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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 Aug 24. 2023

여러분은 무엇에 중독되어 있습니까?

『도파민네이션』을 읽고 든 생각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1)          


 현대를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생각일 것이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 연애와 결혼, 출산이 사치가 된 세상, 내 집 마련의 어려움 등 많은 이유들이 살기 힘든 원인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작 아프면 병원에 가 당일에도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주거 환경에서 굶지 않으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라고 말하곤 한다.     


 과거와 비교해 ‘불행’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과거보다 살만해진 세상에서 왜 우리는 이렇게 불행한 삶을 목놓아 이야기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된 것일까?     

 요즘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한다면, 단연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불행에서 벗어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사가 매우 높아졌다. 사실 그 자체가 우리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 더 유행했던 키워드는 ‘성공’이었다.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 애플 성공 신화 등등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스토리와 그를 위해서 치열한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쏠렸었다. 1분 1초를 아껴서 어떻게 자기 계발을 할 것인가, 전문 지식을 쌓기 위한 만 시간의 법칙 등 그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도가 높았다.    

  


 그래서일까. 그런 분위기는 마치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며 여유 있게 사는 삶을 한심하다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치열함 속에서 극적인 성공을 맛볼 순 없는 법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힐링’, ‘소확행’ 등 개인의 작은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유행이 되었다. 다들 치열한 경쟁과 채찍질에 지친 것일까? 마치 성공만 추구하던 것에 반향이라도 일은 마냥,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된 요즈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중에 몇이나 될까? ‘소확행’이라며 퇴근 후 맥주 한 잔, 여행, 취미활동 등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주는 것들에 대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이 자신만의 ‘행복한 삶’인지 정의 내리기는 어려워한다. 늘 추구하기만 할 뿐.     


 어쩌면 성공이 유행이던 때와 맥락은 같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해야 인생이라고 여겼지만, 자신의 성공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는 못했고, 또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행복은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저 타인이 추구하는 것들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함께 추구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싶다.     


 딱 앞서 말한 유행의 흐름이 뒤바뀌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꽤나 큰 실패를 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버린 기분에 절망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선택한 것은 ‘힐링’이었다. 누구나가 원하고 부러워하는 ‘여행’을 통한 힐링 말이다. 나는 덜컥 비행기 티켓을 끊고 두 달을 혼자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나는 매일같이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만났다. 나는 그 황금 같은 시간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내 인생에서 다신 없을 기회라며 나에게 끊임없이 얘기했지만, 나는 그곳에서조차 불행했다.      


 내가 정한 행복의 가치가 아닌 그저 남들의 기준을 따라 했을 때 누구나가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내가 정한 가치가 아니기에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말을 들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지만, 뒤돌아서면 인스타를 키고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구경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삶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전시하는 분위기는, 그저 그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어떤 기준을 만든다. ‘나도 이런 데 한 번은 가야 하나?’, ‘결혼식은 보통 이 정도에서 하나?’, ‘나도 이런 거 하나쯤 있어야 하나?’,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사실 이게 그냥 평범한 거 아닐까?’     


 그 안에서 정말 행복할 수 있다면 그 ‘평범’ 안에 있어도 좋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진짜 나 자신’을 찾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보다 주체적인 삶에 대해서 말이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건 ‘직면하기’에서 시작한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어렵고도 단순하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대인의 삶을 큰 틀에서 보자면 ‘분주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2) 현대의 삶은 참으로 분주하다. 그러나 꼭 ‘바쁘다’는 뜻의 분주함만은 아니다. 잠시 쉬는 순간에도, 화장실에서도, 잠들기 전 침대에서도, 걷는 순간조차도 현대인들은 참 분주하게 순간순간을 채운다. 보통은 매스미디어가 그 순간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인은 사소한 불편조차 견딜 수 없게 되었다우리는 순간의 고통

현재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그저 놀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3)     


  단순해 보이는 직면하기를 하기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바로 한순간의 지루함도 견디지 못하는 우리 자신일 것이다. 조금의 틈만 생기면 폰 화면을 붙잡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상하다. 분명 쉬기 위해 핸드폰을 보던 것인데, 보고 있는 순간이 노동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의식적으로 폰을 내려놓고 외면할라치면, 굉장히 신경 쓰며 폰을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럴 때 문득 ‘쉼’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내가 이 물건을 이용하는 것인지, 매여있는 존재인지 헷갈리곤 한다. 그렇기에 지루함을 견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지루함이란 지루하기만 한 게 아니에요끔찍할 수도 있죠

뭔가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더 큰 문제 앞에 우리를 떠밀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4)     


 지루함을 견디고 공백 속에 나 자신을 밀어 넣어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주하기 시작할 수 있다. 왜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할까? 굳이? 글의 첫 시작에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5)     


 피한다고 해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내 삶 속에 안고 있는 나의 문제들도 그렇고, 내 안의 공허함, 질문들 또한 그렇다.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로 나의 문제, 환경, 내 진짜 욕망과 목소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주체적인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사람들은 ‘우선 고통이 없는 삶은 행복할 것이다’라고 가정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피하고자 고통에서 도망쳐다닌다. 삶에서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맞이할 때마다 자신의 삶을 불행과 연결 짓는다. 그런데 정말 고통이 불행과 같은 의미일까?     



 고통은 기본적으로 쾌락을 얻기 위한 대가이다. 재밌는 사실은 신체적으로 정말 그렇다.     


고통은 몸 자체의 조절 항상성 매커니즘을 건드려 쾌락을 이끌어낸다

고통에 간헐적으로 노출되면 본연의 쾌락 설정값은 쾌락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고통에 덜 취약해지고

쾌락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6)     


 저자의 접근이 재밌었던 부분 중 하나인데, 저자는 신체적으로도 정말 고통을 대가로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삶에 적용되는 법칙도 사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이렇게 접근했던 것 같다. 내 문제를 직접 마주하고, 그것을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용기에서부터 모든 변화는 시작된다.      


 사실 말이 쉽지,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고, 휴대폰 속 세상에 폭 빠져 사는 것을 모두 끊어내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내’가 먼저 있고, 주체적으로 산 결과 안에서 세상의 흐름과 어우러져 살 때,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사실은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은 것 아니겠는가? ‘나’를 만족시키는 삶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도록 충분히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조금이라도 만족에 근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사례를 기반으로 한다. 미국은 ‘진짜 중독’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약에 중독된 많은 사람들의 사례가 소개된다. 우리나라도 마약이 사회문제로 올라섰지만, 기본적으로 이 글에서 언급하고 싶은 ‘중독’은 조금 비유적인 의미의 중독이다.     

 


1)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흐름출판, 2022, 64쪽.

2)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김영사, 2022, 240쪽.

3)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흐름출판, 2022, 56쪽.

4)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흐름출판, 2022, 58쪽.

5)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흐름출판, 2022, 64쪽.

6)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흐름출판, 2022,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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