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 왜 삼국지에 대해 쓰는가?

삼국지, 황건적, 동한멸망, 유비, 조조, 제갈량, 사마의

by 브레인튜너

8재미있어서 쓴다.




난세에는 항상 영웅이 나오기 마련이다. 태평 시절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료하다. 어지러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때에 등장하는 영웅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영웅들이 천하를 통일한다고 해서 곧바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실제로 역사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영웅에 더욱 열광한다. 삼국지 같은 소설은 어떻게 되든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막연한 발로다.


영웅은 때와 장소, 상황이 만들어낸다. 촉나라 출신 진수가 진나라(서진)의 관리가 되어 정사로 기록한 역사서가 삼국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소설로 쓴 '삼국지연의'로 말 그대로 삼국 이야기인 대하소설이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삼국지연의는 대개 삼국지로 통한다. 원나라 시절 나관중이 짓고, 청나라 시절 모종강이 보강했다고 한다. 한•중•일 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 소설이다. 이와 관련된 콘텐츠는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다. 많다고 하면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마치 평행우주처럼 각 사람이 상상하는 만큼 존재한다.




삼국지를 알 게 된 건 국민학교 5학년인가 6학년 시절 동그란 딱지를 가지고 놀 때였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여포, 동탁, 태사자 등 캐릭터(아마 일본 만화에서 차용한 것으로 추정)를 눈에 익혔다. 그 후 중학생 시절 5권짜리 만화책을 보면서 삼국지에 눈을 떴다. 이후 이문열 평설 삼국지가 나와서 신입사원 시절 1호선 전철로 출퇴근하면서 10권을 2독 했다. 삼국지 이야기가 체계적으로 정리되던 시절이다. 다만 그때 읽으면서 작가가 쓸데없이 말이 많다(?)고 느꼈다. 지금까지 다시 읽어보지는 않았다.


한동안 삼국지를 잊고 지냈는데, 20여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고우영 만화 삼국지가 부활했다. 곧바로 구입하여 몇 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다시 삼국지에 관한 관심이 살아났다. 때마침 중국에서 제작된 삼국연의 드라마(84부작)가 DVD로 나와 구매해서 열심히 들여다봤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영상으로 나왔으니 재미가 있었다. 기억에서 끊어진 부분을 연결시켜주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석영 작가가 원본에 충실하게 번역했다고 하여 10권을 새롭게 냈다. 세트를 구입해서 읽었다. 담백했다. 번역 작가의 생각을 넣지 않고 있는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기만 했으니 술술 잘 읽혔다. 지금까지 세 번인가, 네 번 정도 읽었다. 최근 1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황석영 삼국지가 나오고 나서 장정일이 새로운 시각에서 번역했다는 삼국지를 냈다.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애정이 거의 가지 않는다. 책을 내면서 마케팅 카피로 쓴 내용이 정말 그러한지 잘 알 수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은 책꽂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일본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10권짜리를 구입했다. 읽다 보니 어릴 적 만화로 봤던 내용, EBS에서 수입한 일본 만화와 내용이 비슷했다. 일본판은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래도 무난하다. 소설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 그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새롭게 창조되기도 하고, 기존의 것을 재해석하기도 한다. 많고 많은 콘텐츠 중에 삼국지라는 대서사를 선택한 이유는 보편성 때문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각 에피소드에서 전달하는 핵심은 항상 시의성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삼국지와 비교해 보면 도움이 될 만한 게 많다. 즉 지혜를 공급하는 우물과 같다.


주인공들은 소위 영웅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시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인 사람들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소위 민초들이다. 백성들이 사회의 기층 세력을 구축했다. 영웅과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고 현실 정사에 개입한 엘리트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관조할 수 있다.


삼국지에는 국가의 경략부터 기업의 경영, 조직 관리, 자기 계발, 즉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에 항상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지식 재생산의 목적은 단순하다. 역사와 사회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에 시의적절하게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게 지식인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태양계 밖으로 우주선을 보내고, 138억 광년 떨어진 태초의 우주를 발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 기술은 첨단을 넘어서 생명 창조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매일 새로운 사실과 지식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 한 가지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지만, 지식을 소비하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루틴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식과 신기술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 권력과 돈을 향한 탐욕과 집념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고전을 연구한다. 과거의 프리즘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지식을 재생산하는 일이다.


재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지식으로 연못 한가운데서 동심원을 만들어내는 고요한 동기가 되고자 한다.


황석영 삼국지/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고정욱 삼국지/고우영 삼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