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쑥갓 Oct 10. 2022

자주 쓰는 표현 (22.02.20, 22.02.24)

상투적임을 애찬하며

 을 쓰다 보면 유독 자주 차이는 문장이 있다. 남용하는 기분이 들어 타자로 옮기는 것을 자제하곤 해서인지, 막상 블로그에 검색하니 딱 한 번 사용했었다. 잘 참았다는 뜻일까. 그만큼 마음을 숨겼다는 뜻일까. 재단할 수 없지만 가슴 한편에 늘 품고 있다. 망설인 나를 위해 자그마한 변론을 하려 한다. 상투적임에 대한 변론, 우리의 감정에 대한 변론.


 투적이다 라는 단어는 어떤 글에 대한 비판을 위해 자주 쓰이곤 하지만, 그만큼 표현이 우리의 마음을 잘 대변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우리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다시 말해 내 머릿속 뉴런 사이의 전기들이 말의 진동이 되어, 또다시 너의 뉴런 사이의 전기가 될 때, 나에게 일어났던 화학작용이 너에게도 일어나길 바라며 단어를 고른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같은 성질을 공유하기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그걸 담는 그릇도 비슷했을 뿐이다. 예부터 많은 이들이 즐겨 쓰던 그릇은 어느새 구식인 것이 되어 질타를 받는다.


 학 시간에 비유법을 배운다. 직유 은유 활유 의인 대유 가짓수도 많다. 배움에 집중하다 보니 뭘 위해 배우는지, 왜 사용하는지 까먹고 만다. 답은 간단하다. 앞서 말했듯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내 감정을 너도 느끼길 소망하기에 사용한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그'는 '그녀'의 입술에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어느 날 '그'는 '그녀'또한 같은 마음을 가지기 바라고, 감정의 온도를 전해줄 단어란 매질을 고른다. '그'가 매질로 '앵두 같은 입술'이란 표현을 쓴다면, 우리는 싫증을 내며 '상투적이다'라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닳고 닳아서 이제는 흘러가는 옛 유행가 속에서나 찾아볼법한 말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앵두 같은 입술'이 주는 이미지도 퇴색되었을까? 아니 여전하다.


 은색의, 그러나 너무 짙지도 옅지도 않게, 심지어는 적절한 수분기로 광택을 보인다. 촉감은 어떤가. 푸석거리지도 않고 탄성이 있다. '그'가 사랑에 빠진 '그녀'의 입술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특징까지 말할 수 있다. 너무나 선명한데, 그토록 생생한데, 우리는 단어를 저버려야 한다. 이제는 세련된 표현이 아니니까. 상투적인 표현이니까.


 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우리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잊은 게 아닌가 하고 되묻는다. 모의고사에서 화자의 생각을 묻는 문제를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과 같다. 황지우 시인은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가슴에 쿵쿵거린다고 썼다. 화자가 심근경색이 있어서 쿵쿵이라 썼을까? 그리 해석하니 조금 웃음도 나온다. 아마 화자는 '너'를 너무 애타게 기다리기에 모든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귀를 기울이다 보니 세상엔 발자국 소리만 남았고, 결국 발자국 소리와 같은 박자로 심장도 뛰었을게다. 그런 게 기다림이니까. 보조관념인 쿵쿵 거림은 원관념인 '너'를 기다리는 화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결코 주가 돼서는 안 된다. 보조관념에 매몰되면 안 된다. 수많은 보조관념 중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선택이 받은 아이들이 있었고, 최근 그들의 별칭이 '상투적인'으로 바뀌었다. 슬픈 일이다.


 실, 나조차도 상투적임에 대해 염증이 생길 때가 많다. 발라드들을 요즘 노래라 멸칭하며 가사가 똑같다고 비난한다. 비단 사랑 노래뿐만 아니라 인디밴드에게도 같은 태도다. 뭐가 그리 힘든지, 세상 나 혼자만 힘든 것도 아니고, 너도 우리도 힘든데, 불평불만만 많다고, 들을 노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에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에 우울 또한 홀로 감당해야 하는 날이 있다. 마음 갈 곳 없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받을 자리도 없다. 우연찮게 한사코 부정했던 노래자락이 귀에 들어오면, 너무나 상투적인 말들이기에 내 얘기가 된다. 뭉쳐있던 실이 하나씩 풀린다. 상투적임은 빛을 발한다. 바랜 줄 알았건만 무엇보다 찬란하게 자신을, 아니 우리를 위해 빛을 발한다. 상투적인 모든 표현에게, 무한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향을 피웁니다.(22.04.1x~22.04.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