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글 쓰기를 좋아했다. 점심시간이냐 체육시간에 뛰어노는 게 학교의 전부인 초등학생 시절에도 매일 교실이거나 그늘에 있었다. 지금처럼 운동을 잘하지도 못했고, 못하는 것에 흥미를 붙일 정도로 끈기 있는 학생이 아니었다. 운동 신경이, 신체 조건이 필요 없는 책 읽기가 편했다. 남들이 운동할 시간에 종일 책만 읽었다. 보기만 하는 건 재미가 없어서 글을 차츰 쓰기 시작했다. 독후감 쓰는 건 정말 싫어했지만, 감정을 쓰는 건 훨씬 나았다. 일기보다는 그날의, 순간의 감정을 주로. 행복했다, 즐거웠다, 슬펐다 따위의 감정들. 옛날에 쓴 글을 보면 정말 단편적이다. 상황 속 나와 우리의 감정 그래서 일어난 화학반응이 전부다.
브런치를 알게 된 건 중학생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의 글을 누군가가 읽을 수 있는 게 두근거렸다. 독자가 있음을 상정하지 않은 글들이기에, 지극히 개인적이었고 내 '감정'들이 사회에 수용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브런치의 신청 제도가 그를 막았다. 솔직히 두려움이 컸다. 만약 신청이 반려라도 된다면, 그날의 나 또한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또 감정이 주인 글의 특성상 꾸준히 쓰는 나의 모습도, 확실한 독자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피했다. 브런치는 글 쓰는 이들의 기회를 막는 플랫폼이라고, 저희들끼리 철옹성을 쌓고 있다고 둘러댔다. 여느 때처럼 "저 포도는 신포도일 거야"라며 끝내 작가 신청은 하지 않았다. 다만 계정은 남겨 두었다.
컴퓨터 앞에서는 파일에, 밖에서는 공책에 글을 썼다. 이리저리 글들을 흩뿌리며 쓰다 보니 나중에 읽고자 해도 다시 찾기가 힘들었다. 가끔 아카이빙 해야겠다고 다짐 날에는 브런치에 옮겨 적었다. 그런 날들이 쌓이다 보니 게시가 아닌 저장으로만 남겨지는 글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블로그를 시작했다. 군대 가기 전에 친구가 만났는데, 친구가 자기가 블로그 한다는 얘기를 했다. 거기서 내가 옛날에 보낸 편지 얘기를 썼다고 했다. 그때는 블로그를 시작할 마음도 없었고, 오랜만에 들은 블로그라는 단어가 아날로그의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군대 6월쯤, 이리저리 심란한 기간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었다. 블로그가 떠올랐고 글을 적었다.
주로 하는 생각들을 적었다. 몇 날 며칠을 두둥실 떠올린 것들도, 순간의 마음들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런 글들로 구성된 사람이기에 독자를 두지 않았다. 타인도 아닌 친구들이 글 속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다른 이야기니까. 사실 블로그 시작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나 블로그 시작해. 주로 개인적인 얘기를 쓰는데, 네가 읽어줬으며 좋겠어."라는 말을 할 용기도 없었다. 모든 글들은 서로 이웃도 없는데 서로 이웃 공개로 올라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누군가 읽어주길 바랐나 보다. 비공개가 아닌 서로 이웃 공개였으니 말이다. 블로그에 브런치에 올렸던 글들도 하나씩 옮겼다. 브런치는 그날 진실로 끝났다.
첫 이웃은 좀 뜬금없었다. 휴가를 나가서 친구랑 만났는데, 친구가 인스타 일기 계정을 만들었다고 했다. 자주 좋아요나 댓글 써달라고부탁했다. 그때 말을 꺼냈다. 나도 블로그 한다고, 근데 좀 개인적인 내용이라고. 그렇게 서로 이웃이 됐다. 사실 그 자리에서 서로 이웃을 보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휴가 복귀하고 했던 것 같다. 후에 하나둘 씩 사람이 늘고, 어느새 9명이 됐다. 사실 걔네들이 읽는지 안 읽는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누군가가 읽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이 달랐다. 가끔씩 글을 쓰면서 (주로 힘들 때) 살다 보니 어느새 전역했다. 무료하게 살다 보니 복학도 했다. 대학교 친구는 없었지만.
