟는 자괴감에 속이 쓰렸다.
돌아보니 잘한 것 하나 없는 16년 6개월이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만 든다. 당시엔 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혼냈던 아이들은 혼내서 송구스럽고 칭찬했던 아이들은 더 아껴주지 못해 괴롭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와버렸다. 생각 많은 사람이 진취력을 가지면 이렇게 된다. 머릿속 이곳저곳을 툭툭 건드리는 생각들을 모조리 실현해 버린다. 그런 사람에게 남는 건 결국 후회뿐이다. 기억 속에 남는 교사가 되고 싶어 한 행동들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나를 거쳐 간 아이들이 남김없이 나를 잊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유년 시절에 점조차 찍히지 않기를, 스쳐가는 바람보다 더욱 가벼운 무언가로 날아가 버리기를.
게다가 안 되는 일 되게 만들려 무모하게 했던 행동들도 후회된다. 가령 실험에 쓰일 지렁이를 학교에서 구해주지 못한다면 없는 대로 이론 수업을 하면 될걸 굳이 지나친 시간을 들여 지렁이를 채집했다. 요구르트 병 90개를 칼로 잘랐다.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을 쪼개고 쪼개어 일정 부분은 수업 재료를 구입하는 데 투자했다. 조금 더 돈을 들여 각종 도구를 구비하면 양질의 수업이 될 줄로만 알던 시기였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도움 하나 요청하지 않고 혼자서 온갖 짐들을 날랐다. 여교사라는 이름 뒤에 숨고 싶지 않았다. 혼자 다 해내려 내 시간, 내 돈, 내 체력이 화수분인 줄 알고 마구 가져다가 썼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후회가 많은 교사가 되었다.
그중 가장 후회되는 것을 꼽아보라 한다면 ‘지나치게 비장하게’ 이 직업에 임한 것. 그것이 가장 아쉽고 미련하고 안타까우며 우습다.
종교는 없지만 신을 믿는다. 학교 일로 너무나 힘이 들 때 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린 기억이 있다.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해 교실 앞문의 자물쇠를 여는 순간, 자물쇠를 손에 움켜쥐고 ‘신이시여, 부디 오늘 하루 제가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주세요. 제발요.’하고 소리 내어 서럽게도 울던 날이 있다. 그만큼 지치고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분명히 기억한다. 마음 한 구석에 둥둥 떠다니던 커다랗게 과잉된 자의식을. 문 앞에서 눈물을 또옥 똑 흘리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봐! 가련한 나의 모습을!
힘들어서 신에게 기도하며 지혜를 간구하는 이 참된 여교사의 모습을 보라고!
이 얼마나 통탄스러우며 아름답고 한없이 슬픔에 잠긴 모습인가!
아이들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하면서도 아이들을 사랑할 힘을 달라고 신께 애원하는 나의 모습은
진정 참 교사이며 아름다운 교육공무원의 모습이야!
……이건 무슨 신박한 또라이인가. 물론 그 당시엔 알아채지 못했고 수년이 지나서야 발견해 내었다. 분명 나는 힘들었다. 매일 조막 만한 아이들과 기싸움을 벌였고 그것은 이겨도 내게 자괴감만 안겨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할 힘을 달라’는 기도는 순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신도 속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기운도 없었다. 차라리 ‘저를 돌보고 일으킬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를 했어야 했다. 기울어져 가는 자신을 알아채지도 못했으면서 좋은 교사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아이들을 사랑하게 해 달라니, 지금 생각해도 오만하고 좀 괘씸하다. 다른 사람도 모자라 자신까지 속이려 들다니. 적어도 나에게만은 솔직해도 되잖아. 나는 부족해. 부족하지만 나니까 괜찮아. 부족한 대로 하는 거야. 그런데 스스로 ‘참사랑을 추구하는 완벽한 교사’인 척 속이려 들었다. 생각할수록 심통이 난다. 그렇게까지 비장하게 직업전선에 뛰어들 필요는 없어. 그저 돈벌이야. 그리고 돈벌이는 아주 숭고해. 교직의 마지막을 앞둔 지금의 기도 내용은 좀 달라졌다.
신이시여,
좋은 일에 맘껏 기뻐하고 감동할 수 있는 힘을
안 좋은 일에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그리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건 내 상태에서 너무나 결연하며 큰 욕심임을 알았다. 무리한 일을 내게 바랐다. 그저 타인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힘,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생각한다. 나의 기준을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집을 내려놓고 ‘그럴 수 있구나’,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