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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250930)

마멀레이드 아버지 추억 군인 인생 전쟁 생존 슬픔

by 브레인튜너

아버지는 인천상륙작전 참전 용사였다.




어렸을 때 사진 앨범에는 선친의 해군 복무 당시 사진이 여기저기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사진을 보면서 당시의 시대상과 연관하여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버지는 1932년생이었는데 서기 연호보다는 쇼와(昭和) 7년이라는 일본식 연호가 의식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세대였다. 소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말 사용을 금지당하면서 일본어를 모국어서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1945년 나라를 되찾은 다음 1949년 전주신흥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대한민국 해군에 입대다.


조부는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했다. 생전에 내게 들려준 얘기로는 어느 날 선친이 집에 들러 해군에 입대한다고 얘기하고 떠났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집을 나서는 아들의 등을 보면서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대학에 보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교사의 박봉으로는 대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선택지는 뻔한 집안 살림에 입이라도 하나 덜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을 떠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해군 입대가 아니었을까 여겨졌다. 이후에 두 번 정도 미국 유학에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사실 경제적인 문제로 번번이 길이 막혔다고 들었다.


해군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해군은 전투함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어서, 해군 병력이 미군 함정에 배속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미국 구축함 DD-728 Mansfield 함에 승선했다고 했다. 전쟁 중에 포탄에 의한 상흔이 아버지의 허벅지에 크게 남아있었다. 전쟁이 끝난 1953년에는 독도에 상륙하여 대한민국 표식비를 세우기도 했다. 미국 함정 인수단에 소속되어 1956년에는 미국에 파견을 다녀오기도 했다. 수병과 부사관을 거쳐 1960년에 OCS(해군학사) 장교로 임관했다.


해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전역하면서 곧바로 월남전에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선사에서 화물선 선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은 1년에 길어야 한 달 정도로.... 아버지와 함께 한집에서 살았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에서 항해사를 양성하는 교관으로 활동하던 기간 이외에는 매년 해외에 있었다. 병으로 1982년 겨울에 귀국하기 전까지는....



초중고 시절은 아버지가 항상 외국에 있어서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쓰러지고 들어온 후 병원에 입원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어서 병원에 함께 있었다. 그때만큼 부자간에 이야기를 많이 한 적은 없었다. 그전에는 편지로만 주고받았을 뿐, 아버지가 자기의 인생, 철학, 계획, 소회 등과 관련하여 아들과 처음으로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나누었다.


3개월 만에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병이 나아지지 않았다. 양방과 한방을 넘나들며 이러저러한 처방을 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쓰러진 지 9년 만에 귀천歸天했다. 나의 하늘은 그렇게 무너졌다, 천붕天崩.... 그것도 어머니도 병으로 돌아간 지 2달 만에....


두 분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노예로 태어나, 청소년기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흑과 다를 바 없었던 혼란한 시기를 버텨냈다. 하지만 전쟁의 대재앙에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본능에 따라 겨우 살아남은 자가 되었다. 인생의 황금기가 운명의 혹독한 시련으로 점철되어 버렸다.



대학 1년이던 1985년, 라디오에서 들었는지 아니면 커피숍에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멀레이드Marmalade가 부른 'Reflections of My Life'의 멜로디가 귀를 때렸다. 한 번에 곡조가 기억되리만큼 강렬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어쿠스틱 기타의 G 코드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간주는 일렉과 베이스 기타로 사람의 마음을 추억 속에서 헤매게 만들었다.


한 10여 년 전 우연히 미국의 한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보면서 아버지를 추모했다. 내용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베테랑의 사진을 모아 'Reflections of My Life'를 BGM으로 입혀 그들을 기리는 영상이었다. 지금, 이 글을 정리하면서 보고 있는데,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버지 생각도 깊어진다. 일제와 전쟁의 가혹했던 시기에 살아남은 6남매의 장남, 한 여인의 남편, 세 남매의 아버지, 인생의 영원한 멘토....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슴이 미어진다.


Daddy, you are not forgotten, SIR!

With love, honor, and everlasting respect

from your beloved son, Sean


The changing of sunlight to moonlight

Reflections of my life
Oh, how they fill my eyes

햇빛이 달빛으로 바뀌면서

지난 인생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네


The greetings of people in trouble
Reflections of my life
Oh, how they fill my eyes

온갖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안부에서

내가 겪은 인생의 단편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


Oh, my sorrows
Sad tomorrows
Take me back to my own home

오, 나의 불운들

슬픈 미래여

나를 고향집에 데려가다오


Oh, my crying (oh, my crying)
Feel I'm dying, dying
Take me back to my own home

오, 나의 흐느낌이

마치 죽는 것 같아

고향집에 데려다주려나


I'm changing, arranging
I'm changing
I'm changing everything
Everything around me

마음이 바뀌고 있어, 그렇게 하는 중이야

다 바뀌고 있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것


The world is
A bad place
A bad place
A terrible place to live
Oh, but I don't want to die

세상은 좋은 곳이 아니야

정말 나쁜 곳이야

끔찍한 세상이지

오, 그래도 죽고 싶은 생각은 없어


Oh, my sorrows
Sad tomorrows
Take me back to my own home


Oh, my crying (oh, my crying)
Feel I'm dying, dying
Take me back to my own home


Oh, my sorrows
Sad tomorrows
Take me back to my own home

(안선형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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