그래 친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기왕 복학도 한겸, 학교에 정을 붙이고 싶은데, 연관된 것이 하나도 없으니 학교에서조차 타인이었다. 혼자가 편한 건 남들과 같이 있는 게 일상일 때의 일이지 매일이 혼자면 사람이 그리워진다. 친구들이 동아리라도 들어가라길래. 동아리를 찾아봤다. 가고 싶은 동아리 하나는 1학기에만 신청을 받았고, 다른 하나는 내가 시간이 안 됐다. 와중에 글쓰기 소모임이 하나 보였다. '나'에 관해 글을 쓰는 소모임이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안 그래도 이런저런 현실에 고민이 많은 상황이기에 신청했다. 20학번이지만, 면접날 처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며칠 뒤 붙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 그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OT를 불참하고, PPT로 소모임 목표(?)를 읽다가 오랜만에 '브런치'를 보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니 한때 내가 바랐던 것이구나하고 애틋해졌다. 첫 모임하고 며칠 뒤 소모임 계정이 브런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쓰는 글들이 브런치에 합격할 수 있는 글들이구나 싶었다. 그때도 신청할 마음은 없었다. 전역하기 위해 군대에 복귀하고, 소모임 2번째 주제인 '나와 타인'을 쓰기 위해 연등하던 밤에 옛날에 쓴 글을 읽고 싶어져 브런치에 로그인했다.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이었기에 옛날에 쓴 글들이 남아 있었다. 글은 안 써지고, 한 두 편씩 읽다 보니 신청할 용기가 생겼다. 친구들에게, 또 며칠 전까지 모르던 사람들이었던 모임 사람들에게도 내 글을 보여줬으니까 어쩌면 브런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써야 하는 글은 미룬 채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한두 편의 글을 골랐다. 마음에 들게 쓴 글이 아닌, 지금도 가끔 하는 생각들을 적은 글을 골랐다.
며칠 뒤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기쁘기보다는 조금 아쉬웠다. 이렇게 쉽게 붙을 수 있는 건데, 왜 그때의 난 신포도라 단정했는지. 만약 그때 붙었더라면, 나라는 사람에 조금 더 애정했을텐데 싶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막상 붙으니 좋다.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도, 꾸준히 연재할 수 있는 글들이 아니지만, 쓸 기회가 생긴 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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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면접 이야기
후에 들은 얘기지만, 면접으로 누군가를 떨어트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시간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거라고. 면접에서 했던 얘기를 옮겨 적어볼까 한다.
사람들은 흘러가는 대로 산다고 말한다.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나는 사람은 흘러가는 주체이기보다는, 물 위의 흘려가지는 배와 같다고 생각한다. 물은 강 상류에서 시작해, 하류로 또 바다로 나간다. 20살 이전의 삶은 바다 이전의 배와 같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 시냇물이었던 물줄기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강이 자꾸만 커져만 간다. 내가 속한 사회가 커져만 간다. 중력 때문에 내려가는 물들에, 물 때문에 나는 바다로 향한다. 내 자의와는 상관없이.
결국 바다로 왔다. 성인이 되어 버렸다. 실제로 만난 바다는 강과 달랐다. 파도가 계속 나를 밀어낸다. 정체하게 만든다. 사실 알고 있다. 어느 날 좋은 날에. 바람이 불 때 운 좋게 바다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한 가지 더 알고 있다. 그렇게 나가본들, 다시 바닷가로 향하는 파도에 되돌아오거나 심한 경우에는 저 높은 파도에 전복될 거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돛대가 필요하다. 날 안 좋은 날이라도 맟설 수 있도록, 나에게 불친절한 하루라도 버틸 수 있도록.
그래서 나를 찾는 모임을 신청했다. 바다로 향하기 전, 아주 단단한 돛대를 만들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