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일종의 우주라고 흔히들 말한다. 개인은 개인의 세계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좋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 나를 빗대기에는 부끄러움 점이 많아 조금의 반감도 있다. 대신에 -허영심을 포기하지 못한 채- 우리들을 저마다의 은하라고 표현하고 싶다. 쉬이 논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구성원조차 미처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그러나 결국 우주라는 사회 집단에 속함으로 의미를 갖게 되는 존재 말이다. 특히 인간 사이의 관계가 은하와 은하 사이의 관계와 유사함을 보인다.
잔 속의 물이 흔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은하는 엄청난 속도로 다른 은하들과 멀어지고 있음을 아는가? 멀리 있는 것은 빨리, 가까이 있는 것은 천천히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저마다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또 이 멀어짐에는 중심이 없다. 어느 한 별이 다른 별을 너무 미워해 멀리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간격이 벌어질 뿐이다.
우리, 즉 인간도 그렇다. 초중고 혹은 일 따위의 인력들이 작용했더라도 헤어짐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말한 듯 속도의 차이는 있을 뿐, 멀어질수록 더 빠른 속도로 저마다를 떠날 거라고 슬픈 예측을 한다. 오랜만에 만난 것 친구와 어색함을 느낀 것처럼, 조금 더 극단적으로는, 지구와 달도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우울 속에도 빛은 분명히 있다. 하늘을 장식하는 수많은 은하들이 우리를 뒤로할지라도, 누군가는 분명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게 바로 안드로메다은하다. 약 45억 년 뒤에 우리 은하와 하나로 합쳐진다고 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그때의 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회의주의에 빠져 논의를 하는 지금도, 안드로메다은하는 초속 120km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또 우리도 안드로메다은하로 접근하고 있다. 유일한 믿음이다.
필자가 정의하는 사랑은 이렇다. 모두 멀어진다는 비극적 운명을 지닌다 하더라도, 나에게 와줄 사람이 있는 것. 우주에 중심이 없듯, 항상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아닌, 나도 모른 채 상대방에 대한 운동을 하는 것. 그로 인해 만날 때까지 모를 수 있고, 시간이 흐른 뒤 회상을 통해서 결국 인식하게 될 것. 이런 이유로, 순간뿐인 만남의 적분으로 구성된 삶을 살기에 되려 확실성을 갈망하며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처럼 필연적이지만, 우연적이고 또 순수하기까지 한 사랑을 인식하였을 때, 새로운 변화도 찾아온다. 막대나선 은하인 우리 은하가 정상나선 은하인 안드로메다와 만나 타원은하가 되듯, 불완전한 사람이 또 불완전한 사람을 만나 새로운 불완전함을 낳는다. 나조차 불완전한 사람인데, 당신한테 완전함을 바라지 않는다. 또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났다고 해서 완전해지리라 기대치도 않는다.
우연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확실을 바라며 사랑하는데, 사랑마저 완전하지 않다니 조금은 모순적이다. 아이리스 머독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제 한다는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라 표현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하가 있음을 겨우 인식해야 사랑할 수 있다. 철학자도 어렵다 표현한 것을, 감히 내 평생을 바친다 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그렇구나 하고 느낄 뿐.
이런 비합리성에서 오는 불안 때문인지, 사랑을 생각하면 어렸을 적 콩알탄을 처음 쥐었던 그때로 돌아간 듯하다. 어느 날은 친구가 나에게 콩알탄을 쥐여줬다. 아무렇지 않은 듯 즐겁게 콩알탄으로 장난치던 아이들, 그에 반해 위험하다고 외치던 TV 속 사람들. 그렇게 뒤섞인 소음에도 뚜렷하게 들리던 콩알탄의 딱딱거리는 소리. 손에 쥔 콩알탄이 무서워서인지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던지던 순간까지...
사랑에 관해 아름답다며 떠드는 이들도 봤고, 추하다며 토로하는 이들도 봐왔다.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콩알탄을 던진 그날처럼 자의가 아닌, 어쩌면 타의도 아니게 다시 흔들리는 사랑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무엇을 느낄까. 골목마다 소리와 함께 즐거움을 흩뿌리는 아이들이 될까. 애상에 잠겨 사랑의 유해성에 대한 훌륭한 자료화면이 될까. 만약 그런 것을 정할 수 있다면, 상대방이 나를 추억할 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내가 당신에게, 우리는 서로 영향을 준 은하일테니까.